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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묭롶 Jun 24. 2024

즐거운 나의 집.

6화. 쎄븐스타.

민주가 대한은행 서대문지점으로 발령을 받은 뒤 청원경찰의 출근시간은 아침 일곱 시로 당겨졌다.  

평소처럼 느긋하게 일곱 시 삼십 분에 은행에 도착한 그는 이미 셔터가 올라가고 불이 환하게 켜진 은행의 출문 앞에서 당황했다.  자신의 하루일과 중 첫 업무가 보안해제 후 셔터를 올리고 어두운 사무실에 불을 밝히는 것인데 이미 환하게 불이 켜진 사무실에 들어선 그는 지점장실에 앉아 있는 한 여자를 발견하고서야 그녀가 새로 발령받은 지점장이라는 사실을 인지했다.   마른 체격에 하얀 피부, 단발머리에 안경을 쓴 지점장실 의자에 앉은 여자는 문 앞에 서 있는 그를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다가왔다.


"처음 뵙겠습니다.  지점장 한 민주입니다."


많이 먹어야 삼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를 보며 청원경찰은 엉거주춤 인사를 했다.  새로 부임하는 지점장에 대한 수많은 소문들이 그의 머릿속을 잠시 스쳐 지나갔다.  얼떨떨하게 지점장실에서 뒤돌아 나온 그는 당장 내일부터 몇 시에 출근했을지 알 수 없는 지점장보다 일찍 출근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미국의 유명한 세무법인 회사 S&T의 추천을 받은 대한은행 최연소 그것도 여자 지점장, 최종학력은 학원가와 부모들이 그토록 원한다는 설화고등학교 지만 그 후 미국에서의 행적은 확인불가.  들리는 말로는 하버드 법대를

다녔다는 말도 있지만 말 그대로 학위증명이 안 되는 상태로 미국 세무사 자격증 CE 취득 후 S&T에 근무했다는 이력까지 신임 지점장에 대한 온갖 이야기들로 은행 직원들은 시간이 날 때마다 이야기 꽃을 피웠다.  


"그러니까 왜 S&T씩이나 되는 곳을 나와서 여기로 왔을까? 김대리님,  김대리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은행 앞 한식당에서 비빔밥을 비비던 수저를 그대로 손에 든 채 은행원 한미소가 눈을 빛내며 김대리의 대답을 재촉했다.  


"그러지 말고요.  본점에 아는 분도 많으시잖아요.  진짜 너무 궁금하다니까요.

 이 조직이 어떤 조직이에요.  하다못해 여자는 진급 못해서 지점장도 씨가 마른 조직 아니냐고요."


조급증이 나 있는 한미소와 달리 김대리는 여유롭게 수저로 된장국을 한 술 떠서 입에 넣은 뒤 자기만 아는

비밀을 알려준다는 식으로 손바닥으로 자신의 얼굴 한 면을 가린 뒤 고개를 숙이고는 입을 열었다.


"그게....... 나도 모르지.. 그런데 한 가지 확실한 건 보통 사람은 아니란 거야."






지점장 한민주의 하루는 아침 일곱 시 십오 분부터 시작되었다.  은행이 제공한 사택은 업무용 차량으로 오분 거리에 위치했다.  은행 주차장에 주차를 한 그녀는 출입문 앞에 있는 청원경찰에게 인사를 건넨 뒤 지점장실로 향했다.  옷걸이에 재킷을 걸고 자리에 앉아 업무용 노트북 전원을 켠 그녀가 첫 번째로 하는 업무는 전 세계 주요 국가들의 신문 경제면을 읽는 일이었다.  자동 번역 어플까지 지원되는 노트북으로 그녀는 미국, 일본, 러시아, 프랑스, 그리고 중동 지역 국가들과 내전 중인 국가들의 신문을 훑어나가기 시작했다.  

한참을 마우스 스크롤을 내리던 그녀의 손가락이 멈춘 것은 이집트 국영신문 알 아흐람(Ahram) 사회면이었다.  마우스 포인터가 멈춘 곳에는 사진 한 장과 함께 기사가 실려 있었다.


번역기로 표시된 기사의 제목은 [ 미쓰다 선사 소속 220만 톤급 선박 쎄븐 스타, 수에즈 운하 좌초 사고]였다.

