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는 부서 업무가 아니라 조직 전체의 시스템 전환이다
"저희 부서에서 명상 프로그램을 운영했어요. 참여자도 많고 만족도도 높아요. 그런데 조금 지나니까 흐지부지 해지더라고요."
지자체 담당자들을 만나며 자주 듣는 이야기다.
치유산업이 중요하다는 건 안다. 상부에서도 관심 있다. 예산도 어느 정도 확보됐다. 프로그램도 만들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흐지부지된다.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치유를 부서 업무로 접근했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과는 명상 프로그램을 만든다. 관광과는 힐링 여행을 기획한다. 보건복지과는 심리 상담을 배치한다. 농업과는 치유농업을 시작한다.
각 부서는 열심히 한다. 기획서 쓰고, 강사 섭외하고, 예산 집행하고, 성과 보고서 낸다. 참여자 수도 괜찮고, 만족도도 4점 이상 나온다.
그런데 전체적으로 보면 아무것도 연결되지 않는다.
명상 프로그램에 온 사람이 치유농장으로 가지 않는다. 힐링 여행을 온 사람이 심리 상담을 받지 않는다.
각 프로그램은 섬처럼 떠 있고, 참가자들은 그 섬을 하나씩 방문했다가 떠난다.
치유 여정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건 실행력의 문제가 아닌, 정렬의 문제다.
각 부서가 서로 다른 방향을 보고 있으니 합쳐지지 않는 것이다.
치유는 본질적으로 '연결의 언어' 이다.
공간과 사람과 문화가 하나의 흐름으로 엮일 때 작동한다.
한 명의 담당자가 프로그램 몇 개를 만드는 것으로는 조직 전체가 움직이지 않는다.
치유산업 전환의 핵심은 조직 전체가 같은 방향을 보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4단계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단계는 순서대로 밟아야 한다. 1단계를 건너뛰고 3단계부터 시작하면 결국 파편화된다.
회의실에 전 부서 담당자를 모아놓고 물어보면 어떨까.
"우리 도시에서 치유란 무엇입니까?"
누군가는 "명상 아닌가요?"라고 한다. 누군가는 "병원이나 상담 같은 거요"라고 한다. 또 누군가는 "관광이랑 연결하는 거 아닌가요?"라고 한다.
같은 단어를 쓰는데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하고 있다.
이 상태에서 협업은 어렵다.
치유사업 TF를 만들어도 회의할 때마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게된다.
결국 각자 자기 부서 일만 하고 끝난다.
조직 구성원 전체가 치유에 대해 같은 언어로 이야기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대상: 전 부서 리더와 실무자 (치유 담당 부서만이 아니다)
빈도: 월 1~2회, 2시간
기간: 최소 6개월
처음 3개월은 이런 질문들로 시작한다:
치유란 무엇인가
우리 도시에서 치유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우리가 추구하는 치유의 방향은 무엇인가
그다음 3개월은 각 부서가 자기 업무를 치유 관점으로 재해석한다:
우리 부서에서 치유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 고객은 무엇을 회복해야 하는가
우리가 제공할 수 있는 치유 자원은 무엇인가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이거다. 치유는 추가 사업이 아니다.
관광과가 새로운 치유 상품을 만드는 게 아니다. 예를들어 기존 트레킹 코스를 치유의 관점으로 재해석하는 거다.
기존: "1시간 걷기 코스"
전환: "호흡을 되찾는 숲길 여정"
내용은 똑같다. 1시간 걷는 건 같다. 하지만 언어가 바뀌면 참가자가 느끼는 경험이 달라진다.
새로운 예산 없이도 기존 사업이 치유산업으로 전환된다. 이걸 이해하면 모든 부서가 "우리도 할 수 있겠네"라고 생각한다.
모든 구성원이 동일한 방향을 향한다.
"치유는 특정 부서의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제공가치이다"라는 감각이 자리 잡는다.
전 부서가 치유 아카데미에 참여했다.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우리 부서도 치유 관점으로 일할 수 있겠어요."
그래서 관광과 담당자가 문화체육과에 전화한다. "우리 트레킹 코스랑 거기 명상 프로그램과 연결하면 좋을 것 같은데요?"
문화체육과: "좋죠. 그런데 예산은 어떻게 써요?"
관광과: "우리 예산으로는 우리 프로그램만 쓸 수 있어요."
문화체육과: "우리도 마찬가지인데요..."
