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 소년의 이야기. 어릴 적 나무와 친구였던 한 소년. 나무는 그네의 자리도 내어주고, 먹을 것도 내어주고, 기둥을 잘라 집을 만들 수 있도록 내어주고, 세월이 흘러 어릴 적 그 소년이 노인이 되어 찾아간 나무는 덩그러니 그루터기만. 그럼에도 나무는 그루터기를 내어주며 쉬어갈 수 있도록 해주었다. 나무는 그렇게 다 내주었다.
어릴 적 읽었던 동화였고, 아이들 어릴 때 함께 읽으며 괜히 감성이 진해져 울컥하기도 했던 동화다. 나무는 늘 내어주고 또 내어준다고. 그럼에도 나무는 슬퍼하거나 가져가기만 하는 소년을 원망하지 않으며 늘 기다린다는 이야기로 감동을 받으며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던 책이다. 책을 읽곤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지 표현해 보며, 그렇게 책으로 감동을 얻었었다. 모든 것을 다 내어주시는 부모님을 떠올리기도 했고, 내가 엄마가 되었기에 엄마가 되어 다시 엄마를 떠올리며 어머니의 마음을 1%라도 이해하는 마음에 울컥하여 눈시울이 붉어졌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마음 한편 감동을 가져다준 나무를 어느 날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부모님을 떠올리거나, 내가 엄마임을 자각하며 나무와 빗대어 생각한 것이 아니라 한자리에 서있는 그 나무를 가만히 올려다만 보았다. 나보다 아주아주 커서 고개를 꺾고 꺾어도 끝이 잘 보이지 않는 나무였다.
얼마 전 계룡산에서
참으로 크기도 하지.
참으로 푸르르기도 하지.
긴 시간을 그 자리에서 계절의 옷을 갈아입으며 서서히 다가올 올해의 여름을 나무는 그렇게 기다리고 있었다. 풍성해진 머리로 봄볕이라 하기에는 뜨거운 햇빛을 가려주며, 그 아래에 서있는 내게 시원한 그늘을 선사해 주었다.
나무가 있음으로, 그리고 그 아래에 내가 서있음으로 시원한 그늘을 맞이했다.
나무는 그랬다. 뭘 바라고 내어주는 것이 아니었고, 자신은 늘 그 자리에 서서 스쳐가는 모든 이에게 조건 없이 그냥 내어주고 있었고 풍성해진 잎새로 태양의 빛을 흡수하고 땅으로부터는 양분을 흡수하며 있는 힘껏 하늘을 바라보며 성장해 나가고 있었다.
240407. 올해 첫 자전거 나들이_올해의 봄을 받아들이던 날에. 고목을 만나다.
사계절의 반복된 삶 속에 멈추지 않으며 성장하는 나무.
어느 계절이 되었던 멈추지 않고 늘 성장하고 있는 나무를 본다.
하늘을 바라보며 위로 자라고, 한아름도 안되던 날에서 둘레가 커지며 아름드리나무로 자라난다.
추운 겨울, 잎을 다 떨구었어도 겉모습은 마른 가지 되어 성장하지 않을 것 같지만,나무는 그렇게 서리 내리는 한 겨울에도 멈추지 않고 마디게 자란다. 그 마딘 자람이 있기에 더 단단하고 튼튼하게 더 곧게 자라고 있는 나무를 본다.
출처_사진: Unsplash의Joey Kyber
따뜻한 볕이 내리쬐는 봄이 오면 초록초록 잎이 돋아 더 한껏 자라나는 나무에게서 싱그러움과 살아있는 생동감을 엿본다. 작은 싹이 넓어져 풍성하게 덮인 잎새들로 쏟아지는 볕을 흡수하며 광폭으로 성장하는 네 모습. 제 때를 아는 본능으로 크게 크게, 높게 높게 자란다. 그렇게 제 때를 알며 나도 그렇게 자라나면 참 좋으련만.
찬 바람 불어오는 가을, 나무는 광폭으로 폭주하듯 성장했던 걸음을 서서히 늦춘다. 마치 넘쳐나면 안 되는 걸 아는 것처럼. 멈출 줄 아는 지혜가 있다. 성장의 시간을 지나고 성숙의 시간으로 넘어가는 지혜로움. 그렇게 단단해질 준비를 한다.
자라고 또 자라는 나무에게서 멈추지 않고 성장하는 지혜를, 잠시 쉬었다 갈 줄 아는 지혜를 배우고 또 배워간다.
주변의 환경에 맞춰 자신의 속도대로, 자연의 섭리를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며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꿋꿋하게 성장하는 나무.
나무들의 아래가 불룩하고 중간마다 나무가 패어있는 모습을 본다. 그랬다, 나무는. 돌이나 바위가 있으면 그 돌과 바위를 품고 자라난다. 사이에 박혔던 돌은 자라며 떨어져 나가 패어있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 뿌리부근의 돌은 그대로 품고 자라난다. 거부하지 않는다. 돌을 품고라도 그 아래로 더 깊이 뿌리를 박아 쓰러지지 않을 만큼 단단하게 자신의 몸을 세운다. 그만큼 생명력이 강한 것일 수 있고 그것을 살고자 하는 의지로 빗대어 바라보게 되었다. 타고난 아픔이 있어도 그것을 품고 커가고, 오히려 그 아픔으로 인해 더 단단하게 뿌리박아 쓰러지지 않을 그 이상의 힘을 키워 살아나가는 의지 말이다. 그리고 자라다 이 정도는 버려도 될만한 아픔이라 여기면 툭 던져내 버리는 의연함까지 갖추었다고 본다면 나의 억측이 들어가는 것일 수도 있지만, 돌을 품었거나, 혹은 패어있는 나무를 바라보며 그날의 내가 느꼈던 느낌이다.
그렇게 나는 주변의 환경을 거부하지 않은 채 자연의 섭리대로 자라는 나무를 바라보며, 삶의 의지와 의연함을 나무로부터 배울 수 있었다.
훗날에 나무를 바라보며 더 많은 가르침을 얻을 그날이 올 거다. 다만 지금의 내 눈으로 바라보고, 마음으로 느끼며 생각한 나무를 통한 오늘의 배움은 살아가는 삶의 모습, 성장과 성숙의 과정을 자연스럽게 넘나들며 조절할 줄 아는 지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