3월 23일 네덜란드 로테르담을 향해 말레이시아에서 출항한 쎄븐 스타는 3월 31일 오후 7시 40분경 수에즈 운하 남측 6Km를 진행하던 중 선수와 선미가 대각선으로 수로 전체를 막으며 좌초되었다.  


기사를 읽는 민주의 머릿속으로 수에즈 운하의 정보가 빠르게 펼쳐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회전이 시작된 머릿속과 별개로 노트북으로 좌초 선박인 쎄븐 스타의 정보를 검색했다.


'수에즈 운하의 폭은 200미터, 확인된 쎄븐 스타의 전폭은 400미터.'


그녀의 머릿속에 경보등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곧바로 인터폰을 눌러 김대리를 호출했다.


"유럽으로 선적된 회사들의 B/L(선하증권) 자료를 모두 가져오세요."


오전 여덟 시, 자리에 앉아 느긋하게 모닝커피의 향기를 즐기던 김대리는 갑작스럽게 울리는 호출음에 뒤이은 지점장의 갑작스러운 요구에 당황했다.  기업전문 대출만 취급하는 대한은행 서대문지점의 특성상 인천을 통해 선적된 화물의 수출을 담보로 하는 대출건도 상당했기에 해당 기업들은 대출 시 선하증권(B/L)은 필수 서류였다.  스캔되어 있는 선하증권 중 목적지가 유럽인 대출목록을 출력해서 결재판에 올린 김대리가 지점장실로 들어간 것은 오전 9시였고 통화 중이던 지점장은 눈짓으로 자료를 달라고 말한 뒤 다시 통화를 이어나갔다.

통화를 하면서도 김대리가 건넨 자료를 확인한 민주는 찾아뵙고 보고를 하겠다는 말로 통화를 마친 뒤 자리에서 일어나 아직도 자리에 서 있는 김대리에게 말했다.


"저 지금 본점 들어갑니다.  오전 업무는 김대리님께 부탁드려요."





민주가 대한은행 본점 회의실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브리핑 준비가 완료된 상태였다.  수에즈 운하 사고시점으로부터 9시간이 지난 4월 1일 오전 10시 대한은행 본점에서는 대책회의가 열렸다.  은행장을 포함하여 수도권의 지점장들이 회의에 참석했고 지방권 지점장들은 화상회의로 연결된 상태였다.  회의는 사건을 최초로

확인한 한민주 지점장이 주재했다.  모니터 화면에 좌초된 선박 사진과 수에즈 운하의 인공위성사진이

올라오자 회의 단상에 오른 민주는 회의실에 앉아 있는 상급자들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포인터 펜 클릭했다.  그녀 가리킨 포인터 펜이 좌초 선박 쎄븐 스타의 선박 자료 중 전폭 부분을 가리켰다.


"먼저 긴급 상황으로 회의를 진행하게 되어 자료가 부족한 점 양해부탁드립니다.  저는 서대문지점 지점장 한민주입니다.


  어제 오후 7시 40분경 네덜란드를 목적지로 하는 미쓰 선사의 220만 톤급 선박 쎄븐 스타가

  수에즈 운하에 좌초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현재 아직 대외 언론에 공개되지 않은 채 이집트 국영신문 석간에만 기사가 뜬 상황으로 사고 여파를

  우려한 이집트 쪽에서 언론을 차단한 채 사고 수습에 나선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수에즈 운하는 원활한 운하이용료 징수를 위해 운하의 폭을 200미터로 유지하고 있는데  

  문제는 전폭이 400미터인 쎄븐 스타의 선미와 선수 부분이 대각선으로 걸쳐진 채 좌초됐다는 점입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이 선박이 220만 톤 급이라는 점입니다."


사고정보를 설명해 내는 민주를 지켜보는 지점장들의 얼굴에는 '그래서 뭐가 문제냐'는 표정들이 떠올랐다.

'배 한 척 자빠진 게 뭐가 큰 문제라고 이 난리를 치는 건가'라는 불만 섞인 표정과 더불어

'잘 알지도 못하는 게 어디서 굴러먹던 개뼈다귀 같은 소리를'과 같은 표정들이 만들어낸 소리 없는 아우성이

앞에 선 민주에게 날아왔다.  하지만  그녀는 그러한 시선에도 굴하지 않포인터 펜을 눌러 김대리가 만들어 준 대출리스트를 모니터 화면에 띄웠다.


