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굵게!

헤어질 결심 - 두려움과 이별하기.

by 선지혜
“짧고 굵게 갈래, 길고 가늘게 갈래?”
“짧고 굵게!”





며칠 전 아이들 구강검진에서

큰아이는 충치 하나, 작은아이는 두 개가 발견됐다.
휴가가 껴 치료를 미루고 치과에 갔더니

예약이 안 되어 허탕이다.

오는 길,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쥐어주며 말했다.
“얘들아 미안.

엄마가 참 너무나 P 지. 무대뽀라 미아네요~”

익숙한 이 상황이 낯설지 않은 아이들은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하며,

그저 아이스크림 맛있단다.


오히려 치료 미뤄져서 신나 보인다.




며칠 뒤, 치료 예약일.

제법 컸다고 의젓한 큰아이와 달리,

“선생님, 제발 안 아프게 해 주세요…”

작은아이는 내내 중얼거렸다.


긴장한 동생에게

“별거 아니야, 금방 하고 올게” 안심시키며,

큰아이가 먼저 치료실로 들어갔다.


“누나 소리 안 지르지? 안 아픈가 봐.”

몇 해 전 치과에서 잠드는 약을 먹고도,

눈을 부릅뜨던 작은 아이다.

손을 잡아주고, 어깨를 안아주며 다독였다.



그때, 또래 여자 아이가 치과에 들어왔고,

작은아이 눈빛이 묘 하다.


“왜 그래? 친구야?”

“응”

“같은 반이야? “

“아니, 2학년 때..”


선택적 함구증이 있는 작은아이는

또래 친구를 마주쳤을 때면

얼어붙어 숨소리도 죽인다.


헌데 이날은 달랐다.

치과 치료에 대한 긴장이 더 커서였을까.


친구가 옆에 있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마음을 달래려는 듯

내 옆에서 한없이 재잘거렸다.

“후야! 너 부끄러움이 극복 됐나 본데?

친구 있는데도 말을 막 잘해! 오! “


순간, 아이도 앗차! 싶었는지 눈빛이 흔들렸다.

하지만 치료의 긴장을 떨 칠 수 없었던 아이는

아무 뜻 없는 말들을 조용히,

그러나 끊임없이 쏟아냈다




저녁상을 차리며 찌개가 짜서 큰일이다 싶었는데,

밥솥을 열어보니 아예 밥이 없던 순간.

찌개가 짠 건 아무 문제도 아니었던 것처럼.

충치 치료라는 더 큰일이,

아이의 함구증을 작아지게 만들어버렸다.





그 사이, 위풍당당 큰아이가

후련한 얼굴로 치료를 마치고 나왔다.

부러운 눈빛의 작은아이는

장난스레 울상을 지으며 치료실로 들어갔다.


의사 선생님은 충치 두 개를 한 번에 치료할 수 있지만

못 버티면 다음에 또 와야 한다고 했다.


“짧고 굵게 갈래, 길고 가늘게 갈래?”
“짧고 굵게!”
“좋아! 엄마도 같은 생각이야! 할 수 있어! 해 보자.”

나는 작은아이의 손을 꼭 잡아주었고
아이는 꾹 참고 단번에 치료를 끝냈다.

“잘했어! 역시 우리 아들 상남자야! 멋져부러”


오늘, 작은아이는 친구 앞에서 목소리를 냈고

치료도 한 번에 해냈다.


어깨에 힘이 바짝 들어간 작은아이와
“이깟 치료 별거 아냐”라는 큰아이


그 둘 사이에서 양손을 꼭 잡고 돌아오는 길.

내 어깨도 하늘로 솟는다.



내일은 늘 새로움이고
새로움은 늘 두려움이더라.

새로움을 받아들이려면
두려움과 이별을 해야 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헤어질 결심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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