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를 기다리며] 막연함에 대한 두려움보다 기다림에 대한 희망
기다림의 끝은 무엇일까?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은 설렘을 주기도 하지만, 가슴을 졸이게 하는 일도 된다. 기다려본 사람이라면 그 벅찬 감동을, 때로는 기다린 후의 절망과 쓰라림으로 눈물을 흘리기도 했던 경험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처럼 기다림은 극단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지만, 결과보다 기다리는 동안의 무한한 상상과 자극은 우리를 울리고 웃게 만든다.
사무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는 등장인물들이 '고도'를 기다리는 이야기로, 이 과정을 통해 기다림의 미학을 성찰하게 한다. '고도'가 무엇인지, 혹은 누구인지조차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채 끝을 맺지만, 이 모호한 주제는 오히려 더 많은 사색을 불러일으켜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이 작품이 196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것은 인간의 방황과 그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삶의 가치를 표현했기 때문이 아닐까.
특히 이 작품이 탄생한 시대적 배경은 2차 세계대전으로, 2천 년간 지배해 온 기독교적 세계관이 무너지고 인간 존재의 허무함과 두려움이 유럽을 감싸고 있었던 시기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베케트는 인간의 삶을 더욱 가까이 다가가 바라보았고, 주체적인 삶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실체 없는 기다림을 통해 허무와 좌절을 경험하지만, 결국 서로를 인정하고 의지함으로써 희망을 발견하는 과정을 그려낸다.
세 쌍의 등장인물은 각자의 이유로 삶을 이끌어간다.
첫 번째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곤이다. 이들은 오랜 친구로, 같은 장소에서 '고도'를 기다려 왔지만, 언제부터 기다리기 시작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약속된 장소도 불확실하고, '고도'가 올 것인지에 대한 혼란도 가득하다. 이들의 모습은 막연한 기대감 속에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과도 닮아 있다. 기다림이 극단적인 상황을 초래할지라도, 삶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계속 기다리는 것이 필요한 법이다. 서로가 있기 때문에 그 희망고문 속에서도 버틸 수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포조와 럭키다. 이들은 다음 마을로 건너가는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있지만, 주종 관계 속에서 한쪽의 명령에 따라 살아간다. 서로에 대한 증오와 갈등이 존재하지만, 어쩔 수 없이 묶여 살아가는 인간 본연의 외로움을 표현하고 있다. 결국 이들은 서로를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는 존재로 남는다.
마지막은 소년과 '고도'다. 소년은 '고도'의 말을 전하지만, '고도'에 대한 기억은 없다. 흰옷을 입은 소년은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전하는 역할을 수행하며, ‘고도를 기다리며’의 핵심적인 대사를 전달하는 인물이다. “오늘 밤엔 못 오고, 내일은 꼭 오겠다고 전하라 했어요.” 이 대사는 오늘의 절망감과 내일의 희망, 양면성을 나타낸다. 소년의 순수함을 통해 더욱 절실히 느껴진다고나 할까.
'고도'가 무엇인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지만, 그래서 '고도'는 열린 대상으로 남는다. 각자는 저마다의 삶 속에서 '고도'를 발견하게 된다. 누군가에게는 신이 될 수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사랑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고도'가 거창한 것이 아닐지라도, 각자의 삶에서 소중한 의미를 지닐 수 있다. 작가의 의도보다 중요한 것은 독자의 경험과 사회적 맥락을 통해 개인적으로 해석하고 완성해 나가는 것이다.
각자가 자신만의 상징을 가지고, 의미를 가진 삶을 살아갈 때 진정한 가치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고도'를 기다리는 그 끝이 아름다워지기 위해, 오늘도 가치 있는 삶을 만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