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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트온 Dec 17. 2023

필요 없어지면 버리는 도시에서 (1)

[소설] 뭄바이의 북극여우 


남편이 한국으로 떠난 그날 오후, 나는 아니샤에게 이제 그만 와도 된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우리 집 저녁과 청소를 위해 군말 없이 수고해 온 사람에게, 더 이상 필요 없다고 갑자기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것이 미안해서, 그동안의 수고비에 일주일치 수고비를 더 얹어 건넸다. 미안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이제 그만 왔으면 했던 건 세 가지 이유였다. 일단은 남편이 없는 동안 집에 좀 조용히 있고 싶었고, 한동안은 집에 우리 세 식구만 있는 게 낫겠다 싶었고, 마지막 이유는, 유리가 오면 아무래도 저녁 한 끼라도 한식을 해줘야 할 것 같아서였다. 온라인으로 운영하는 한국 마트에 주문할 수 있는 것들을 주문해 놓고, 고모에게도 전화해서 인도에서 구할 수 없는 한식 재료들을 급히 좀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고모에게 인도산 향신료들과 헤어, 피부 관리 제품들을 넉넉히 보내드리고 있기도 하지만, 고모는 내가 결혼한 이후 더 다정하고 세심하게 챙겨준다. 친정이 없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말을 몇 번이나 했었다.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친정은 아니라도, 물건 정도는 부탁할 수 있는 친정이 있다는 느낌이 이젠 확실히 든다. 


남규식은 지난번 뭄바이행을 결정했다는 문자 이후, 조용하다. 너무 이상하리만치 조용해서 불안하다. 불안은 사람을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만든다. 유리를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는 명분을 무제한 신용카드처럼 쓰며 며칠 내내 쇼핑을 했다. 매일 이리저리 다니며 물건을 사모았더니, 집이 물건으로 가득 차, 안 그래도 쥐구멍 만한 사옥이 이젠 개미 코딱지 만하게 느껴질 때쯤 쇼핑을 중단했다. 그나마 사옥 타운하우스는 방이 세 개라 어른 침실과 서재를 제하고도 유리 방을 만들어 줄 수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마침, 급히 주문한 침대와 책상도 배송 시간을 정확히 잘 지켜 도착해서 방까지 미리 꾸며줄 수 있었다. 새로 산 진홍색의 이불을 빨아 햇볕에 잘 말려 침대 위에 깔아 놓고, 베개와 색색의 쿠션도 침대 이불 위에 올려놓았다. 집에 있는 필기구와 몇 가지 사 온 학용품들을 분류해서 책상 서랍 안을 채워 놓고, 책상 위 조명등과 침대 머리맡 램프도 설치했다. 방 꾸미는 일도 미친 듯이 몇 시간 하니 더 이상 손댈 데가 없어, 이젠 더 이상 할 일을 찾지 못하고, 오후 내내 손에 잡히지도 않는 글을 써 보겠다고 랩탑을 열어 놓고 책상 앞에 앉아 다리만 달달 떨고 앉아 있다.  


왜 이리 불안한 걸까. 내일 도착하는 사람들에 관해서만 생각하려고 애를 쓰지만, 도무지 견딜 수가 없어서, 내가 먼저 남규식에게 문자를 넣어버렸다. 


[언제 뭄바이에 와요?]


늘 실시간으로 문자를 확인하는 인간인데, 몇 시간이 지나도 내가 보낸 문자 옆에 1이 지워지지 않는다. 조용해서 좋은 것보다,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어서 불안한 느낌이 더 크다. 쇼핑하고 몸을 움직여 일하는 것 말곤, 불안할 때 해소하는 법을 달리 모른다. 요가가 마음 차분히 다스리는데 그렇게 좋다는데, 인도에 살면서 요가를 제대로 배워 두지 않은 게 문득 아쉽다. 옛날 할머니처럼 그릇이라도 다 꺼내 닦아 봐 생각하다가, 차라리 밖에 나가 사람을 만나기로 마음을 바꾼다. 아쉬운 대로 인도에서 그나마 가장 친한 친구로 느껴지는 아난트에게 문자를 넣으려고 전화기를 잡는데, 문자 하나가 도착한다.


[Howdy?]