그래서 결국 하기 어렵다. 다시 각자 일한다.
체계가 없으면 협업은 어렵다.
구성: 관광과, 문화체육과, 보건복지과, 도시재생과, 농업과 등
운영: 월 1회 이상 정례 협의
역할: 분기별 성과 점검, 다음 분기 계획 공동 조정
이게 없으면 각 부서는 제각각 움직인다. 처음엔 비공식 TF로 시작해도 된다. 중요한 건 정기적으로 만나서 서로가 뭘 하는지 아는 거다.
각 부서가 집행하는 치유 관련 사업 예산의 5%를 공동 운영 예산으로 모은다.
"5%를 떼어내라고요? 우리 예산도 빠듯한데요?"
이렇게 나올 수 있다. 그러면 이렇게 의견을 모아야 한다:
"각 부서가 5%를 내면 전체적으로는 큰 예산이 됩니다. 이걸로 부서 간 연계 사업을 하면 참여자가 늘어납니다. 관광과가 단독으로 하면 100명 오는 프로그램이, 농업과·문화체육과와 연계하면 300명 옵니다. 5% 투자해서 더 큰 성과를 내는 겁니다."
실제로 연계 사업은 개별 사업보다 높은 참여율과 만족도를 만든다는 조사가 있다.
치유를 표현하는 슬로건, 핵심 키워드, 시각 언어를 하나로 통일한다.
예를 들어 우리 도시의 치유 슬로건이 "다시 숨 쉬는 도시"라면:
관광과: "다시 숨 쉬는 트레킹"
문화체육과: "다시 숨 쉬는 명상"
농업과: "다시 숨 쉬는 농장 체험"
모든 부서의 홍보물과 프로그램명에 같은 언어가 들어간다. 시민과 방문객은 "우리 도시가 하나의 일관된 메시지를 전한다"고 느낀다.
이 브랜드 기준은 민간 파트너에게도 동일하게 적용한다.
민간 사업자가 우리와 협업할 때도 같은 언어를 쓰도록 가이드라인을 준다.
조직은 치유 전환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갖춘다. 이제 협업이 가능해진다.
협의체도 만들었고 통합 예산도 생겼다. 부서 간 회의도 한 달에 두 번씩 한다. 담당자들끼리는 "우리 이제 잘하고 있는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그런데 막상 시민이나 방문객한테 물어보면? "뭐가 바뀌었어요?"
내부적으로만 바뀌고 외부로는 드러나지 않는다.
이게 3단계에서 예상되는 상황이다.
개별 프로그램을 섬처럼 두지 말고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한다.
1일 코스 예시
09:00 숲에서 명상 (문화체육과)
12:00 로컬푸드 식사 명상 (농업과)
14:00 치유농장 체험 (농업과)
16:00 지역 공예 워크숍 (도시재생과)
18:00 석양 명상 (관광과)
공간 간 도보나 셔틀로 순환할 수 있게 동선을 짠다. 이렇게 연계된 프로그램은 개별 프로그램보다 강력한 치유 효과를 만든다.
참가자는 이제 "프로그램을 참여했다"가 아니라 "하루 동안 나를 회복하는 여정을 경험했다"고 느낀다.
기존 성과지표는 참여자 수, 만족도만 측정했다. 하지만 치유는 정성적 변화가 핵심이다.
정량 지표
참여자 수
연계 건수 (한 사람이 여러 프로그램 참여)
재방문률
평균 체류 시간
정성 지표
참가자 후기에서 감정 변화 키워드 추출
참가 전: "답답하다", "지치다", "무기력하다"
참가 후: "시원하다", "가볍다", "회복되다"
이런 정성 지표를 축적하면 치유 프로그램의 효과를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 다음년도 예산 확보할 때도 이 데이터가 설득 자료가 될것이다.
홈페이지, SNS, 행사명, 안내판, 상품명 등 모든 접점에서 치유 언어로 재해석한다.
적용 예시
기존: "가을 축제" → 변경: "마음을 내려놓는 가을 치유제"
안내판: "이곳은 당신의 호흡이 회복되는 숲입니다"
SNS: 장소 소개가 아니라 "여기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의 변화" 중심으로 작성
이렇게 하면 조직 내부에서 만들어진 철학이 실제 방문객이 경험하는 현장으로 번역된다.
치유가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 경험으로 자리 잡는다.
3년 동안 열심히 했다. 프로그램도 많고 참여자도 늘었다. 그런데 공공 지원이 끝나거나 담당자가 바뀌면 어떻게 될까.
