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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하 Jan 16. 2024

위로의 말을 찾아서

서하의 On-Air

「오늘 날씨는 어제보다 시원합니다.」

 밤새 내린 눈이 그쳤나 보기 위해 들어간 일기 예보 화면에 실소가 터졌습니다.

 같이 운동을 하며 친해진 친목방에 화면을 캡처해서 올렸더니 센스 있는 지인이 맞장구를 치더군요.

 "어쩐지 어제보다 덜 덥더라."

 체감온도 영하 12도에 농담으로 웃으며 하루를 시작하니 밖에 날씨가 춥지 않고 시원하게 느껴집니다.

 일정이 많아 고달플 것 같았던 하루가 상쾌한 하루로 순식간에 모습을 바꿨습니다.

 말은 이렇게 사람의 감정을 쥐락펴락하는 힘이 있습니다.


 근래 읽었던 책 중에 아라이 유키 작가의 말에 구원받는다는 것을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저자는 일본에서 2010년 후반부터 말의 파괴 속도가 빨라지며 차별과 혐오의 말들이 사회 지표에 켜켜이 쌓이고, 단단히 굳어지는 과정을 지켜보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문학자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그 파괴된 말들의 층을 파헤쳐 속살을 드러내기 위한 인터넷 연재를 시작했고, 그 분투의 결과물로 이 책이 나왔습니다.

 문학자의 사명감이라는 말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저자는 문학자를 이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문제를 말의 시점으로 생각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정의 내렸습니다.

 그리고 문학자의 고충에 대해 이런 솔직한 고백을 합니다.

 세상은 짧고 이해하기 쉬운 문구로 정리되지 않는 것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고 간주한다.
 하지만 세상에는 짧은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말의 존재가 있고, 그것을 그려내고 싶다.
 소중한 것일수록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자 인간의 업보인지라 깔끔하게 정리하고 요약하기란 불가능했다.

 저 역시 비슷한 고민을 했고, 아직도 하고 있는 중이고, 앞으로도 할 예정입니다.

 그 과정에서 저자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습니다.

 언어학과 관련한 책들, 심리학과 관련한 책들을 읽어보면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은 대략 대여섯 가지입니다.

 기쁨, 경악, 분노, 슬픔, 공포, 혐오.

 눈치채셨나요?

 기쁨을 제외한 나머지 감정은 모두 고통의 감정입니다.

 장자크 루소의 언어 기원에 관한 시론 중에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처음 한 말에 대한 부분이 있습니다.

 루소는 언어의 기원을 남방 언어와 북방 언어로 구분하여 남방 언어는 "사랑해.", 북방 언어는 "도와줘."가 최초의 말일 거라고 추론합니다.

 이유는 남반구는 자원이 풍족하고, 생명의 위협은 적었던 반면 북반구는 자원이 부족하고, 생명의 위협은 많았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위협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본능, 이것의 정체가 바로 고통의 감정인 것이죠.

 신은 인간에게는 아무 능력도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공감을 통해 서로 마음을 연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연결된 마음, 고통을 함께 이겨내는 마음에서 피어오르는 보상 감정이 바로 기쁨이라는 감정으로 대표되는 사랑, 우정, 행복, 희망, 경탄, 영광, 환희와 같은 감정들입니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고 우리가 고통의 감정 표현은 풍부하지만 기쁨에 대한 감정 표현은 빈약한 이유입니다.

 게다가 기쁨이라는 감정은 구름보다 가볍고, 빛보다 빠르고, 솜사탕보다 빨리 녹기에 말로 포획하기가 여간 까다롭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한술 더 떠 기쁨으로 가기 전단계인 고통의 감정부터 말로 포획하기 어렵습니다.

 성공이라는 언어를 마취제로 사용해 고통에 관한 감정표현의 말들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점점 냉소의 말들만 심장 주변에 쌓여가며 감정을 에워싼 채 굳어지고 있는 느낌입니다.

 글을 쓰는 저에게는 뚫고 들어가야 할 거대하고 단단한 벽이 하나 더 생긴 느낌입니다.

 냉소의 벽을 뚫고, 타인의 고통에 마음을 연결해 같이 기쁨으로 향하기 위한 글은 어떤 글이어야 할까요?

 그런 글을 쓰는 작가는 어떤 마음가짐이어야 할까요?

 평생 풀지 못할 숙제를 받은 느낌입니다.


 평생 숙제는 잠시 미뤄두고 오늘은 작년 말 단골 김밥집 사장님에게 위로를 받았던 순간을 공유하며 이 글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사장님과는 운동 화제로 공통사를 찾아서 일상 대화 정도를 주고받던 사이였습니다.

 어느 날 사장님이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간병 때문에 브레이크 타임을 없애고, 대신 문을 일찍 닫는다고 담담하게 말하더군요.

 90이 넘은 어머니가 뼈가 부러지셨는데 정신도 오락가락하셔서 직접 간병해야 한다고 말이죠.

 저도 몇 해 전 어머니가 마비 증세가 와서 간병한 경험이 있고, 어머니의 정신 질환으로 오랜 기간 고통받았기에 사장님의 어려움에 공감하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때부터 사장님과 조금 더 가까워져서 수다 친구가 되었습니다.

 연말에도 운동을 끝낸 후 습관처럼 김밥을 사러 갔습니다.

 "내년에 물가가 더 오를 텐데 막막하네요."

 제가 투덜거리듯 말하며 한숨을 내쉬니 김밥집 사장님이 미소 짓습니다.

 휘어진 눈꼬리와 주름진 뺨에 살짝 들어가는 보조개가 소녀 같아 보이는 기분 좋은 미소였습니다.

 그러면서 작은 김밥집이 쩌렁쩌렁 울리게 큰 소리로 힘주어 말합니다.

 "뭘 내년까지 걱정하고 그래.

 오늘 하루 잘 살았으면 된 거야."

 사장님의 말 한마디에 고민이 사라졌습니다.

 오늘 하루 잘 살은 당신도, 저도 그거면 충분히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말.

 오늘 하루를 버틴 너의 곁에 응원하는 내가 있고, 내 곁에 응원하는 당신이 있으니 충분히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말.

 이 글을 보는 모든 분들이 오늘 하루 잘 살아나아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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