마음이 통한 건가!  장난꾸러기 아난트다. '찌찌뽕'이라고 답을 할 수 없어 아쉽다. 짧은 문자에도 녀석의 매너와 위트가 동시에 느껴진다. 그가 보낸 문자 알파벳 하나하나에서 따스한 햇살 같은 빛줄기가 스며 나오는 것만 같다. 내가 이 녀석에게 받는 에너지가 확실히 있구나 싶다. 그리고 내가 먼저 문자 하기 전에 아난트가 먼저 문자를 준 것이 기분이 좋다. 이건 내가 항상 관심이 고픈 관종이라서 그럴 것이다. 한결 기분이 나아지는 걸 느끼며 나는 이동식 키보드를 전화기에 블루투스로 연결해, 문자를 신나게 타이프한다. 


[same old same old. how about you? (맨날 똑같지. 넌?)]

[심심해. 놀자.]


어디서 보고 복사 붙여 넣기를 했는지, '심심해. 놀자'를 한국어로 보낸 걸 보고 난 또 낄낄거린다. 낄낄거릴 수 있게 해 주는 '녀석'이 무척 고팠다는 걸 지금 막 깨닫는다. 그리고 지금 내 상황이 여느 때 같은 똑같은 상황이 아닌데 나도 모르게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했다는 것도 깨닫는다. 상황이 달라진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은, 그래야 한다는 마음이 엄습한다.


[지금 잠시 보자. 스타벅스?]

[내가 데리러 갈게요. 주소 찍어.]


여기가 남편 회사 주재원 사옥들이 모여있는 동네라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지 싶다. 일부러 안면 트지 않고 조용히 있는 듯 없는 듯 지내지만, '아.. 그 문신한 한국 여자'라는 별명으로 이미 세간에 오르내리고 있을 게 분명하다. 남편이 한국 나가고 없는 집 앞에 '인도 이민호'가 눈 돌아가게 번쩍이는 바이크를 타고 나타나는 그림은 두 번 생각해도 아니지 싶다. 


[아냐. 내가 릭샤 타고 갈게. 여기 한국 주재원들 눈이 많아서 좀 그래]

[그럼 여기로 와요.]


아난트가 주소를 찍어주었다. 나는 큰길까지 걸어 나가 릭샤 한 대를 불러 탔다. 주소를 받아 적어 온 종이가 서둘러 나오는 길에 어디서 떨어졌는지 보이지 않아, 전화기와 수첩을 꺼내 다시 주소를 찾아 적어 릭샤 운전기사에게 내밀었다. 릭샤 운전기사는 주소를 받아 곧장 출발하는 대신, 잠시 내리더니 누군가에게 손을 모으고 몸을 숙여 인사를 하곤, 릭샤로 돌아와 다리를 옆으로 길게 뻗어 쉬는 자세를 취한다. 무슨 상황인가 몸을 앞으로 내밀어 보니, 어깨에 혹이 달린 얼룩소 한 마리가 뒷다리를 쭉 펼치고 드러누워있다. 


소가 일어날 때까진 꼼짝없이 여기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상황이다. 집에 갔다가 다시 나올까 잠시 망설이다가, 릭샤 운전기사가 소에게 인사하던 그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은 게 생각나기도 해서, 그냥 여기 앉아 함께 기다리기로 한다. 그에게 물었다. 


"이 소들은 주인이 없나요?"


항상 궁금했던 질문이었는데 '녀석들'을 만날 땐 이 질문이 한 번도 떠오르지 않아서 아직 답을 모르는 채였다. 


"주인이 있는 소도 있고, 없는 소도 있어요"

"이렇게 도시 안을 돌아다니게 하면 주인이 소를 어떻게 찾아요?"

"소가 자기 집으로 가는 길을 알아요."

"와, 소가 똑똑하네요."


입 밖으로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이 복잡한 도시를 누비고 다니다가 집을 찾아갈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요. 소가 얼마나 영물인데요."


하지만, 그렇게 영물이고 신성한 소가 도시의 쓰레기통을 뒤지게 하루 종일 내버려 두는 건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근데, 도시에서 돌아다니다 아무 거나 주워 먹다 소가 아프기라도 하면 어째요?"

