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리더십 경영
최근 기업의 화두는 조직문화 개선입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우선 사람들의 문화가 바뀌었어요. 예전에는 밤 12시까지 근무하고, 위궤양이 올 정도로 근무해도 급여와 복지가 좋으면 사람들이 몰렸죠. 하지만 요즘에는 이런 직장보다는 좀 덜 받아도 삶이 있는 직장을 원하는 경우가 늘었습니다.
그래서 공무원, 유력 공기업, 공기관의 채용 경쟁률이 아주 높아졌어요. 선망의 공기업에 다니는 친구가 매일 5시 칼퇴근을 하는 걸 보면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죠.
다만 문제는 기업 쪽이죠. 기업은 우수한 인재를 지속적으로 유입해야 합니다. 앞으로의 운영을 위해서도 기존 인력을 자극시키기 위해서라도요. 그리고 가장 큰 화두는 '경쟁력', '창의성'이겠죠. 현재 30대 그룹 중 제대로 수익을 내는 곳은 5군데뿐이다. 김상조 공정위 위원장님의 말입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제도를 도입해서 파격적인 인재를 채용하기 시작했는데, 과연 잘 될까요?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는 일본에서 아주 유명한 사람입니다. 바로 1만 엔 화폐에 있는 사람이거든요.
이건 농담이고 이 사람은 일본 근대화를 이끈 위인이며, 이것이 일본의 성장에 크게 기여했기 때문에 이 사람을 모를 수가 없는 겁니다.
난학(네덜란드 학문)을 공부하던 청년은 다른 일본인들이 그랬듯이 자기들과 유일하게 교류하던 네덜란드가 세계 최강의 국가인 줄 알았죠. 하지만 페리 제독이 강제로 개항한 후, 외국 문물이 쏟아져 들어오고 이 과정에서 그는 최강의 국가는 영국임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영어를 배우고 후에 정치가인 가츠 가이슈(勝 海舟)가 미국에 갈 때 따라붙어서 반년 간 미국을 돌아보죠.
이 과정에서 두 책을 집필합니다. 하나는 통역가인 존 만지로(ジョン万次郎)와 같이 집필한 일본 최초의 영일 사전 그리고 서양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려주는 '서양 사정(西洋事情)'입니다. 이 책은 1860년대에 나온 책 주제에 요즘에도 팔기 힘든 백만 권 기록을 세우죠. 이 책은 학도인 유키치를 일본의 사상조차 뒤흔드는 계몽운동가로 발돋움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일본에만 이런 난 인재가 있던 건 아니었습니다. 유길준도 마찬가지로 서양의 위력을 깨달은 사람이죠.
유길준은 1881년 게이오 의숙에서 앞에서 말한 유키치에게 사사한 사람입니다.
조선은 미국과 수교를 맺고 1883년 민영익이 중심이 된 보빙사를 미국에 보내는데요, 임오군란 이후 학업을 접고 한양에 있던 유길준도 보빙사에 따라가게 되죠. 이때 미국에 가서 갖은 문물을 본 유길준은 큰 충격을 받습니다. 조선은 호롱불 켜고 밤에 눈을 가늘게 뜨고 책을 읽는데 이 나라는 전기로 밤에 태양을 만들고 철로 만든 집이 대지를 달리고 있던 거예요.
그래서 '서유견문(西遊見聞)'이라는 책을 씁니다. 개인적으로는 이쪽이 서양사 정보다 대단한 책이라고 생각해요. 단순히 서양의 잘난 점만 적은 게 아니라 그들과 친해지고, 문화를 어떻게 배우는지까지 적은 깊이 있는 책이니까요.
자 그럼 이 책은 몇 권이 팔렸을까요? 서양 사정이 백만 권이니까 천만 권?
아닙니다. 유길준 선생은 고액권에 실리지도 않으셨잖아요?
이 책은 조선 정부로부터 금서로 취급당합니다. 그는 갑신정변을 일으켰다는 일으킨 김옥균과 친하다는 이유만으로 죽을뻔한 위기에 처하죠. 이때 한규설이 힘을 써서 겨우 목숨만은 부지합니다. 이후 서유견문을 쓰지만 금서 취급당하게 됩니다.
