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는 유독 영화관 데이트를 자주 했다. 딱히 거창한 걸 하지 않아도, 나란히 앉아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참 좋았다. 영화를 본 뒤, 극장을 나서며 영화의 결말이나 인물들에 대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곤 했다. 그러면서 "이 사람과 참 잘 통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런 부모의 모습을 봐서일까. 아이들도 영화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다. 아직 어두운 영화관이 살짝 무서울 법도 하지만, 팝콘을 손에 쥐고 한 시간 넘게 스크린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면 웃음이 난다.
아이들을 보며 자연스럽게 부모님 생각이 떠오른다. 나에게도 영화는 부모님과의 추억이 담긴 시간이었다. 특히 아버지와는 '주말의 명화'를 꼭 함께 보곤 했다. 007 같은 첩보 영화가 나오면, 저녁 10시 더빙판을 함께 보다가 11시가 가까워지면 슬며시 졸음이 쏟아졌던 기억이 난다. 특히 그 영화 속에서 개조된 본드카가 등장할 때면 아버지와 나는 동시에 눈을 반짝이며 감탄하곤 했다. 그 차가 바로 애스턴마틴이었다.
그래서 나의 드림카는 애스턴마틴이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아버지께 사드리고 싶은 차다. 멋진 차를 선물하고 싶은 마음, 그건 단순히 차 한 대 때문이 아니라 아버지가 내게 주셨던 추억과 사랑을 돌려드리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된 꿈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가끔 우스갯소리로 아이들에게 묻는다.
"나중에 크면 할아버지 차 사줄 거야?"
그러면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게 대답한다.
"응! 과자도 많이 사줄게!"
순수한 그 대답을 들으며 문득 깨닫는다. 부모님에게 대하는 나의 모습이, 훗날 아이들이 나에게 보여줄 모습이라는 걸. 내가 아버지를 향해 품은 존경과 사랑이 고스란히 아이들에게도 전해질 거라고 믿는다.
요즘도 미션 임파서블이나 탑건 같은 아버지가 좋아하실 법한 영화가 개봉하면 꼭 보러 가자고 권한다. 어머니는 늘 반갑게 응하시지만, 아버지는 가끔 거절하신다. 불편한 극장 의자에 오래 앉아 있는 게 힘드신 걸까, 커다란 화면과 밝은 조명에 눈이 아프신 걸까 싶기도 하다.
그런데 얼마 전, 아버지는 손주들과 함께 뽀로로 영화를 보러 가셨다. 내가 아무리 애를 써도 선뜻 나서지 않으시던 아버지가, 손주들의 한 마디에 흔쾌히 발걸음을 옮기신 것이다.
손주들에겐 아버지가 여전히 슈퍼맨이었다.
나는 아직 아버지에게 드림카를 선물하진 못했지만, 오늘도 아버지가 좋아하실 영화 한 편을 골라 본다. 그리고 언젠가, 나의 드림카를 아버지께 건네는 날도 상상해본다.
사랑은 이렇게, 부모에게서 자식에게, 그리고 다시 손주에게로 흐른다.
덧붙임: 저의 모든 글은 저와 저희 아이의 경우입니다. 아이들은 모두 다르니 정답은 없습니다. 참고만 해주세요. 여러분의 아이에게 맞는 방법을 찾는것에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