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유로운 콩새 Sep 01. 2021

'선'의 어머니가 다녀갔어 (4)

함경도식 강한 어투로 어머니가 말했다.


https://brunch.co.kr/@hee91801/109



https://brunch.co.kr/@hee91801/111



https://brunch.co.kr/@hee91801/129





" '선'의 어머니가 왔다갔어" (조금은 강한 함경도식 어투입니다.~)

차분하고 낮은 목소리로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그리고 책상 위에는 매우 낯설지만, 그래도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하얀 봉투 하나가 놓여있었다.


순간 멍~~ 했다.

드디어 올 것이 왔나? 하는 느낌과 함께 이렇게 까지? 하는 의아함, 그리고 그 상황을 죄인처럼 고스란히 겪으셨을 내 부모님에 대한 죄송함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딸가진 집안이어서?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 안이 하얗게 되었다.


사실 남자 친구가 결혼 이야기 가끔 하기는 했어도 그냥, 저냥 지금 좋으니까.. 이대로 가자는 생각이었다. 

결혼이라는 것을 기쁘게 받아들일 만큼 두 집안의 위치가 동등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다.

내 마음이 이런데.. 남자 친구의 부모님이 무슨 이유로, 무슨 권한으로 부모님까지 만나면서 모욕을 주는지에 대해 야속한 생각이 들었다. 

당신들이 뭔데. 내가 당신 아들보다 못한 것이 뭔데, 돈이 좀 없다는 것뿐이지 그것이 무슨 그리 큰 죄라고..

등등, 머릿속에서 온갖 비열한 방법으로 복수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난무했다.


생각이 점점 깊어지니 상황이 이렇게 되도록 책임지고 막아내지 못한 남자 친구에 대한 원망도 컸다.

봉투를 열어볼까?

까짓 거 돈 받고 정리할까?

이렇게 된 바에는 그냥 확~~ 일 저 질러 버리고 아이하나 안고 쳐들어가 남자친구의 부모님을 기함시킬까?

쏟았다가, 담았다가 온갖 생각과 쓸데없는 욕망들이 나를 힘들게 했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일기를 쓰고 있었다.

그날부터 며칠은 매일 꽤 긴~~ 문장의 일기를 썼던 것 같다.

결국 내린 결론은

"사랑하기 때문에 놓아준다는 것"이었다.

사랑하기 때문에~`라는 화려한 표현을 쓰기는 했지만 결국 여러 생각 끝에 포기하는 것이 옳다는 판단 때문이다.


나는 지금 사랑하기때문에 헤어진다는 표현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비웃는다.

사랑하면 왜 헤어지냐...선택하고 이겨내야지 하는 마음이 있다.

물론 상황에 따라 다르기는 하겠지만.

어쨓든 당시는 내가 사랑하는 남자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고,  그 남자의 부모님을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던것도 사실이기는 하다.


대학 동기들이 오히려 더 속상해했다. 

연해 첫 시작에 삐걱거리면서 출발했던 우리 커플은 그동안 남자 친구의 따뜻한 헌신 덕분에 대학교수님들도 다 알고 있을 만큼, 그리고 청진 시 포항구역( 서울시 종로구와 같은 하나의 행정구역)에서 어지간한 사람은 알고 있을 만큼의 소문안 커플이었다. 이 두 사람의 끝이 어떻게 결론날지는 많은 이들의 관심사이기도 했다.

아마 남자 친구가 가지고 있었던 배경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친구들은 그랬다. 

너희 둘을 한방에 가두어 놓고 문을 잠가버리고 싶다고, ㅎㅎ

둘이 어디 가서 동거하고 아기 하나 낳으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은 북한이나 남한이나 똑 같이 한다.


그렇게 할까. 그렇게 해서 남자 친구의 부모님을 이겨먹을까? 전혀 생각 안 한 건 아니다. 

하지만 좀 더 이성적으로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 부모라면 속상할 만도 하겠다는 생각도 있었고

남자 친구의 가족환경이나 분위기를 이겨낼 만큼 내가 준비되어 있었던 것도 아니고

 환영받지도 못하는 결혼을 무리하게 단행해야 할 만큼 대단한 남자 친구도 아니었고

무엇보다도 우리 부모님께서 늘 마음이 불편하고 사돈에 위축되어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있었다.

돈이 아니고, 나는 정말 사랑인데,,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을 것이고, 결국 돈 보고 결혼했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포기 이유 중의 하나이다.


지금 정도의 가치관이라면 돈 많으면 그것도 좋은 거지. 

돈이 많아서 결혼을 포기한다는 생각도 하지 않을 것 같다. 

부모님들이 승낙하지 않으시면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다른 곳에 가서 살림 차리면 되지 하는 생각을 지금은 한다.

당시의 사고방식과는 많이 달라진 듯하다.

결코 순수성이 없어진 거라고 표현하고 싶지는 않다. 상황이 달라진 거고 나이가 들면서 판단기준이 달라진 거고 타인의 눈길 따위가 삶에서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다는 생각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 부모님께 무릎 꿇고 앉아 한쪽 집안에서 만이라도 결혼하게 해달라고 울며 사정하는 남자 친구를 물리쳐야 했을 때의 나도 마음속에 눈물이 흘렀다.

그래도 아닌 건 아닌 거다.


이후 남자 친구는 비참하게 망가지면서 변해갔다. 

대학교에 공부하러 나오지 않고 술만 마셨고 전해 듣기에는 자기 집에도 들어가지 않는다고 했다.

북한에서 대학생이 정당한 이유 없이 학업에 빠지는 건 조직의 비판이나 처벌을 받아야 할 행위이다. 

어떤 처벌도 감내해야 행할 수 있는 행위인 것이다. 그걸 남자 친구는 선택했다.

자기 부모에 대한 원망? 아님 시위? 일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슬픔 때문일까.

어떤 이유에서든 당시의 내 심정은 남자 친구가 망가지는 모습이 어쩌면 싫지 않았던 것 같다.(흠~~소인배죠~ ㅎ)

나 대신 복수해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안타까움도 있었지만 한편 속이 후련하기도 했다.



운명이란 참 얋굳다는 말은 처음에 누가 했을까.

모든 인연이 여기서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계속~~




배경사진 : 픽사베이 



매거진의 이전글 맞선 보러가는데 같이 가줄래?-남자 친구가물었다 (5)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