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딱히 무언가 엄청난 일을 하거나 성공하고 싶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그저 남들처럼, 남들만큼 사는 것. 그거면 되었다. 그렇게 살면서 사랑하는 사람과 미래를 꿈꾸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그는 좋은 남자는 아니었다. 늘 약속에 늦었고, 자신이 편한 곳에서 약속을 잡았고, 먹을 때 그녀의 취향 따윈 고려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녀의 집이 어딘지도 몰랐지만 사람들 앞에선 늘 집까지 데려다준다며 거들먹거리곤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래도 그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사랑받지 못하는 여자는 딱 질색이었다. 적어도 그는 사람들 앞에서는 그녀를 대우해 주었다.
하지만 이제 그조차 곁에 없다. 그저 그런 애인마저 사라진 지금. 그녀는 자신이 원했던 건 대체 뭘까 생각했다.
나는 뭘 할 수 있을까?
언젠가 그녀도 꿈을 꾸었던 적이 있다. 자신의 삶은 특별할 거라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뜨거운 열정과 미래에 대한 확신과 끓어오르는 아이디어는 이제 다 연기처럼 사라졌다.
아직 서른도 되지 않았는데 인생의 즐거움이 모두 사라진 기분이다. 애초에 자신에게 기쁨이 있었는지 조차 헷갈렸다. 갑갑한 상자에 갇혀 이대로 늙어 죽을 일만 기다리면 되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지금의 삶을 관둘 용기가 나지도 않았다. 따박따박 통장에 월급이 들어오는 생활을 멈출 수가 없었다.
잠이 오지 않는 건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이렇게 나이 들어가겠지. 자글자글 말라가겠지.
새로운 직장을 구하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뭘 할지도 모르는데 직장을 옮겨봤자 나아질 것 같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면 무기력하게 가만히 있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이력서를 새로 내는 것도 귀찮았다. 나이도 적지 않은데 뽑아줄 곳이 있을 지도 의문이었다.
어떤 사람은 태어나면서 자신의 가치를 온몸에 붙이고 태어난다. 그런 사람들은 하는 일마다 자신감이 넘치고 모든 이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으며, 또 사랑받지 않아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는 자신의 존재를 하나부터 열까지, 아니 그전에 숫자 그 자체부터 증명해야 하는 숙명을 지고 태어난다.
내가 여기 있어요, 이것 보세요. 내가 이렇게 무언갈 하고 있잖아요. 내가 이걸 해냈으니 이젠 내 머리를 좀 쓰다듬어 주세요. 이렇게 말이다.
하지만 그나마의 관심도 오래가지 않는다.
빛은 금방 꺼지고 잠시 찾아온 온기는 쉬이 떠나간다. 순간이다. 그 순간의 밝음을 잊지 못하고 나방처럼 빛을 향해 돌진하다 결국 죽어버리는 사람들도 있다.
그녀는 후자였다.
누군가 말했다. 목소리는 크고 작음보다 주파수에 의해 결정된다고. 유독 귀에 잘 꽂히는 주파수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고.
그 말이 사실이라면 그녀의 목소리는 사람들에게 닿지 않는 주파수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언젠가 자신이 인생의 주인공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언젠가 자신도 반짝반짝 빛날 거라고.
그래서 그녀는 매일 새벽 네 시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했다. 무언가를 놓고 출근하는 것도, 정돈되지 않은 복장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도, 붐비는 도로에서 답답함을 느끼는 것도 질색이었다. 새벽은 그녀에게 자신이 빛나도록 광을 내는 중요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부턴가 새벽 네 시는 그녀가 끝내 잠들지 못하고 마주하는 시간이 되었다. 뒤척이고 뒤척이다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하다, 열을 세었다 양을 세어도 기어이 잠에 들지 못한 채 야속하게 맞이하는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