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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읗 Oct 12. 2020

가족 같은 회사 내 가족은 집에 있어요

은행에서 일하지만 은행원은 아니에요

어릴 때부터 엄마는 나에게 사람을 잘 믿고 순진한 구석이 있다며, 늘 사람을 조심하고 쉽게 누구를 믿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동생에 비해 이해타산적이지 못하고, 이익이 되는 것보다 오히려 손해를 볼 때가 많은 나를 엄마는 늘 걱정하셨다. 그래서일까 어릴 적엔 가족 중 나만 유일하게 종교가 있었다. 물론 지금은 종교가 없지만 당시에는 꽤 열심히 교회를 다녔다. 이렇게 뭔가를 쉽게 믿고 귀가 얇은 나조차도 절대 믿지 않는 게 있었다. 그것은 바로 “가족 같은” 이였다. 흔히 어떤 조직이나 사회 구성원들이 모인 곳에서 자신들이 얼마나 친하고 가까운 사이인지를 묘사할 때 쓰는 말로 “가족 같은”이라는 말을 쓴다. 하지만 난 절대 이 말을 믿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하다. 가족이 아닌데 가족 같을 순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데 그렇다고 말하는 건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20대 때 아르바이트를 구한다고 구직 사이트를 뒤지면 가끔 구직란에 이런 글귀를 본 적이 있었다. “가족 같은 직원을 구합니다.” 혹은 “가족 같은 분위기입니다.” 내가 가장 먼저 걸렀던 것은 딱 저런 글귀가 있으면 아무리 돈을 최저시급보다 더 준다고 해도 지원하지 않았다. 가족이 아닌데 가족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다 사기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말에 유독 날을 세웠고, 예민하게 반응했었다. 아주 가식적인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냥 그만큼 가까운 사이 혹은 친밀한 사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을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게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럼 그냥 친밀한 혹은 가까운 사이라고 하면 될 걸 왜 굳이 가족을 들먹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가족이란 집 가(家)에 겨레 족(族)를 쓴다. 같은 핏줄을 가진 사회 공동체가 같은 집에서 지내는 것을 두고 가족이라고 한다. 같은 핏줄도 아니고, 같은 집에 사는 사람도 아닌데 그들을 두고 가족이라고 부를 순 없는 게 아닌가. 너무 진지충인가? 그래도 상관없다. 난 가족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가족이란 말이 남발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H은행에서 일할 때 지점은 자주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아침마다 긴 회의를 했고, 회의는 2층에서 이뤄졌다. 종종 2층에서는 큰 소리가 들렸고, 그 소리는 주로 지점장님 목소리였다. 회의를 마치고 내려오는 직원들의 표정은 모두 좋지 않았다. 당연히 실적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회의를 했지만 딱히 뾰족한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 여파가 은행 경비원인 나에게까지 전해졌다. 딱히 뾰족한 수가 없었던 그들은 실적을 올리기 위해 은행 경비원인 나에게까지 영업하기를 명령했다. 물론 이는 지점장이 시킨 일이다. 내가 영업을 한다고 해서 은행에 실적이 쌓인다는 보장도 없다. 나에겐 그런 능력도 없고, 그 일을 해야 할 의무도 없다. 행여나 잘해서 실적이 좋아져도 나에겐 딱히 이득이 될 게 없다. 어차피 최저시급을 받고, 1년 단위로 계약되는 계약직인데 여기서 내가 영업을 잘한다고 해서 정규직이 되거나 최저시급보다 더 많은 월급을 받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약간의 보상이 주어질 수도 있지만, 그것도 모를 일이다. 그런 나에게 그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요구하는 걸 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했을까?


회의를 마치고 직원들이 내려왔다. 그중 P대리님은 나에게 오셔서 이런 말을 했다.


“희재야 너 이제부터 가만히 서 있거나 앉아 있지 말고 손님들에게 스마트 어플이나 이거 전단지 사람들에게 나눠줘. 그리고 앞으로 교대로 돌아가면서 밖에 나가서 전단지 돌릴 건데 그거 너도 같이해야 해.”

“그걸 제가 왜 해야 하는 거죠?”

“야 너도 좀 도와야 되는 거 아니야? 우리 같은 가족이잖아.”

“가족이요? 대리님 하고 제가요? 우리가 무슨 가족이에요? 저 가족은 따로 있어요.”

“뭐? 그런 말이 아니잖아.(목소리가 조금씩 커졌다.)”

“가족도 아닌데 뭘 가족이라고 해요. 짜증 나게.”


내 목소리는 이미 많이 커져 있었고, 2층에서 대부계 L대리님이 그런 나에게 2층으로 올라오라고 했다. 그리곤 대리님께 많이 혼났다. 사실 그때는 그 상황이 좀 어이가 없었고, 왜 그 일을 해야 하는지 몰랐는데 거기다가 하필이면 P대리님은 “가족”이라는 말을 꺼내는 바람에 순간 욱 했던 것이다. 그냥 솔직히 지점이 너무 어려워서 실적을 채워야 하는데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면 난 오히려 내키진 않았지만 그래도 그렇게까지 대리님을 몰아붙이지 않았을 것이다.


L대리님께 혼이 나면서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했다. 순간 너무 흥분했던 것이다. 그리고 퇴근하기 전에 2층으로 올라가 L대리님께 사과드리고 P대리님께도 정중히 사과드렸다. 그게 맞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분도 나를 시키는 게 좋아서 그러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은행원이지만 그녀도 월급 받고 일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위에서 시키면 해야 했다. 결국, 전단지를 돌리는 것도 스마트 어플을 까는 것도 할 수밖에 없어서 했지만 열심히 하지 않았다. 적당히 힘이 들지 않는 선에서 요령을 부려가며 했다. 그런 걸 한다고 해서 없던 실적이 오르지 않을 것 같기도 했고, 그것은 나와는 별 상관없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MV] 둘째이모 김다비 - 주라주라


아직도 “가족 같은”라는 말에 공감하지 못한다. 요즘은 이런 말을 쓰는 사람이 잘 없는 걸로 안다. 커뮤니티에는 “가족 같은”라는 말을 비꼬아서 “가”를 띄우고 “족같이”라고 쓰는 걸 보곤 한참을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 저 말이 맞는 말이지.”라고 하면서.


더 나아가 “가족 같은”라는 말에 모순이 있을 수도 있다. 사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가족이 모두의 통념에 걸맞은 말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엄마”는 정말 나의 분신처럼 사랑하는 사람일 수도 있지만 어떤 이에게는 삶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사람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엄마라고 해서 다 같은 엄마도 아니기 때문에 가족도 다 같은 가족이 아닐 수 있다. 그렇기에 “엄마 같은” 또는 “가족 같은” 말은 되도록 아니 그냥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절대 그 누구도 나의 엄마를 대신할 수 없고, 그 어떤 사회 공동체도 가족을 대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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