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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묭롶 May 15. 2024

99번의 환생.

27화. 선택

레전드락 최종 우승자를 뽑는 생방송 현장은 뜨거운 열기로 가득다.  밴드 레볼루션의 팬들은 드러머 부상으로 인한 불가피한 경연 포기가 안타까웠지만 어렵게 구한 티켓을 포기할 수 없었기에 공연장에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밴드 솔루션과 밴드 샤크의 팬들은 우승을 응원하는 피켓과 응원도구로 치장한 채 한껏 흥분에 들떠 서로에게 말을 건네느라 공연장은 흥분과 소란의 도가니탕이었다.  

AD들과 공연 관계자들이 공연 시작을 알리며 한참 동안이나 객석을 정리한 뒤에야 공연장이 조용해졌다.

모두가 공연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 차서 숨죽인 채 무대를 주시할 때 무대의 가림막이 걷어올려졌다.

그 순간 공연장 관객석의 관객들은 놀라서 소리도 내지 못한 채 '헛'하는 소리만 낸 채 입을 틀어막았다.

입을 막은 손을 내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여왔다.


"저건?  밴드 레볼루션 아냐?"


그 목소리에 놀란 누군가가 다시 말했다


"그럼 드러머는?"


순간 관객석에 앉은  모두의 시선이 무대 위에 선 드러머에게 향했다.

드러머를 확인한 관객의 눈동자에 실린 표정은 경악과 놀람 그리고 의문이었다.


'아니.... 왜??????????'





장미가 레전드락 PD로부터 들은 밴드 레볼루션 드러머의 부상 소식을 샤크의 멤버들에게 전했을 때

멤버들의 표정은 무거웠다.  흡사 자신들이 부상을 당하기라도 한 것처럼 안타까워하는 그들을 보며

장미는 밴드 샤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생각을 수정해야 했다.

한참을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던 태석이 어두워진 눈빛으로 장미를 바라본 뒤 다시 멤버들을 한 사람씩

시선을 맞춘 뒤 입을 열었다.  


-"생각해 봤는데 우리 오 년 전 일로 너무 힘들었잖아.

  그땐 부당하다고 생각해서 앞 뒤 안 보고 따지기 바빴어.

  하지만 되돌아 생각해 보니 그때도 우리에게 중요한 건 우승이 아닌 음악이었어.

  그리고 우리가 공연 없는 오 년을 버틴 이유도 결국 음악을 포기할 수 없어서지.

  그래서 나는 그 애들이 이번 공연을 못해서 우리처럼 음악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뺏길까 봐 걱정이 돼.'


태석의 말에 멤버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밴드 샤크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 장미는 그의 말에 동의하면서도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어서 혼란스러웠다.  그녀가 태석을 보고 뭔가를 말하려 할 때

태석의 손이 그녀를 제지했다.


-"알아.  장미 너는 우리가 가장 중요하지.  

  하지만 난 음악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하는 거라 생각해.

  그래서 난 그 애들 돕고 싶어."


밴드 레볼루션을 돕고 싶다는 태석의 말을 듣는 순간 장미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멍청이'  

그렇지 넌 경연 프로그램에 참여 안 한다고 화를 냈을 때도 이랬어.

그래도 네가 원하는 게 그거라면 난 너를 지킬 거야.


간절한 눈빛으로 자신을 설득하는 태석에게 항복한 장미는 낮은 한숨을 내쉰 뒤 그에게 물었다.


"그래.  어떻게 하고 싶은 건데?"


모두 궁금한 눈빛으로 그의 답을 기다릴 때 태석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야.  우리 민수가 게네들 드러머를 해주면 되지 않겠어?

  어때?  민수 두 탕 가능하지?"


드럼 스틱을 습관적으로 돌리며 얘기에 집중하던 민수는 자신의 이름이 언급되자 순간 얼이 빠진 표정이었다.


-"엑?  내가?"






생방송 현장에서의 극적인 효과를 기대했던 레전드락 PD와 작가는 장미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환호성을 질렀다.  이보다 드라마틱한 장면은 없을 거라며 흥분한 작가는 밴드 레볼루션의 경연 참여를 극비로 처리할 것을 지시했다.  그런 이유로 공연 당일 무대가 공개되기 전까지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레전드락 관계자들의 기대는 적중했다.  공연장에 온 관객들은 무대에 선 레볼루션을 본 순간 한 번 놀랐고

또 드러머 석에 자리 잡은 밴드 샤크의 드러머 민수를 보고 더 놀랐다.


'경연 프로그램에서 상대팀을 도와주는 밴드라니......'


혼란으로 술렁이는 관객석을 두 개의 지미집이 계속해서 잡고 있을 때 배치된 화면에 본 무대에 선 밴드 레볼루션의 모습이 잡혔다.  드러머를 시작으로 레볼루션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수련의 방에 들어가 붙박이장을 열고 안쪽을 뒤지던 장미가 수련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수련아.  나 너 타블릿 가방 좀 쓰자."


