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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샘 Jan 18. 2024

육아란 밑천을 드러내는 것

1818개월 육아

순~한 편에 속하는 내 아들

왕할머니가 "얘 같은 애는 셋도 키우겠다! 어디 가서 힘들다는 말도 못 하겠구만" 했던 그 아기가

17개월부터 말 그대로 [생떼]를 쓰기 시작했다



18개월이 괜히 '18'인 줄 아냐, 1818개월이다 등등..

18개월에 대한 자자한 소문을 들어왔지만 '에이 우리 아기는 순하니까 그냥 지나가겠지~'했다


웬걸


17개월부터 자기 밥 조금이라도 먹기 싫으면 하이체어에 절~때로 안 앉겠다고 머리부터 발까지 막대기마냥

뻗대면서 버티고 울고

한 번 삔또 나가서 울기 시작하면 자기 악에 받쳐서 30분 동안 고래고래 운다




이제 18개월에 본격 진입하니 이젠 스스로 걷겠다고 안지 말라고 난리 난리 생난리

우리의 목적지가 어디든 자기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간다

그곳이 차가 있는 곳이든 위험한 곳이든 ^^ㅠㅋㅋㅋㅋ

위험해서 둘러업으면 아주 활어가 따로 없다





육아를 시작하기 전 나는 유치원교사니까 어지간한 생떼에는 면역이 있다!라고 여겼다

사실 비교적 주변 친구들과 비교해 보자면 인내의 역치가 높은 편이긴 하다

워낙 다양한 아이들을 만나다 보니 '그럴 수 있지-'가 당연하달까

하지만 모든 순간에 "응 그래 더 어린 아기는 당연히 그럴 수 있지"가 되는 건 아니었다..




어느 날 하루는 아기가 아침 7시에 일어나서 저녁 9시까지 낮잠을 꾸역꾸역 참으며 건너뛴 적이 있다

[낮잠을 자지 않는다]라는 전제는 18개월에 해당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서

몹시 당황했고 4시 30분이 넘어서는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아기는 졸려서 손을 계속 빨아댔고, 낮잠을 안 자니 당연히 컨디션이 안 좋아 계속 찡찡거렸으며,

찡찡거리다 보니 밥도 안 먹었다

그리고 아무리 침대에서 재우려 노력해도 침대에 서서 가드에 기대어 끝끝내 잠을 참아냈다 (하하)



잠을 자기 싫으면 재밌게 놀 것이지 찡찡거리면서 손가락만 빨고!

아니면 자던가!! 으아악!!!!




하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말도 못 하는 아기에게 소리 지르는 쓰레기가 될 순 없어서

침대에 아기를 놓고 거실로 나와 혼자 소리 없는 괴성을 지르며 발에 차이던 아기띠를 바닥에 내동댕이 쳤다

인스타, tv 등에 나오는 산후우울증 이야기가 왜 오는지 단박에 이해가 가는 순간이었다



소통이 안 되는 아기의 욕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주기가 참으로 힘들었다

왜냐면, 나도 힘드니까..



이 일 외에도 밥을 안 먹을 때 그렇게 속상하고 힘들다

하루에 두 돌 전까지 꼭 먹어야 한다는 소고기 40g, 우유 480ml

그리고 두뇌발달에 꼭 필요하다는 질 좋은 탄수화물. 그리고 야채 등등..

이론상으론 아주 잘 먹어야 내 아기가 건강하게 자랄 텐데

차려주는 것까진 내 몫이지만 먹는 건 아기의 몫이므로 내 마음대로 될 리가 없는 거다~


물론 이제 많이 포기해서 소고기도 안 먹으면 그냥 오늘은 건너뛰자.. 하고 말고

한 끼는 과일이나 오트밀빵 등으로 간단하게 주는 식으로 많이 타협했지만

이러나저러나 열심히 차려준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은 속상한 일이긴 하다


인권 존중이고 나발이고

안먹겠다고 막대기마냥 버팅기고 있으면 울든지 말든지

"먹기 싫으면 먹지마!" 하고 안아주기도 싫어지는 게 내 본능




그럴때마다

그런 순간이 올 때마다


"아 내 인간성이 이정도인가?"

"이것이 내 인내의 바닥인가?"


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 아기 낮잠시간에 유튜브보며 밥을 먹는데

어느 인터뷰 내 또래로 보이는 여자분이 육아는 내 밑천을 드러내는 것이란다

내가 가장 마주하기 싫은 부분을 마주하는 것이라고


완전히 공감한다



하지만 또 이렇게까지 무한한 사랑을 주는 존재는 내 아이밖에 없다고,

그 사랑을 받으며 좀 더 나은 인간으로 성장하는 것이 육아라고




그 또한 공감한다




내 바닥을 스스로 직면하게 되는 것이 육아지만

내 바닥이 얼마나 깊든 내가 어떤 사람이든 다시 돌아와서 사랑을 주는 것이 내 아이라고 하더라


육아는 부모가 자식에게 행하는 것이지만

자식은 부모에게 모든 것을 상쇄할 기쁨을 준다

누구에게도 받아보지 못한 무한한 사랑을 받는 것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존재를 온 마음과 피부로 느끼는 것

그 과정을 통해 어른에 더 가까워질 수 있겠구나 싶다





나는 그간 유치원에서 근무하며 아이들을 보고 '와 사람하나 만들기 진짜 힘들다. 부모님들 고생많다' 라고 생각해왔는데 직접 육아를 해보니 내가 사람 되어가는 과정도 녹록치가 않다!

근데 이 과정이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꼭 경험해봐야 할 수순이라고 여겨진다



비혼, 딩크 모두 개인의 선택이고 나도 원래 딩크족을 지향하던 사람이지만,

낳고 길러보니,

아이를 낳지 않은 삶을 살았다면 후회했을 지도 모른다

아니 후회도 못해봤을지도 모른다. 해보기 전엔 절대 모르는 거라.

아이가 예쁘고 그 자체가 사랑이고 - 뭐 이것도 크지만

내 밑천을 드러내는 경험, 더 좋은 사람이 되어보려는 동력이 있다는 건 특별한 경험이라 여겨진다


'남들 다하는 육아'로 생각하기보다 성장의 기회로, 사랑 그 자체를 누릴 수 있는 모두의 육아가 되기를!



그리고 이 생각이 오-래오래 가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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