이건 많은 담당자가 실제로 겪는 상황이다. 새 담당자는 기존 사업을 모를 수 있다.
자기만의 새로운 걸 하고 싶어 할 수도 있다. 그래서 다시 처음부터 시작한다.
결과: 시간과 예산은 투입됐지만 도시에는 누적되는 게 없다.
시민 치유가이드 양성
지역 주민이 직접 치유 프로그램을 안내할 수 있게 교육
6개월 과정, 월 2회 교육
수료 후 실제 프로그램 운영 참여
지역 전문가 네트워크 구축
명상 지도자, 요가 강사, 상담사, 예술치료사들이 정기적으로 만나 협력
분기 1회 네트워킹 데이
서로의 프로그램을 체험하고 연계 방안 논의
이렇게 되면 공무원이나 외부 전문가에 의존하지 않고도 지역 자체에서 치유 프로그램이 계속 만들어진다.
담당자가 바뀌어도 생태계는 유지된다.
축적할 데이터
참가자 유입 경로 (어떻게 우리 도시를 알게 됐는가)
참여 프로그램 조합 (어떤 순서로 무엇을 경험했는가)
감정 변화 키워드
재방문 의향
이 데이터는 다음 사업 기획의 근거가 되고, 예산 확보의 설득 자료가 된다. 새 담당자가 와도 이 데이터를 보면 맥락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다.
단기 (1~2년)
도 단위 우수사례 공모전 참여
타 지자체 벤치마킹 유치
중기 (3~5년)
한국형 치유도시 인증 신청
관광 상품 패키지화
장기 (5년 이상)
해외 웰니스 도시 교류
모델 수출
이렇게 되면 치유는 단순한 지역 사업이 아니라 도시의 경쟁력이자 성장 동력이 된다.
치유는 조직 안에 완전히 내재화된다. 공공 지원이 끝나도, 담당자가 바뀌어도 민간과 주민이 스스로 생태계를 유지하고 확장한다.
구체적으로 무엇부터 시작하면 좋을까.
□ 우리 도시의 치유 슬로건 정하기
□ 모든 홍보물에 슬로건 반영
□ 기존 프로그램명을 치유 언어로 재작성
소요 시간: 2주
필요 예산: 0원
이건 지금 당장 할 수 있다. 부서가 만드는 홍보물부터 언어를 바꿔보면 된다.
□ 전 부서 치유 아카데미 기획
□ 외부 강사 또는 내부 전문가 섭외
□ 월 1회, 6개월 과정 운영
소요 시간: 준비 1개월, 운영 6개월
필요 예산: 기존 직원교육 예산 활용
직원 교육 예산은 대부분 있을 것이다. 그걸 치유 교육에 쓰면 된다.
□ 치유사업 통합 협의체 구성 (공식 또는 TF)
□ 각 부서 예산 5% 통합 풀 조성
□ 월 2회 정례회의 시작
소요 시간: 준비 1개월, 운영 지속
필요 예산: 각 부서 기존 예산 5%
처음엔 비공식 TF로 시작해도 된다. 중요한 건 정기적으로 만나는 것이다.
□ 기존 자원 연계한 1일 치유 코스 개발
□ 정량·정성 KPI 측정 시작
□ 홈페이지와 SNS 언어 전환
소요 시간: 준비 2개월, 운영 지속
필요 예산: 신규 시설 불필요, 기존 자원 활용
새로운 시설을 지을 필요 없다. 지금 있는 숲, 농장, 공방을 연결하면 된다.
□ 시민 치유가이드 양성 과정 개설
□ 지역 전문가 네트워크 구축
□ 데이터 수집 시스템 마련
소요 시간: 준비 3개월, 운영 1년 이상
필요 예산: 양성 과정 운영비, 네트워크 지원비
이건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이게 완성되면 담당자가 바뀌어도 시스템은 돌아간다.
현장에는 여러 가지 상황이 있을 것이다.
예시 상황: 치유 아카데미를 제안했더니 도시계획과에서 "우리는 건물 짓는 부서예요. 명상이랑 관련 없어요"라고 한다.
전략: 치유를 추가 업무가 아니라 관점의 전환으로 설명하면 된다.
