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태어난 날
나 상담센터에 가볼래
지난 일 년, 많은 일들이 있었다.
숱하게 혼내고 타이르고 울고,
원래 자리로 돌아오려 부단히 노력했지만
통제가 어렵고 위기감을 느낀 딸아이는
얼마 전 나에게 SOS 요청을 했다.
“그래! 스스로 결심이 섰다면, 그걸로 반은 했어.”
그날로 지역 청소년 상담센터, 민간 기관,
병원 등을 백방으로 알아봤고
다행히 지역 청소년 상담센터 예약이 잡혔다.
오늘이 그 첫날이었다.
아이와의 약속 장소로 가는 길,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갑자기 비가 오네. 우산 없는데 어쩌지?”
비를 맞고 나를 기다리던 딸아이가 걱정을 한다.
딸의 머리와 어깨를 털어주며 말했다.
“이 정도면 맞을 만하네, 가까우니 그냥 비 맞고 갈까?”
“그래! 근데 엄마, 돌아올 때 비 많이 오면 어떡해?”
“어차피 집으로 갈 건데, 그냥 맞고 오자.”
장난처럼 주고받으며 웃음 섞인 대화 하나로
첫 상담의 긴장이 조금은 풀렸다.
아이는 한 시간 남짓 상담을 받았고,
이어서 보호자 면담이 이어졌다.
청소년 상담은 철저히 비밀로 진행되기에
아이와의 상담 내용을 모두 전할 수는 없다고 했다.
하지만 아이는 매우 밝고
변화하려는 의지가 강하다고 했다.
아이가 가족 친밀도 검사에서 만점을 준 결과지를 보는 순간,
가슴이 두근거렸고, 한시름 놓였다.
아이는 여전히 우리 가족을 믿고 있었다.
상담을 마치고 나오며
센터 벽에 걸린 예술고등학교 학생들의
애니메이션 작품을 함께 보았다.
멋지다는 말이 절로 나왔고, 나는 아이에게 툭 던졌다.
“너도 그림 좀 그리잖아.
예술고 가서 웹툰 작가가 되면 어때?
기안 84처럼 성공해서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가는 거야.
엄마도 데려가줘.”
아이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너무 힘들어. 손가락 부러져.”
“그 정도 힘도 안 들고 어떻게 성공하겠니.
뭘 해도 힘들겠지. 기왕이면 재밌고 좋아하는 걸로 해야
덜 힘들지 않겠어?”
아이는 상담이 좋았다 했고,
실없는 대화를 나누며 손을 꼭 잡고 집으로 향했다.
센터를 나와 돌아오는 길,
“아빠한테는 말하지 마.”
딸은 아빠에게는 감추고 싶어 했다.
그 마음이 뭔지 안다.
“알았어. 말 안 할게. 그런데 상담 때마다
일하다 말고 말없이 엄마가 가게를 나올 수는 없잖아.”
“그렇지…”
“이건 어때?
새로운 딸로 태어나기 위해 다니는 곳이라고 말이야.
네가 아빠에게 말해.”
“아니, 엄마가 말해줘.”
“못하겠어? 알았어. 엄마가 그렇게 말해줄게.”
흠뻑 젖도록 비가 오길 내심 기대했지만
아쉽게도 비는 오지 않았다.
“오늘 저녁은 고기를 먹어야 해! “
“왜? “
“어제 해동하고 안 해 먹었거든, 한우라 꼭 먹어야 해.
찹스테이크야 “
“그래? 하.. 별로긴한데, 알았어! “
오늘은,
우리 딸이 새로 태어나는 첫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