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불면의 밤을 함께해요."
그는 카페에 올라온 글의 제목을 떠올렸다. 데뷔한 지 몇 년이 지나도 도통 뜨지 못하는 무명가수가 조용히 부르는 노랫말 같기도 했다.
1시 15분.
아직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세게 불던 바람이 멎었다. 곧 한밤에도 열기가 가라앉지 않는 여름이 올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지 알 수 없었다.
그게 어디 그뿐일까 싶지만.
회사에서 그는 늘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일분일초도 허투루 보낼 수 없었다. 잠시라도 눈을 뗄 수 없게 일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호시탐탐 그의 꼬투리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집중해야 해. 잘 해내야 해. 보란 듯이 해내야 해. 꼭 살아남을 거야. 모두 나를 무시하지 못하게 만들 거야. 나는 꼭 이기고 말 거야.'
그는 전쟁터에 나가는 장수처럼 늘 자신을 다잡고 온몸을 갑옷으로 무장해야 했다.
하지만 낮의 전쟁이 너무 치열한 탓이었을까. 그는 밤에도 도통 잠을 자지 못했다.
낮에 마무리 짓지 못한 일들과 그에 따른 문제들. 거기에 사람들이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까지.
눈을 감으면 모든 게 한꺼번에 덮쳐왔다.
그렇게 자지도 깨지도 못한 채 밤을 지새운 지 여러 날.
이제 그는 차라리 무언가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렇게 한 밤 중의 러닝 모임에도 나오게 된 것이다.
그런 그가 아까부터 움직이지 못하고 주저했던 건 다른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그저 편의점 테이블에 앉아있는 여자 때문이었다.
그는 줄곧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칼 같은 단발 덕에 갸름한 얼굴이 더 돋보이는 푸르도록 하얀 피부의 여자. 조거팬츠에 러닝화, 흰 티의 가벼운 차림인 그녀는 텀블러를 한 손에 들고 다른 손에는 핸드폰을 쥐고 있었다.
화장기 없이 수수한 차림에 귀걸이나 목걸이 같은 액세서리 하나 없었지만, 길게 기른 손톱에는 새빨간 매니큐터가 반짝이며 존재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에게서 반짝이는 건 손톱뿐이었다. 눈빛은 공허했고, 어깨는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듯 굽어있었다. 텀블러를 만지작거리는 손에는 힘이 하나도 없었다. 잠을 자지 못해 피곤한 건지, 힘이 들어 잠이 오지 않는 건지.
하지만 그런 구분이 무의미하다는 건 그도 잘 알고 있었다. 잠을 자지 못하는 사람들은 모든 경계가 무너진 인간들이었다. 낮과 밤의 경계, 수면과 각성의 경계, 피로와 의지의 경계. 그 모든 것이 무너진 상태에서 사는 자들이다.
여자는 텀블러를 열어 음료를 마셨다. 커피일까, 차일까. 여자에게는 다소 커 보이는 텀블러였다. 언제나 저렇게 몸보다 큰 짐을 지고 다니는 사람인 것처럼, 그녀의 동작 하나하나에 고단함이 묻어났다.
그는 조금 더 서서 그녀를 바라보기로 했다.
종일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세상의 모든 무게를 짊어진 죄인처럼 온몸이 아프고 가슴께가 뻐근했다.
사무실 구석에 있는 그의 자리 파티션 왼편에 A4용지에 작은 점을 찍어 붙여두었다. 머리가 복잡할 때면 그는 그 점을 한없이 바라보았다. 그의 세계는 그 점보다도 작아 보였다.
그런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나가는 동료들은 예술 작품이냐며 농반 진담반 말을 걸었지만 그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누구나 부러워할만한 직장이었고, 부모님에게는 언제나 자랑스러운 아들이었다. 그는 그 삶이 제대로 사는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 탄탄한 길이 자꾸 그의 숨통이 조여왔다.
이상하다.
그녀를 보고 있을 뿐인데 숨이 쉬어진다.
시원한 바람이 그의 가슴 위를 흔들 듯 스쳐갔다.
그는 조금 주저하다 걸음을 내디뎠다.
그녀에게 한 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