"주인이 소 사료가 비싸서 감당 못하는 거죠. 특히 우유와 버터를 더 이상 못 만드는 암소나, 일을 못하는 늙은 황소들은 주인들이 거리에 갖다 버려서, 지금 주인 없는 소가 점점 늘고 있어요.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사실 지금 버려진 소들이 너무 많아 큰 문제예요."


시간이 남아도는 상황이라서 그런지, 사람이 친절한 건지, 릭샤 기사는 내가 묻는 족족, 자신이 아는 대로 정성껏 설명을 해 준다. 여긴 '유기견'보다 '유기소'의 문제가 크구나 싶다. 소가 그렇게 신성한 존재라 도축은 불법이라면서 버리는 건 괜찮다는 건가?


"인도 사람들에게 소는 매우 신성한 존재라고 들었는데, 버려도 괜찮나요?" 

"인도도 많이 변했어요. 예전엔 받는 것도 없이 끝없이 우리를 먹여주는 소를 어머니처럼 여겼거든요. 요즘은 자기 자신만 중요한 시대가 된 거예요. 큰 도시에선 더 하죠. 자기 부모도 다 늙고 돌봐줄 일만 남으면 함부로 대하는 세상인데, 소라고 뭐가 다르겠어요. 이용할 대로 다 이용하고 나면 버리는 거죠."


인도도 생활양식이 변화하고 도시화되면서 전통적인 가치들이 사라져 가고 있는 모양이다. 그나마 종교적 신념이 남아 있어 소를 함부로 때리고 죽이지 않는 것이 다행인 상황인 건가. 이 많은 소들이 도시를 어슬렁 거리다 죽는 일도 있을 텐데 어떻게 이 큰 사체들을 감당하는 걸까.


"길거리에서 소가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길거리에서 죽으면 골치 아픈 일이 되는 거죠. 그런 일을 막아 보겠다고, 시 당국에서 소 처리 전담 반을 만들었어요. 아침마다 길에 돌아다니는 늙은 소들을 트럭에 가득 싣고 가서 도시 밖 교외에다 버리는 거예요. 그게 답은 아니죠 사실. 교외지역은 무슨 죄랍니까. 갑자기 소떼가 우르르 치고 들어와 농작물 다 뜯어먹고 농사를 망쳐 놓으니 이건 강도 떼가 들어온 거나 다름없는 거예요. 소 도축 법이 너무 복잡하고 까다로우니까, 그냥 서로 소를 남의 동네에 떠넘겨 버리는 거예요……"  


인도도 인구가 많다 보니, 소들이 자유롭게 풀을 뜯고 여생을 보낼 마땅한 초장이 없는 모양이다. 릭샤 운전기사의 목소리가 점점 슬퍼진다. 문득, 자유롭게 풀을 뜯고 여생을 보낼 마땅한 초장이 없는 게 소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밀려온다. 평생을 이용당하다 버려지는 게 소만이 아니다. 또한 버려진 존재는 쓰레기 통을 뒤질 수밖에 없다는 깨달음도 온다. 버림을 받았으니 내 인생에 쓰레기가 많은 것이 당연한 결과라는 익숙한 결핍감이 폐부 깊숙이 찔러대니, 내 눈에도 눈물이 고인다.


어느새 소는 쉴 만큼 쉬었다는 듯, 힘겹게 일어나더니 물기 가득한 똥을 철철 싸며 천천히 걸어간다. 아마도 배탈이 나서 잠시 앉아 있었던 모양이다.


덕분에 푹 쉬었던 릭샤는 막힘없이 달려 나를 시내 큰 빌딩 앞에 내려주었다. 빌딩 앞에 서 있던 아난트가 성큼성큼 걸어와, 적당히 가볍고 따뜻한 솜이불 같은 허그를 한다. 그에게서 나는 향도 부담스럽지 않고 딱 적당히 상쾌하다. 그가 뿜어내는 건강한 햇살 에너지가, 내 속에서부터 올라오던 습기를 바삭하게 말린다.


"잘 지냈어요? 진짜 오랜만에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왜 이렇게 늦었냐고 물어보면, 소 때문이라도 말해주려고 했는데, 물어보질 않는다. 생각해 보면, 인도에서 만난 인도인 누구도, 늦게 나타나는 상대를 탓하지도, 자신이 늦게 나타난 것에 대해 사과를 하지도 않는다. 소를 기다리는 시간의 당연함이 인도 사람들의 몸에 밴 것일까. 


