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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하 Oct 16. 2024

자연스럽게

운동을 하는 중입니다 - 24가을

 운동 시작한 지 년만에 다니던 PT샵이 폐업을 결정했다.

 선생님의 초조함과 피로함이 묻어나는 수업에서 어느 정도 눈치를 채고 있었고, 준비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마지막 인사를 드린 날, 동네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헬스장에 가입했다.

 새 PT 선생님은 댄서 출신이었다.

 통통 튀는 듯한 활력이 느껴지는 근육을 가진 선생님의 바디프로필 사진이 헬스장 홍보 포스터로 제작되어 곳곳에 붙어 있을만큼 그녀는 그곳의 얼굴이었다.

 선생님은 PT를 결제하자마자 나에게 바디프로필 도전을 원했다.

 식단도 관리해 주겠다며 1일 1,500kcal로 제한을 원했다.

 자신을 믿고 따라와주기만 하면 누구나 부러워하는 몸으로 변화시켜주겠다고 확신에 차서 말했다.

 나는 선생님의 열정 넘치는 제안을 덤덤하게 거절했다.

 선생님은 노력만큼 결과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고, 나는 노력은 과정에 필요한 연료일 뿐 결과를 담보하지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녀와 나의 경험에 의해 서로의 세상이 달랐기에 생각도 다를 수밖에 없었다.

 특히 나는 그 결과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여 사회의 기준에 맞춰진다면 쫓거나, 쫓기다가 결국 실패할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운동 기준과 운동 계획이 필요했다.

 나는 살을 빼는 게 목표 중에 하나이긴 했지만 목적은 아니었다.

 나의 운동 목적은 건강이었다.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어느 정도의 체중 감량과 체력, 근육량 증가가 필요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일지는 알 수 없었고, 그 과정에서 어떤 몸의 변화가 일어날지도 알 수 없었다.

 선생님의 난감함도 이해는 갔다.

 아무리 개인 트레이닝이라고 해도 정해진 운동 범위와 계획은 있기 마련이었고, 그것은 그간의 PT데이터로 도출한 평균값일 테니까.

 우리는 서로에게 불안감을 가진 채 시작했지만, 그만큼 소통에 공을 들였다.

 허리 통증을 표현하는 말만 해도 같은 증상에 대해 그녀는 허리가 당기지 않냐고 물었고, 나는 당기지는 않는데 허리가 뜨는 느낌이라고 답했다.

 우리는 서로의 언어를 통일하기 위해 해부학적 지식을 동원하기도 했고, 그녀의 근육과 나의 근육을 촉감으로 느껴보며 직접 비교해 보기도 했다.

 식단은 1,500kcal로 양을 제한하지 않고, 먹는 음식과 식습관을 공유하며 의견을 나눴다.

 나는 무언가를 안 먹는다는 생각만 해도 그때부터 음식이 너무 먹고 싶어지는 사람이었다.

 음식 절제는 나에게 너무 어려운 것이었다.

 그래서 '안 먹는다' 대신 '먹는다'로 목표를 바꿨다.

 채소, 동물성 단백질, 식물성 단백질, 탄수화물이 고루 담겨 있는 세 끼를 매일 먹었다. 

 음식을 먹는 순서를 채소->단백질->탄수화물 순으로 바꿔 먹었다.

 음식은 가급적 정해진 시간에 규칙적으로 먹었다.

 간식을 먹을 때는 과자보다는 견과류를 먹었다.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간식인 케이크와 아이스크림은 힘든 운동한 날 보상으로만 먹었다.

 변화한 식습관을 잘 지켜나가는 것을 본 선생님은 식단에는 더 이상 관여하지 않았다.

 대신 PT 이후에도 혼자서 실천해 나갈 수 있는 운동 계획을 완성해 주는 것에 집중해 주었다.

 그때즈음에는 나도 선생님도 내 몸의 신비에 감탄하고 있었는데 전날 조금만 도전적이게 운동하면 다음 PT 때는 어김없이 근육이 뒤틀려 있었다.

 특히 양 다리는 똑바로 섰을 때 길이 차이가 한 뼘 이상 확연히 보일 정도였다.

 선생님은 매번 수업 전에 뒤틀린 근육부터 풀어주며, 내가 직접 근육 뭉침을 관리할 수 있도록 스트레칭과 폼롤러 사용법 같은 것을 꼼꼼히 알려주었다.

 그리고 운동도 요가나 필라테스의 영향을 받은 유연성과 근력을 키워주는 맨손 운동 위주로 구성해 주었다.

 그렇게 년 동안 우리는 조금씩 서로에게 적응했고, 새로운 생활 습관과 운동방식에 적응했다.

 그동안 나는 기초체력이 늘면서 식사량이 자연스럽게 줄었다.

 가짜 식욕이 없어진 것이다.

 근육량도 증가해서 평균 이상의 근육량을 갖게 되었다.

 아침에 모닝벨소리가 울리기도 전에 눈이 번쩍번쩍 떠졌고, 침대에서 뭉기적 거리지도 않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들은 모두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였다.

 몸이 이전보다 탄력 있고, 건강하게 보이긴 지만 남들이 눈치챌 정도의 변화는 아니었다.

 타인이 알아 볼만큼의 살빠짐이 없는 게 속상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건 대수롭지 않았다.

 나는 자연스럽게 다시 건강해져 있었고, 운동하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틀어졌던 골반이 교정되며 팔자 걸음도 고쳐지자 힘차게 땅을 발바닥으로 밀어내며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도 알게 되었다.

 모든 것이 순탄하던 그때 PT 선생님이 헬스장을 관두게 되었다.

 헬스장에 있던 그녀의 포스터가 모두 떼어지고, 새로운 헬스 트레이너들의 사진들로 채워졌다.

 그렇게 나의 운동 독립은 갑자기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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