같은 목적으로 같은 책을 써도 국가(조직문화)에 따라 대접이 다릅니다.
이 두 사람의 행보를 가르는 사례가 또 있습니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이런 서양을 배우고 나아가 세계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서 '학문의 권장(學問のすすめ)'이라는 책을 출간하죠. 이 책 300만 부가 팔리는 초대형 히트를 치고, 그는 이후 계몽운동가가 되어 일본 역사에 길이 남을, 존경받는 위인이 됩니다.
유길준 선생도 마찬가지 행보를 걷습니다. 그는 사람이 나라를 위해서 일하고, 이를 위해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서 '노동야학 독본'을 출간합니다. 하지만 이 책은 후세 사람들이 진가를 알아줄 뿐, 당시 조선의 지배층은 이 책의 가치를 알아줄 안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유길준 선생은 역사 좋아하는 저 같은 사람, 연구자 혹은 시험 치는 학생들만 겨우겨우 아는 분이 되었습니다.
똑같은 것을 느끼고 똑같은 것을 전달했는데 어떻게 더 잘한 사람의 대접이 나쁘다고 생각하시지 않나요?
같은 인재라도 조직에 따라 보석이 될 수도, 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유키치의 '서양 사정'이 서양의 대단함을 홍보함으로써 일본이 개화할 필요만을 말했다면 유길준의 '서유견문'은 한 단계 더 앞서 나간 이야기를 합니다.
서유견문은 단순한 견문록이 아닙니다. 근대화된 서구를 보고 우리 체질에 맞는 근대화 방안을 제시한 방략 서에요. 무조건 서양 문물을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서양문물을 바탕으로 우리 문화를 체질에 맞게 근대화 하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고, 이는 100년이 지난 지금 봐도 선구자적인 혜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처지를 잘 헤아려서 개화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
물론 한계도 분명하고, 유길준이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말이 많지요. 하지만 서유견문은 상당히 앞선 서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학문 정신은 계승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2000년대 초, 업계 3위로 추락한 닌텐도를 부활시켜, 최대 전성기를 이끌어낸 이와타 사토루 사장, 그가 2003년 사장이 취임했을 때 닌텐도는 문제가 많은 조직이었습니다. 그중에서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조직문화였습니다.
80~90년대, 중소기업 닌텐도가 일본 내에서도 유래를 찾기 힘든 규모로 성장하던 과정을 겪은 사람은 회사가 업계 꼴찌로 추락해도 자부심만이 넘쳐있었죠. 하지만 90~2000년도에 새로 온 신입사원은 업계 꼴찌인 데다 나날이 실적이 떨어지는 회사에서 으스대는 선배들이 영 마뜩잖았던 모양입니다.
이에 이와타 사장은 여러 가지 특단의 조치를 취합니다. 그중 하나가 자부심에 넘치는 선배들 위주의 조직문화 때문에 숨 막히던,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넘치는 젊은 조직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와타 사장은 새로 추진하는 터치 제네레이션 프로젝트에 이들을 참여시킵니다.
그리고 사장 스스로가 이들의 직속 팀장이 됩니다
이 젊은 피가 기존의 닌텐도의 게임과는 다른 새로운 게임을 냈는데, 이 중 하나가 부진한 성적을 보이던 닌텐도 DS의 판매량을 급증시키고, 사회현상까지 낳은 '매일매일 두뇌 트레이닝'입니다. 뿐만 아니라 다른 터치 제네레이션 시리즈인 '닌텐독스' 등도 연이어 히트합니다.
새로운 팀원을 불러서 창의성을 도모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당연한 그리고 훌륭한 선택입니다. 다만 훌륭한 선택이 훌륭한 결과를 낳게 하려면 지금 조직문화에서 이들이 활약할 수 있는지 한 번 다시 검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쩌면 유길준 같은 사람을 놓치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바뀔 생각이 없다면 모를까, 바뀌기 위해 노력하면서 놓치면 아깝지 않나요?
역사 리더십 경영 매거진의 테마를 바탕으로 새로 엮어낸 <조선 리더십 경영> 이 와이즈베리/미래엔에서 2018년 11월 하순 출간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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