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교재를 고르는 법
3. 외국어 공부에 좋은 드라마 : 결혼으로 배우는 일본어
저번에는 문화장벽을 쉽게 깨는 데는 영화만 한 것이 없다는 글을 썼다. 하나의 내러티브를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함축된 정보를 러닝타임 내에 풀어내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 영화만 보면 될까? 그렇지는 않다. 평론가들의 갑론을박이 이어질 정도로 난해한 영화는 공부에는 적합하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이해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외국어 공부하기 좋은 영화, 아니 좋은 영화를 고르는 방식에 대해 적어보려고 한다.
즉 이 글은 영화를 추천하기 위한 글이 아니라 영화를 고르는 방식을 알려주는 글이다. 원래는 하나의 글로 끝내려고 했는데, 분량이 제법 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말았다. 그래서 각 언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 별로 세 작품씩 골라서 소개하고자 한다.
킹스 스피치(2010)는 참 덕목이 많은 영화다. 역사적 사실을 잘 담아낸 점, 인간의 고뇌를 잘 그려냈다는 점,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에게도 필요한 메시지를 준다는 점이 그것이고 전체적으로 영화적 완성도도 높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숨은 덕목은 영어공부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두 주연배우인 콜린 퍼스, 제프리 러시의 영국식 영어 발음은 완벽하다. 비록 미국식 영어를 배우기엔 적합하지는 않지만 (그야, 배경이 2차 대전 영국이니까) 나오는 배우들의 발음은 정확하고 대사의 속도가 빠르지 않다. 그래서 알아듣기도 좋고, 콜린 퍼스는 말 더듬이(...)를 벗어나서 하는 연설이 매우 잘 들리고, 제프리 러시는 단어 하나하나를 정확히 잡아주는 식으로 말을 해서 따라서 말해보기 좋다.
소리 나는 대로 무작정 따라서 말하는 것을 '쉐도잉'이라고 하는데 이 영화는 중급 수준의 학습자라면 바로 쉐도잉이 가능한 속도, 깔끔한 소리를 격식 있는 영어로 내준다. 고급 영어를 배우는데도 이만한 교재가 없다.
무조건 고급 영어를 쓸 필요는 없지만, 중요한 순간에 고급 영어를 쓰면 외국인 바이어들의 눈동자가 커지거나 표정이 달라진다. 그런 영어는 어디서 배웠느냐고 꼭 물어보니 학생이든 비즈니스 맨이든 시험해보면 좋겠다.
만약 영국식 영어와 미국식 영어를 동시에 배우고 싶다면 노팅힐을 추천한다. 유명 영어 강사는 물론 대학 교수들까지 입을 모아 추천하는 영화이기도 한데, 미국식 영어와 영국식 영어가 동시에 난무하는 작품이라 교육에도 좋다.
옛날에는 동시녹음 같은 건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래서 영화를 제작한 후 나중에 배우나 전문 성우가 다시 더빙을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그래서 요즘 영화들보다 옛날 영화들이 발음이 훨씬 잘 들리고 억양이 깔끔하다.
그 미덕과 같은 영화라면 영화광들이 바이블로 여기는 명작 중의 명작이 스미스 워싱톤에 가다 (1939)를 들 수 있겠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 필리버스터, 그 필리버스터의 원조격인 영화로, 마을 청년단 대표인 순진한 청년 스미스가 댐 건설을 하려는 국회의원들의 음모로 상원의원이 되었다. 이후 재개발을 노리는 재벌들과 결탁한 상원의원들은 스미스를 회유하려 하나 스미스는 지역 주민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시도한다.
앞에서 말했듯 옛날 영화들이 전반적으로 듣기 쉽고, 발음과 문법이 정확하다. 이 영화는 그 은혜를 그대로 입은 걸작 중의 걸작. 중급 정도의 학습자가 받아쓰기 훈련을 할 때 세 번만 들어도 다 적을 정도고, 한 두 번만 쉐도잉 하면 대사가 잡힐 정도로 대사가 쉽고 정확하다. 그야말로 영어공부를 위한 영화.
여담이지만, 이 영화는 아카데미 상 11개 부문 후보에 올랐지만 하필 경쟁작이 역시 영어공부에 도움되는 명작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서 수상 후보에 오르는 데로 그쳤다. 하지만 영화적인 완성도는 지금 봐도 흠잡을 데가 없다.
그 외에도 로마의 휴일을 추천한다. 오드리 헵번의 영화가 전반적으로 영어 공부하기 좋지만 그중에서 로마의 휴일은 중상급 학습자가 자막 없이 봐도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있다. 올드 로맨틱 코미디의 진수로 지금 봐도 재미있기도 하다.
겨울왕국(2013)은 애니메이션 흥행 신화를 쓴 작품이다. 미국에서의 흥행이 대단했던 것도 그렇지만 한국에서는 애니메이션의 징크스를 딛고 첫 천만 관객 돌파라는 기록을 세웠다.
압권은 일본에서의 기록이다. 일본 시장에서는 전통적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이 강해서 타국 애니메이션은 항상 매년 개봉하는 명탐정 코난, 도라에몽에 밀린다. 하지만 겨울왕국은 사정이 달랐다. 극장 흥행 1위 2000만 관객 돌파, 블루레이 판매량은 무려 731만 장을 기록, 그전까지 1위였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아득히 넘어가버렸다. 그야말로 자국 애니메이션이 최고인 줄 아는 일본 시장에 핵폭탄이었다. 그리고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영어 교재의 핵폭탄이기도 하다.
전반적으로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은 단어가 쉽다. 문법도 깔끔하고 문체도 간결하다. 대부분 뮤지컬로 때우는데 복잡하고 장황한 대사를 쓸 수 없기 때문이다. 뮤지컬을 위해 성우 오디션을 엄격하게 진행하는데 덕분에 올라온 성우들은 가창력은 물론 발음 연기력까지 업계 최고급으로 검증받은 사람들이다. 작품이 흥행하지 못해도 노래는 높게 평가받으며, 영어교재로도 높게 평가받는다.
다만 그중에서도 겨울왕국, 더 정확하게 말하면 겨울왕국, 라푼젤, 빅 히어로 같은 최근 디즈니 영화를 추천한다. 왜냐하면 작품의 감성이 너무 오래된 작품은 공부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언어는 계속 변화하고 진화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역사 리더십 경영 매거진의 테마를 바탕으로 새로 엮어낸 <조선 리더십 경영> 이 와이즈베리/미래엔에서 2018년 11월 하순 출간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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