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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묭롶 May 05. 2024

99번의 환생.

25화. 결자해지(2)



끓어오르는 용암의 증기로 자욱한 염라전의 단상에 앉은 염라는 손바닥으로 턱을 괸 채 생각에 잠겨 있었다.  


'날마다 꿈에 암시를 남겼으니 연계휼이 잘하고 있겠지.

 동방삭 그놈은 나 염라의 수치이자 존재 자체가 저승에 대한 모욕이니.......

 하지만 그로 인해 쌓인 연계휼의 악업에도 면죄부를 주었으니..... '


염라는 골치가 아파오는지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며 혀를 찼다.  그가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단상에서 일어서려 할 때 염라전 소속 관리 한 명이 다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가 염라에게 인사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는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저승 꼬락서가 잘 돌아가는구나.'


당황해서 정신을 못 차리는 관리를 쳐다보고 다시금 혀를 찬 염라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무슨 일이냐?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 그것이......."


"아니 그러니까 왜?  말을 하라고.."


-"저...... 그것이..... 동방삭이 돌아왔습니다."


관리의 말을 들은 염라는 다시 의자에 앉으려다가 엉거주춤 한채 눈동자가 커졌다.


"뭐라?  그놈이 돌아와?  왜?  연계휼이 수련을 차지한 것도 아닌데.  왜?"


-"그런데.  그게... 돌아는 왔는데... 상태가...."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됐다는 것이냐.. 말을 해라... 응... 말을 하라고..."


-"환생 사진관에 돌아는 왔는데 저승 검시관 말로는 심장이 부서졌다고 합니다."


관리의 말을 들은 염라가 손짓으로 자신의 앞에 환생사진관 내부가 보이는 모니터 창을 띄웠다.


그의 눈에 지는 노을빛이 채광창을 통해 비춰 들어와 온통 붉은빛으로 가득한 환생사진관 중앙에 서 있는 동방삭의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그는 메두사의 눈을 보고 돌이 되어버린 사람처럼 그대로 그 자리에 동상처럼

서 있을 뿐이었다.  그 오랜 시간 동안 그를 죽음으로 이끌기 위해 시도되었던 저승의 노력도 그의 존재로 인해 골머리를 앓아야 했던 염라도 어찌하지 못했던 그가 죽지 않았지만 실제적으로는 죽어버린 상태로 그곳에

있었다.  너무 황당하고 기가 막혀서 말문이 막힌 염라의 곁에서 관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게.... 저승 검시관이 살펴본 바로는 부서진 심장이 한 번의 충격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계속된 연속적

충격에 균열이 발생되었고 마지막 일격에 의해 완전히 가루가 되었다 합니다."


"마지막 일격이라....."


-"녹화된 모니터에는 동방삭이 환생 사진관에 돌아온 직후 스스로 자신의 가슴을 환생대 모서리에 부딪힌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허....... 오랜 시간 동안 연속적이라........."


'골치 아픈 놈이 사라졌으니 마음이 홀가분해야 하는데 이 찝찝한 기분은 뭐지..'


염라는 나직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장미가 태석과 경연프로그램 참가 문제로 다툰 뒤 그를 끌어안고 있을 때 동방삭은 길 건너에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수련에게서 웹툰 속 작중인물의 사랑은 그 자신 스스로의 생각이며 사실은 집착이 아니겠냐는 말을 들은 뒤 그는 소중한 존재를 다시 만나기 위한 구십 팔 번의 환생을 위해 자신을 찾아왔던 꽃님이를 떠올렸다.

그래서 그 오랜 기다림과 구십팔번이라는 환생을 거듭하여 큰돌을 만난 꽃님이는 지금 어떤 모습일지가 궁금해진 그는 지금은 장미가 된 꽃님이의 뒤를 쫓았고 그렇게 서로를 끌어안은 채 태석의 등을 두 손으로 연신 쓸어내리면서도 안아줄 수 있는 손이 두 개밖에 없음을 안타까워하는 그녀를 볼 수 있었다.


그 순간 그는 과거 꽃님이가 죽어가는 순간에도 끌어안은 큰 돌에게 자신의 마지막 온기를 한 점이라도 나누어 주고 싶어서 두 손, 두 발 그리고 온몸도 모자라 머리카락 한 올 한올까지 모조리 풀려나와 큰돌의 몸을 감쌌던 그때가 겹쳐 보였다.  순간 그는 깨달았다.  


'아... 저것이 사랑이구나......'


휘청이는 걸음으로 집에 돌아온 동방삭은 심부름 업체에서 알려준 번호를 인터넷 전화기에 꾹꾹 눌렀다.

잠시 후 민혁의 목소리가 들리자 그가 말했다


"전 동방삭입니다. 우리 만나야죠."





편집장실 문 앞에 선 수련이 닫힌 문을 두 번 손으로 똑똑 두들긴 다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책상에 앉아서 서류를 검토하던 민혁은 들어온 그녀를 발견하고는 보던 서류를 책상에 내려두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백작가님 오셨어요.  앉으세요.  평소처럼 커피 드시죠?"


그의 말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그녀가 탁자에 앉아 사무실 내부를 둘러보고 있을 때 커피 머신에 캡슐커피를 넣고 잔에 내려온 민혁이 그녀 앞에 커피 잔을 내려놓고는 자신의 책상 서랍에서 파일철을 하나 꺼내어 들고 와서 그녀에게 건넸다.


-"읽어보세요."


"아... 지난번에 말씀하신 팬소설 당선 원고인가요?"


-"아니요.  그건 동방삭씨가 넘긴 마지막 원고입니다."


그의 말에 수련이 당황해서 그를 쳐다보았다.


"아니.. 언제는 그 사람과 작업하지 말라면서요."


그녀의 말에 민혁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원고.  읽어보시면 왜인지 알 겁니다."


그의 말에 수련은 파일철을 열어 첫 장부터 서둘러 읽기 시작했다.  


'어머... 마지막화 주인공은 나하고 직업도 같고 성격도 나 같은데.... 뭐지.. 동방삭도 나오고..

어라... 편집장까지...........'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동방삭이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자신에게 이야기를 해줄 때 그의 표정과 그 눈동자에 비친 감정들까지......


파일철의 마지막 장을 덮은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그가 바로 웹툰 속 실존인물이자 수련의 환생을 계속해서 쫓던 그였으며 편집장이 연계휼의 환생이었구나.

 이것이 그가 내린 자신의 사랑에 대한 답이었어'


말없이 눈물만 흘리는 수련을 바라보던 민혁이 입을 열었다.


-"사실,  저도 그의 말이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계속 꿈에서 보이던 그를 실제로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난 뒤 나는 완전하지는 않지만

  제 감정의 실체를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었죠

그리고 지금은 그의 부재를 확실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그의 말에 수련을 불현듯 생각이 떠오른 듯이 가방에서 서둘러 스마트폰을 꺼내어 들고 저장된 번호로 동방삭에게 전화를 걸었다.  계속 울리는 통화음에도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메시지가 들려오자 수련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편집장실을 급히 빠져나왔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동방삭은 흔적이 없었다.  그는 자신이 바래다주었던 집에도 그  어느 곳에도 없었고 그제야 그를 연락할 방법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수련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자신이 사랑하지 않았고 남다른 감정이 싹트지도 않았지만 그 오랜 시간을 자신만을 사랑해 온 남자는 이제 그 어느 곳에도 없었다.  그 사실이 수련은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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