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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작가 Sep 28. 2023

가을밤에 든 생각

덥고 습했던 여름이 드디어 막바지에 다다른 듯하다. 며칠 새 부쩍 시원해진 공기에 기분이 좋아진다. 시도 때도 없이 자꾸 걷고 싶어 져 집을 나선다. 

산책하는 동안 머릿속에 생각이 들어오면 그 생각에 빠진다. 별다른 생각 없이 걸을 때도 많다. 그러다가 소리가 들려오면 듣는다. (사람의) 말소리, 새 지저귀는 소리, 귀뚜라미 울음소리, 자동차 바퀴가 아스팔트 지면에 긁히는 소리,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동시에 눈에 보이는 걸 본다. 가로수, 장미 넝쿨, 산책 나온 강아지, 하늘, 구름, 달, 별, 별처럼 보이는 위성, 낙엽, 걸어가는 아저씨, 뛰어가는 청년, 수다 떠는 아주머니, 편의점에서 라면 먹는 학생, 손잡고 걸어가는 젊은 남녀, 아장아장 걷는 아이의 손을 잡은 아이의 엄마와 아빠…… 그러면서 냄새가 나면 맡는다. 된장찌개 냄새, 고기 굽는 냄새, 빵 냄새, 흙냄새, 나무 냄새, 꽃 냄새, 가을 냄새…… 산책하는 동안은 복잡한 현실은 미뤄두고 그 순간 느껴지는 감각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좋다.      

오늘은 두 번이나 산책을 나섰다. 두 번째 산책은 노을 지기 시작할 때쯤 시작되어 어둠이 깔린 후까지 계속되었다. 하늘이 다홍빛으로 물들었을 때는 그 아름다운 빛을 한없이 보며 걸었다. 하늘에 어둠이 깔리고 한동안은 내 발걸음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그렇게 걷다 보니 어느새 밤이었다. 아직은 지나가는 사람이 보였고, 이런저런 소리가 들리는 아주 깊은 밤은 아니었다. 간간이 나를 비추는 가로등 아래 드문드문 나무가 보였고, 불 켜진 누군가의 집이 보였다. 그 안에서 새어 나오는 그릇 소리, 대화 소리, TV 소리가 들렸다. 찰나의 내 마음은 고요하고 평온했다.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나름의 걱정과 불안을 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에게 주어진 하루를 성실하게 보냈을 것이다. 

오늘 하루도 이렇게 저물어가는구나. 아무 일 없이, 이렇게 무사히 하루를 보냈구나.

왠지 이런 말을 들려주고 싶은 순간이었다. 그들에게, 나에게. 

잠잠해진 하늘 아래, 덩달아 내 마음도 차분해졌다. 시원해진 공기에, 화려한 다홍빛 하늘에 들떴던 마음이 차분하게 내려앉았고, 습관처럼 마음에 품고 있는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어지러웠던 마음이 잠잠해졌다.

밤이었다. 누군가에게는 고단했던 하루의 끝, 종일 기다렸을 순간일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이 고요가 외로움이 될 터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밤은 그저 평화롭기를 바랐다.      


다홍빛 노을지는 하늘
어느새 밤


매일의 걱정과 불안이, 외로움이 있지만 그냥 이렇게 담담히 덮어두고 평안함 밤을 맞이할 줄 알게 된 나를 칭찬해 주고 싶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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