"그러게. 진짜. 오랜만에 보는 느낌이다. 잘 지냈어?"

"다음 이야기가 듣고 싶어서 기다리기가 힘들었어요."

"그럼 연락하지 그랬어."

"이상하게 좀 망설여지더라고요. 뭔가 시간을 좀 드려야 할 것 같은 느낌?"


역시 똑똑하고 감이 빠른 녀석이다. 내가 저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 주고 싶은 건지 머릿속이 정돈되어 있지 않다는 걸 느낀 게 틀림없다.


"시간이 필요하긴 했지. 사실 나 할 얘기가 좀 있어. 어디 들어가자."

"오! 오늘은 드디어 할 얘기를 해 주는 거예요?"


아난트는 우리 뒤에 서 있던 빌딩 안으로 날 이끌었다. 이번엔 일반인용 스카이라운지였다. 


"와. 여기 좋다. 여기도 꽤 높은데?"

"맞아요. 여기가 뭄바이에서 두 번째로 높은 빌딩이에요."

"와, 내가 뭄바이에서 가장 높은 빌딩 두 개를 다 봤네!"


문득 나도 모르게 신나서 떠들고 있는 자신을 느끼며, 아난트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그를 만나기 전, 재밌는 '녀석들'이네. 그래 너네 중 아무나 걸려라, 같이 놀면서 내 비참한 현실 좀 잊어 보자, 이런 생각으로 만났던 것이 미안해질 만큼. 아난트는 만날 수록 따뜻하고 진중하고 좋은 친구라는 느낌이 든다. 왠지 더 이상은 그와 본심을 우회하려는 말장난이나 거짓말은 하기가 싫어진다. 


"남편에게 전처와 사이에 낳은 딸이 하나 있어. 지금 남편이 걔를 데리러 한국에 나갔어. 내일 둘이 같이 들어와."

"와우! 그럼 이제부터 그 남편의 딸과 같이 사는 거예요? 여기서? 한국에선 같이 살았었어요?"


아난트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겠단 얼굴로 다다다 질문 공세를 한다. 나는 그 질문들에 하나하나 성실히 대답을 해 줄 참이다.


"아니 남편의 어머니가 쭉 키웠지. 한 번도 같이 산 적 없어."

"그 딸이 지금 몇 살인데요?"

"만으로 열네 살. 여기 오면 바로 고등학교 들어가면 될 나이일걸."

"맞아요. 열네 살이면 여기 고등학생 나이예요."

"그지?"

"와우! 그렇게 큰 딸과 갑자기 같이 사는 거 쉽지 않을 거 같아요."

"안 그래도 지금 걔가 사춘기가 와서 난리라고 해. 그래서 인도에 아빠한테 오기로 한 거고."

"여기서 국제 학교 보낼 거예요?"

"그래야겠지?"

"영어는 잘해요?"

"어느 정도는 하겠지? 요즘 한국애들 어릴 때부터 영어 많이 배우거든."


아난트는 더 이상 질문을 않고, 가만히 나를 응시한다. 한참 어린 녀석이지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읽어지지 않는다. 


"언제든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해요. 내가 좀 시간이 많은 거 알죠? 내가 생각보다 아는 것도 할 줄 아는 것도 많거든요? 걔 이름이 뭐죠?"

"유리"

"유리하고 있다가 뭔가 도움이 필요하거나 힘들어지면 내가 있다는 거 잊지 말아요. 다시 말하지만 내가 생각보다 쓸모가 많아요. 기억해요 꼭!"


나도 모르게 테이블 위로 손을 뻗어 그를 향해 내밀었다. 아난트가 기꺼이 손을 뻗어 마주 잡는다. 나는 다른 한 손으로 눈물을 훔치면서, 맞잡은 그의 손이 뜨겁다고 느껴질 정도로 따뜻하다는 걸 느낀다.  모두가 자신만을 위해 사는 도시에서, 이용하려고만 혈안이 된 이 시대에, 그는 이제 애까지 딸려서 놀아주지도 못하는 아줌마, 작가라면서 대단한 이야기도 없는 외국인에게 따뜻한 마음을, 따뜻한 손을 기꺼이 내어주고 있다.  



대문 이미지 출처: Pixabay (by rahulsinghvi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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