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라디오에서 들은 사연이 있다.
60대 여성분이 회사 앞 공터에서 점심시간마다 달리는 직원을 보고, 동료들과 "우리도 나가서 걸어볼까?" 하며 산책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다 회사에서 지역 마라톤 대회에 나가보자는 제안이 나왔고, 결국 10km 마라톤에 출전해 가까스로 1시간 안에 완주했다고 했다. 처음엔 힘들었지만, 그 이후 마라톤에 흥미가 생겨 꾸준히 지역 대회에 나가다 보니 60대 부문 하프 마라톤 1등까지 하게 됐다고. 건강도 좋아지고, 직장 동료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다며 기뻐하는 목소리가 참 인상 깊었다.
요즘 들어 러닝과 마라톤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젊은 세대부터 어르신들까지 강변이나 공원에서 조깅하는 모습은 이제 익숙한 풍경이다. 예전에 비해 산책로나 러닝코스도 잘 정비되어 있고, 특별한 장비 없이 가장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운동이 걷기와 달리기다 보니 누구나 자연스럽게 러닝에 발을 들이게 되는 것 같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지난여름, 육아에 전념하다 보니 어느새 내 몸은 아이들이 자란 만큼 정체되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이들을 재운 늦은 저녁, 강변에 나가 걸어보기로 했다. 어두운 밤, 가로등 불빛 아래 걷고 뛰는 사람들을 보며 '나만 이런 기분은 아니구나' 싶었다.
부자들이 사는 동네에 헬스장이 붐비는 이유도 알 것 같았다.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일수록 체력 관리의 중요성을 잘 알고, 건강한 신체를 위해 시간을 투자한다.
며칠간 걷고 뛰기를 반복하다 보니 몸이 가벼워지고, 삶에도 작은 활력이 생겼다. 무엇보다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뿌듯했다. 육아를 하다 보면 나를 위한 시간이 아이들 뒤로 밀려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오롯이 나만의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땀을 흘리는 경험이 꽤 중독적이었다. 러닝 어플을 깔아 응원의 메시지를 듣고, 음악과 함께 강변 풍경을 스치며 달리는 순간은 나를 위한 작은 치유의 시간이었다.
그러다 '러너스하이'라는 단어를 알게 됐다.
달리기는 몸을 쓰는 운동이라 당연히 고통스럽지만, 30분 이상 꾸준히 같은 속도로 달리다 보면 고통이 도파민으로 변해 일종의 황홀감이 느껴지는 상태라고 했다. 실제로 나도 40분쯤 뛰었을 때 다리의 아픔보다 머리가 맑아지고, 오히려 내 자신에게 더 집중되는 느낌을 경험한 적이 있다.
그 순간, 티쳐스하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교사로서 수업을 하다 보면 비슷한 경험을 한다. 고등학교 수업이 보통 50분인데, 처음 10~20분은 아이들과 본격적으로 상호작용을 시작하는 시간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몰입하게 되면, 시계를 보지 않아도 시간이 훅 지나간다. 더 많은 걸 알려주고 싶고,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좋은 영향을 주고 싶다는 마음이 앞서다 보면, 금세 마침 종이 울린다. 그리고 수업이 끝나고 교무실에 돌아와 보면 신기하게도 수업 전보다 에너지가 충전된 나 자신을 발견한다.
이게 바로 티쳐스하이가 아닐까?
사실 교사는 사회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스트레스를 안고 살아간다. 학생들 앞에서 존경받을 만한 성실함을 꾸준히 보여야 하고, 참여가 부족한 학부모들과 소통하며 이끌어가야 한다. 게다가 최근엔 각종 사회 문제들까지 학교의 책임으로 돌아오며, 본업인 수업 외에도 다양한 의무 교육을 수행해야 한다.
그럼에도 교사에게는 스트레스를 해소할 창구가 많지 않다. 학생, 학부모, 동료 교사 모두 소중한 사람들이지만, 내 마음을 온전히 털어놓기는 어렵다. 사회적 시선은 교사에게 언제나 윤리적이고 도덕적일 것을 요구한다. 그러니 감정의 배출구를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러닝은 교사에게 꽤 적합한 치유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공개적으로 나를 드러낼 부담도 없고, 큰 비용도 들지 않는다. 무엇보다 내 몸과 마음의 상태를 스스로 계획하고 주도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점에서 교사에게 꼭 맞는 몰입의 시간이다.
물론, 꼭 러닝이 아니어도 된다.
중요한 건 ‘몰입의 힘’을 경험하는 것이다.
러닝을 통해, 혹은 수업을 통해.
몰입은 곧 치유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도,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도
나 자신을 위해, 그리고 더 나은 나를 위해 몰입의 시간을 가져보기를 바란다.
덧붙임: 저의 모든 글은 저와 저희 아이의 경우입니다. 아이들은 모두 다르니 정답은 없습니다. 참고만 해주세요. 여러분의 아이에게 맞는 방법을 찾는것에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