-"어.. 언니.  그거 장 안쪽에 있을 거야."


식탁에 앉아 물을 마시던 수련이 그녀에게 답했다.  잠시 뒤 가방을 찾아들고 거실로 나온 장미는  가방 안에서 책을 한 권 꺼내 들고는 그녀에게 다가왔다.


"어머.. 웬 동화책이야?  인어공주네."


수련은 의아한 눈빛으로 언니가 건네준 책을 건네받아서 무심한 손길로 책장을 넘기다 마지막 겉표지를 펼쳐든 채 '헉'하는 소리를 냈다.  뒤돌아서서 다시 거실로 향하다 이상한 느낌에 뒤를 돌아본 장미의 눈에 책을

펼쳐든 채 엉엉 울고 있는 수련의 모습이 보였다.


"아니..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수련에게 다급히 다가와 펼쳐든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유심히 살핀 장미의 표정이 착잡해졌다.


- 인사를 할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요.  

  아마 왕자는 인어공주가 물거품이 됐다는 걸 알지 못해서 불행하진 않았을 거예요.

  저만 물거품처럼 수련 씨 인생에서 사라진다면 이제 수련 씨는 행복할 수 있을 거예요.

  제가 존재해서 불행했던 수련 씨의 모든 시간들이 너무 미안해요.

  그러니 앞으로는 행복하세요.


                                                                                                         - 동방삭 -


'아마 그날이었을까?'

술에 취한 채 자신을 업어서 데려다주고 싶다고 했다가 결국 업힌 채 집으로 돌아갔던 그날 자신이 매일 메고 다니던 가방에 넣어둔 것일까?  정작 그녀의 마음속에는 그의 자리가 없었지만 그녀를 마음에서 단 한순간도 놓지 못해 그 오랜 시간을 그녀의 환생을 쫓았다는 그 남자는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수련은 그의 마음을 짐작하기조차 힘들었지만 자신의 곁에서 있는 동안 자신에게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하던 그 남자의 눈빛은 그녀의 가슴에 낙인처럼 새겨졌다.  슬펐다.  사랑해 줄 수 없어서 그리고 있는 동안 그 마음을 알아주지 못해서..

그가 그녀에게 남긴 것이 슬픔이라는 사실이 더 사무친 수련은 울고 또 울었다.  엉엉 울면서 책을 덮고

무릎을 두 팔로 껴안고서 고개를 그 위에 얹은 채 계속 울었다.


그녀가 울면서 책을 덮는 순간 책에 쓰인 글자 중 동방삭이라는 이름 위를 맴돌던 초파리 한 마리가 책장 사이에 끼인 채 이름 위에 도장처럼 박제되어 죽었다.  





환생 사진관의 문을 연 염라의 눈에 굳은 채 서 있는 동방삭의 모습이 먼저 들어왔다.  그 모습에 혼자 혀를 찬 염라가 그의 앞에 서서 한참을 위아래로 훑어본 뒤 입을 열었다.


"넌 이 저승에 재앙 같은 존재지만 생각해 보니 너는 애초에 선택지가 없었더구나.

  죽음을 보는 능력을 네가 원했던 것도 아니니 너의 죄의 대가는 너의 불행했던 모든 시간들이

  너를 스스로 벌했다고 봐야지 않겠느냐.

  그래서 너에게 선택할 기회를 주려고 한다.

  이미 넌 네 손으로 99번을 환생시킨 꽃님이와 태석을 보지 않았더나.

  너도 99번의 환생을 거친 뒤 수련을 만나게 해 주마."


말을 마친 뒤 염라는 낑낑대며 동방삭을 환생대로 옮긴 뒤 그의 몸을 환생대 위에 올렸다.  삐끗한 허리가

시큰거려 왔지만 이 일은 누구도 알아서는 안 되는 일이었기에 평소 예외라고는 없는 염라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혼자서 해내야만 했다.  

환생대에 사면에서 비취온 빛이 하나로 모아졌을 때 찰칵하는 촬영음과 함께 환생대 위에는 동방삭의 몸 대신

초파리가 찍힌 액자 한 개가 남았다.  





-"형... 아.. 진짜..... 형?"


다급하게 자신을 찾는 민수의 음성에 연습실에 있던 태석은 급히 연습실의 문을 열고 나오며 민수를 찾았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찾는 민수는 보이지 않고 신이 나서 그를 향해 다가오는 레볼루션 멤버들 네 명만 보일 뿐이었다.  그들 등 뒤로 투덜거리며 생수가 든 검정 비닐봉지를 든 민수가 보였다.

태석에게 실실 웃으며 곰살맞게 다가온 레볼루션의 보컬 리온이 그의 팔을 붙잡고 흔들자 덩달아 다른 멤버들도 그에게 매달려 왔다.  뒤에 있던 민수가 그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형... 나 또 국수 사러가?

 이 시키들. 맨날.. 여기 와서 밥 달라지..  내가 미쳐.. 진짜."