"이 리스트는 대한은행 서대문지점이 선하증권을 첨부하여 대출을 진행한 대출 기업 명단입니다.

  대규모 수출규모를 증빙하는 선하증권(B/L)이 첨부된 유럽 발 대출금의 규모는 당 지점에서 파악된 금액만 100억 규모입니다.  

  그리고 수출품은 필수적으로 납품기한이 존재합니다.  납품기한이 지연되게 되면 적게는 지연이자나 배상에

 그치게 되겠지만 수입사 측에 원만한 협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계약파기에 이르게 됩니다."


민주의 말을 듣던 인천지점장의 낯빛이 하얗게 질린 뒤에야 지점장들의 입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특히 인천을 통해 스웨덴 조선소로 향하는 철강재가 수에즈 운하를 통과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인천지점장은 하얗던 낯빛이 검게 죽어 들어갔다.  입이 바짝 마른 그는 목을 조르는 것만 같은 넥타이를 떨리는 손가락을 넣어 헐겁게 당겼다.  그는 이제 앞에 서 있는 민주가 유일한 동아줄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녀에게 집중했다.  민주는 회의실의 달라진 분위기를 무심한 표정으로 일별 한 뒤 말을 이어 나갔다.


"이 사태는 단시간에 해결되기 어렵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대각선으로 선수와 선미가 맞물린 데다 사고 선박의 무게가 엄청나기 때문에 말 그대로 그 선체를 들어서

 옮기지 않고서는 방법이 없는 상황입니다.  

  또한 이 문제는 대한은행 서대문지점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판단 하에 긴급회의를 제안하였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그녀의 말을 듣고 있던 은행장이 앞에 놓인 마이크의 스위치를 켰다.


"그래서 해결 방안은?"


회의실에 있는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집중되었다.


"가장 시급한 것은 B/L로 대출이 진행된 건 중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 건들에 대해

  대출업체에 연락해서 수입업체와 납품기한 연장을 요청해야 합니다.

  협의가 안된다면 지연이자 배상 선에서 끝날 수 있도록 계약서 수정이 시급합니다.

  두 번째로 납품기한 연장이 협의가 된다면 수에즈 운하가 아닌 희망봉을 경유하는 노선으로의

  항로변경이 필요합니다.

  물론 이집트에서 현재 언론을 막고 있지만 대외적으로 사고 소식이 알려지기 전에 해결해야 하는

  일들입니다."


그녀의 답을 들은 은행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당장 각 지점들은 유럽발 B/L대출건 리스트를 제출하고 채권팀에서 해당 내용 취합 후 직접

 결재 올리세요.  

 그리고 각 지점장들은 해당 내용 관련해서 한민주 지점장이 얘기한 대로 대출업체 개별접촉

 결과 보고하세요.  다들 바로 움직여요."


당장 움직이라는 은행장의 말에 지점장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회의실을 뛰어나가기 시작했다.

그중 인천지점장은 회의실 문을 넘기 무섭게 스마트폰으로 제일 철강전화를 걸었다.  그런 그를 본 지점장들 대부분이 스마트폰으로 각자의 지점에 업무지시를 내리느라 회의실 앞은 아수라장이었다.  


민주의 예측대로 수에즈 운하 좌초 사고는 사고일로부터 한 달이 지나서야 좌초 선박이 인양되면서 물길이 열렸다.  가뜩이나 한 대씩밖에 통과가 안 되는 수에즈 운하가 한 달 동안 막히게 되자 선박 보험회사들은 줄도산 위기에 몰렸고 보험회사들에 청구된 보험금은 구상권으로 사고 선박의 선사인 미쓰 측으로 1조 원이 넘는 금액이 청구되었다.  선사와 선주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공방을 펼친 결과 쎄븐 스타 좌초 사고는 역사에 길이 남을 기나긴 법정싸움을 예고했다.  

수출업체들은 그 와중에도 눈치 빠르게 그 난리통을 빠져나간 대한민국의 업체들을 부러워했고 대한은행에서 대출을 하면 리스크 관리까지 해준다는 소문이 업계에 파다하게 퍼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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