"도시계획과는 건물을 짓습니다. 그런데 그 건물에서 사람들이 어떤 감정을 느낄지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햇빛이 어떻게 들어오는지, 소리가 어떻게 울리는지, 공간에서 사람들이 편안하게 숨 쉴 수 있는지. 이게 치유 관점입니다. 새로운 건물을 짓는 게 아니라 기존 설계에 치유 감각을 더하는 겁니다."
이렇게 설명하면 대부분의 부서는 자기 일과 치유를 연결할 수 있다는 걸 이해한다.
상황: 통합 예산 풀을 제안했더니 "우리 예산도 빠듯한데 5%를 떼어내라고요?"라고 한다.
전략: 통합 예산을 손해가 아니라 기회로 설명하면 된다.
"각 부서가 5%를 내면 전체적으로는 큰 예산이 됩니다. 이 예산으로 부서 간 연계 사업을 할 수 있고, 그 성과는 모든 부서가 공유합니다. 예를 들어 관광과가 단독으로 프로그램을 만들면 100명이 오지만, 농업과·문화체육과와 연계하면 300명이 옵니다. 5%를 투자해서 더 큰 성과를 내는 겁니다."
실제로 연계 사업은 개별 사업보다 높은 참여율과 만족도를 만든다. 데이터로 보여주면 설득력이 생긴다.
상황: 시스템을 만들었는데 2년 후 담당자가 바뀌면서 다시 처음부터 시작한다.
전략: 인수인계 매뉴얼을 시스템에 포함시키면 된다.
치유사업 인수인계 문서에 다음을 포함한다:
우리 도시 치유의 정체성 (슬로건, 핵심 가치)
부서별 역할과 연계 구조
협의체 운영 방식
기존 데이터와 성과
지역 전문가 네트워크 연락처
이 문서가 있으면 새 담당자도 빠르게 맥락을 파악하고 이어갈 수 있다.
더 나아가 시민 치유가이드와 지역 전문가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있으면 담당자가 바뀌어도 생태계는 유지된다. 이것이 4단계가 중요한 이유다.
솔직히 말하면 많은 조직이 1단계를 건너뛰고 3단계부터 시작한다.
프로그램부터 만든다. 공간부터 짓는다. 그러다 보니 각 부서가 제각각 움직이고, 결과적으로는 파편화된 사업들만 남는다.
전형적인 패턴
1년차: 치유 담당자가 명상 프로그램 몇 개를 만든다. 참여자 100명. 만족도 4.5점. 보고서 작성 완료.
2년차: 다른 부서에서도 치유 관련 사업을 시작한다. 하지만 서로 잘 모른다. 각자 예산 집행하고 각자 보고한다.
3년차: 담당자가 바뀐다. 새 담당자는 기존 사업을 잘 모른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한다.
결과: 시간과 예산은 투입됐지만 도시에는 누적되는 게 적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는 이유는 조직 전체의 인식이 정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1단계 없이는 어떤 프로그램도, 어떤 공간도 지속되기 어렵다.
반대로 치유산업 전환이 잘 진행되는 조직들의 공통점은 뭘까.
그들은 치유를 조직의 시스템으로 내재화했다.
특징 모든 부서가 치유 언어를 쓴다
관광과도, 농업과도, 도시재생과도 같은 슬로건과 키워드를 사용한다.
부서 간 협업이 제도화되어 있다
협의체가 있고, 통합 예산이 있으며, 정례 회의가 있다.
데이터를 축적하고 활용한다
감정 변화 키워드, 재방문율, 연계율 등을 측정하고 다음 기획에 반영한다.
지역 주민과 전문가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있다
공무원이 바뀌어도 생태계는 유지된다.
이런 조직에서는 담당자가 바뀌어도 사업이 계속된다. 치유가 개인의 업무가 아니라 조직의 DNA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1단계 없이는 정렬되지 않는다.
2단계 없이는 협업이 어렵다.
3단계 없이는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
4단계 없이는 지속되지 않는다.
담당자 한 명의 열정으로는 한계가 있다. 조직 전체가 시스템으로 움직여야 한다.
치유산업은 좋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이 아니다. 조직 전체의 방향을 다시 세우는 일이다.
하나의 부서가 명상 프로그램 몇 개를 만드는 것으로는 도시가 바뀌지 않는다.
모든 부서가 같은 언어로 말하고, 같은 방향을 보고, 서로 연결되어 움직일 때 비로소 치유는 도시의 DNA가 된다.
지금 당신의 조직은 어느 단계에 있는가.
1단계부터 시작하면 된다. 그것이 가장 확실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