태석이 대형 양푼에 국수를 비비고 있을 때 퇴근을 한 장미가 서류가방을 든 채 연습실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또 국수 삶았구나.  아주 밖에까지 참기름 냄새가 진동을 하네."


비닐장갑을 낀 채 국수를 비비던 태석이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그쪽을 향해 만면에 미소를 띤 채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고는 국수그릇에 국수를 담고 위에 삶은 계란 반쪽을 올린 뒤 깨를 솔솔 뿌린 그릇을 들고 그녀에게 다가왔다.  국수그릇을 본 리온이 얼른 그릇을 태석의 손에서 받아 들려고 할 때 민수가 그의 손등을

찰싹 때렸다.


-"기다려.. 항상 뭐든지 우리 형수님이 일 번이야."


민수의 말에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붉어진 장미가 태석의 손에 들린 국수그릇을 받아 들고 연습실 한쪽에 마련된 식탁에 자리 잡았다.  그녀가 앉는 모습을 본 뒤에야 다시 주방설비가 되어 있는 벽 쪽으로 걸어간 태석은 그릇에 국수를 담기 시작했고 담긴 국수를 쟁반에 담은 민수가 레볼루션 멤버들 앞에 국수그릇을 놓아

주었다.  그리고 다들 말이 없었다.  대형 양푼에 비빈 국수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 와중에도 태석은 국수는 항상 두 그릇은 먹어야 하는 장미 몫의 국수를 따로 챙겨서 그녀가 한 그릇을 비워내자마자 그 앞에

놓아주었다.

국수를 다 먹고 난 뒤 더 먹고 싶은 표정이 가득한 레볼루션 멤버들에게 민수가 말했다.


-"야.  너희들.  아무리 소속사가 같고 연습실이 위아래층이어도 밥은 진짜 너네 층 가서 먹어라.

  한 두 번도 아니고. 이게. 뭐냐.  우리가 뭐.  예전처럼 포차 집도 아닌데.. 말이야.. "


민수의 핀잔에 장미가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그래도 레볼루션 소속사가 샤크도 관리를 해주니 비 전문가인 내가 할 때보다 자리도 잡히고 얼마나 좋아요.  같은 식구끼리 잘해봐요."


그녀의 말에 레볼루션 보컬인 리온이 입을 열었다.


-"난 지금도 궁금한 게 민수형이 그때 박자만 안 틀렸으면 결과가 어땠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리온의 말에 얼굴이 벌게진 민수가 버럭 화를 냈다.


-"야.  너는 그 얘길 왜 또 꺼내가지고.  내가 진짜 그날 편곡회의 할 때 분명 들었고 그렇게

  연습했는데.. 에이.. 씨.."





레전드락 최종 경선의 첫 무대에 오른 레볼루션이 무대를 마쳤을 때 관객들은 급한 일정으로 합류했음에도

전혀 이질감 없는 드러머 민수의 실력에 다들 감탄했다.  하지만 막상 두 번째 무대에 오른 샤크의 공연 때 중간 십 초 정도의 간주구간에서 편곡은 원곡의 4/1만큼 속도를 당기기로 되어 있었지만 민수가 원곡 박자로 드럼을 두들긴 순간 연주가 일이 초간 멈췄다.  그 순간 실수한 민수가 가장 놀랐고 기타리스트인 현준과 기태도

놀라 태석을 바라봤지만 눈을 한 번 감았다 뜬 태석은 자신의 눈앞에 놀란 표정의 장미가 보이자 살짝

웃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멤버들을 보고도 가볍게 미소를 띤 채 다시 시작하라는 눈짓을 보냈다.

그의 눈빛을 본 멤버들은 그 순간 깨달았다.

자신들이 가려는 길이 우승이 아닌 음악이라는 것을......

연주를 마친 그들을 향해 관객들은 기립박수를 보냈지만 무대에서의 실수로 감점이 된 그들은 삼등에

머물렀고 레전드락의 우승은 레볼루션이 차지했다.  밴드 샤크 팬덤은 호구냐며 크게 분노했지만 샤크는 공식 입장문을 통해 자신들의 신념을 밝히며 팬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우승 이후 레볼루션의 소속사 라디오 엔터는 밴드 샤크와 전속계약을 맺었다.  전속계약으로 샤크의 미래가 확보되자 장미는 다시 연구실로 복직했다.  

레전드락이 끝난 뒤 각자의 일정으로 바빠져서 그전처럼 자주 볼 수는 없었지만 장미는 그리고 태석은

알았다.  앞으로의 모든 시간들을 그들은 각각이 아닌 우리라는 이름으로 함께하리라는 것을......





어둠이 밀려들기 시작하는 환생사진관의 닫힌 문틈으로 납작해진 초파리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초파리는 비틀비틀 날면서도 부지런히 환생대 위로 날아가 자리를 잡았다.  자리를 잡고서야 한숨을 크게 내쉰

초파리에게 사면의 창에서 빛이 날아드는 순간 초파리는 생각했다.


'앗싸.  이제 구십팔번 남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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