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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름을 가진 독일 사람

심지어 옛날 영화에 나올법한 고전적인 미국이름

by 조희진

요즘 1980년대 베를린의 통일 전과 이후를 바탕으로 한 소설을 읽고 있다. 남자 주인공의 이름은 한스 Hans 여자 주인공의 이름은 카타리나 Katharina. 서양에도 시대별 유행하는 이름이 있긴 하지만 한국에 비해 예전 이름도 여전히 많이 쓰는 것 같다. 특히나 '한스'는 대표적인 독일의 남자 이름이고 흔하다. 이름에서 느끼는 세대의 차이가 크게 없다 보니 한스라는 이름의 할아버지도 있고 초등학생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행이 없지는 않은데 참고로 유독 요즘 많이 들리는 유치원 꼬맹이 남자아이 이름 중에서는 테오 Theo, 루카 Luca, 에밀 Emiil 등이 있다. 한국이나 유럽이나 더욱 간결한 이름들이 선호되는 것 같다.


십 년 넘게 독일에 살다 보니 모두 서양이름이긴 해도 어느 정도 나라별 차이가 있다는 감이 생겼다. 특히나 성을 들으면 그 가문의 출신도 예상할 수 있다. 독일사람이지만 성이 이탈리아이름이면 할아버지던 어느 조상이 이탈리아출신정도로 말이다. 한국이 이름보다 호칭을 부르는 문화라면 독일은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주는 것이 조금 더 친근하고 예의 있는 의사소통법이다. 초등학교 어린 학생들도 '선생님'이라는 호칭보다는 이름을 부르니 말이다. 예를 들어, "엄마, 오늘 프라우 밀러(Frau Miller, Ms Miller)가 어려운 숙제를 내줬어."라고 선생님의 이름을 언급한다.


몇 년 전 포츠담의 회사에 잠깐 다녔던 적이 있다. 외국인이라는 장점이자 단점 덕택에 그전까지는 인터내셔널 회사를 경험한 나에게 예상치 못한 새로움과 약간의 시련을 경험하게 했던 독일회사. 독일 회사이면서도 더 정확하게 말하면 통일이 된 직후 동독이었던 포츠담에 세워진 회사였다. 입사해 보니 약 50명이 넘는 직원 중 내가 유일한 외국인이었고 심지어 같은 유럽지역 사람도 아닌 까만 머리 한국인이었던 것이다. 오래 일하지 않고 나왔지만 아직도 기억하는 친절했던 케빈들이 있었다. 신입으로 사내 프로그램 로그인이 되지 않을 때, 스탠딩 책상이 고장 나 움직이지 않을 때 등등 도움을 요청하면 친절하게 달려와 주던 동료들 중 두 명의 이름이 모두 케빈이었다.


나를 담당하던 사수의 이름은 제니퍼 Jennifer. 케빈과 제니퍼는 어렸을 때 티브이에서 해주는 할리우드 외화시리즈에 자주 등장하는 이름 아닌가? 아무리 봐도 독일스럽지 않은 이름들이 낯설었다. 대부분의 동료들이 영어를 잘하지 못해 온전히 독일어로만 소통하는데 그들의 이름은 너무 미국적이랄까. "우리 회사는 직원들이 대부분 30-40대로 젊은 편이야. 그래서 그런가 이름이 너무 미국 스러워"라고 독일 친구한테 얘기했다. 그랬더니 바로 돌아오는 대답이 "포츠담에 있는 회사자나"였다. 포츠담이 왜? 미국인이 살았었어?라고 궁금했는데 '동독'지역이었다는 이유였다.


1980년대에 동독에서 그들과는 정반대의 자본주의체제와 다양한 문화를 가진 미국을 동경하며 미국식 이름이 일시적으로 유행한 적이 있다고 한다. 냉전 말기 반체제 분위기 속에서 젊은 사람들 사이에 유행하였고 그들의 자녀들에게 미국식 이름을 붙였다고 했다. 어쩐지, 내 동료들은 대부분 80년대 초중반에 태어난 사라들이었는데 그들이 이름이 케빈이고 제니퍼인 것이 다 역사적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 당시 유행했던 이름이 케빈, 필립, 로니, 아만다, 낸시 등이었다니 너무 고전적인 미국이름이지 않은가! 통일이 되고 난 후 시간이 지나면서 이 미국적인 이름들이 동독 특유의 어색한 영어이름으로 여겨졌고 독일에서 고전적인 미국이름을 가지고 있다면 동독출신으로 예측할 수 있다고 했다.


독일은 분단 후 성공적인 통일의 사례로 여겨지지만 여전히 아직도 동서의 흔적이 남아있다. 도시 디자인이나 건물의 모양과 차도와 인도의 넓이와 같은 물리적인 것뿐 아니라 사람들의 생활 습관, 삶을 이끄는 마인드 등이 차이가 아주 없다고 할 수 없다. 여전히 그 차이를 좁히려고 노력하고 있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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