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돈, 시간, 체력, 마음
난임병원을 다니지만 임신이 잘 안 되는 내 상황을 온전히 받아들인 건 아니었다.
자연 임신 준비가 3개월, 6개월을 넘어가자 혹시나 싶어 산전 검사를 받았고 이상 없다는 소견에도 자신 있게 자연 임신 준비로 되돌아가지 못했다.
요즘은 생물학적 이유를 정확히 특정할 수 없는 원인불명의 난임도 많고, 임신이 생각만큼 바로 안 됐다는 주변 이야기도 흔하기에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내가 원하는 타이밍에 아이를 갖고 싶었다. (이땐 호기로웠다.)
의사 선생님의 지휘 하에 우리 부부도 임신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했고 때로는 임신을 도와주는 약을 복용하며, 인공수정을 위한 주사를 스스로 배에 놓으며 그렇게 아이 만날 날을 준비했다.
이 과정에서 겪은 몇 가지의 어려움이 있었다.
임신 과정에서 생각보다
슬프게도 임신을 위한 생물학적 과정이 '여성' 에게 포커스 맞춰져 있어 롤 비중으로 따지면 아내 9:남편 1 정도다. 여성의 몸을 기반으로 임신과 출산 경험이 이뤄지지만 특히, 난임병원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시간에 맞춰 약을 복용하거나, 배에 주사를 놓거나 모두 내 몸에 직접 해야 한다.
신체적으로는 여성의 비중이 절대적이지만 나는 임신을 위한 과정은 부부가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해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항상 병원 동행을 같이 한다. 막상 병원에서 남편이 하는 건 없고 상담을 같이 기다리고, 듣고, 널뛰는 내 기분을 맞춰주는 것뿐이지만 아이를 준비하는 마음은 나만을 위한 것은 아니기에 현재도 이 생각을 변함없고 남편도 나와 동일한 생각이다.
평일 오후, 인공수정을 하러 반차를 내고 병원을 방문한 적이 있다.
이 날은 남편도 업무 일정 때문에 도저히 같이 올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혼자 방문했다.
평일 오후 방문은 처음이었는데 의자 사이사이 띄엄띄엄 앉아있는 건 모두 여자였다. 나는 출근 때문에 출근 전 이르게 방문하거나, 주말 방문 위주로 스케줄을 맞췄는데 이 때는 대부분 부부가 함께 오기 때문에 평일 오후의 풍경은 낯설었다.
임신이라는 공통된 목표를 가지고 서로 비슷한 마음을 가지고 있을 그녀들을 본 그 시간이 잘 나는 잊히지 않는다. 평일은 출근하는 사람도 많을 거고 남편이 병원 동행을 위해 매번 휴가를 낼 수도 없으니 이해는 하지만 난임 병원에 홀로 앉아있는 모습을 보면 안 그래도 힘든 길, 외로움까지 견뎌야 하는구나 싶나 더 씁쓸하더라.
그래서 나 역시도 남편 없는 인공수정하는 그 시간이 참 외롭고 혼자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참 멀게만 느껴졌다.
난임병원을 다닐 때 돈도 돈이지만,
시험관을 하기 위해 일을 그만둘까, 고민이라는 글이 남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난임병원을 다니기로 결정했을 때만 해도 이렇게 오래 다니게 될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는 걸 몰랐다.
나는 경기도 동탄과 서울 강남을 오가는 직장 생활 중이다. 난임병원은 생리 주간을 기점으로 진료가 많아지기 때문에 항상 반차를 내기 어렵다. 병원도 이런 상황을 아는 건지 내가 다니던 병원은 아침 7시 30분부터 첫 진료가 시작된다. 출근이 10시까지라 평일은 부랴부랴 진료를 받고 갈 수 있었는데 예약을 하고 가도 대기 30분 정도는 기본이다.
평일은 그나마 나은데 주말은 최소 1시간 대기가 기본이다. 환자당 10분 텀으로 진료를 잡는데 사이사이 수술도 있고, 진료가 길어지기도 하다 보니 대기는 긴데 반해 보통 진료는 10분 이내로 끝난다. 일찍 가도 기다리고, 늦게 가도 기다리다 보니 나중에는 마음을 비우고 병원을 다니게 됐다.
기본적으로 난임병원 진료는 비급여라서 자부담 백프로다. 인공수정, 시험관 시술비 지원은 소득 기준에 따라 지원받을 수 있지만 맞벌이 부부인 우리는 해당되지 않아 모든 병원 진료와 약 처방은 자부담했다.
기본적으로 초음파는 항상 보기 때문에 적게는 몇 만 원부터 많게는 몇 십만 원까지 불규칙하게 지출비가 잡히기 시작했다. 처음엔 남들은 돈 들이지 않고도 잘만 임신되는 것 같은데 나는 왜 돈을 들여 임신을 해야 하나, 싶다가 이렇게라도 임신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바뀌어갔다.
법적으로 난임 휴가가 연간 3일 (1일 유급, 2일 무급)으로 주어지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쓴 적이 없다.
난임 휴가를 쓰려면 결제를 올려야 하는데 인사팀에 내가 이렇게 임신을 준비 중이라는 티를 내고 싶지 않았고, 회사만큼 소문이 빠른 곳도 없기에 난임 휴가는 내게 있으나 마나 한 휴가였다.
회사에 티는 못 내지만 출근 전에 부랴부랴 병원을 갔다가 출근하고, 약을 챙겨 먹고, 병원에 가서 다시 무한대기하는 시간은 알게 모르게 체력 소모가 많이 되었다. 특히, 해당 기간에 업무라도 바빠지기 시작하거나 병원 스케줄 조율이 여의치는 않을 땐 스트레스까지 더해졌다. 그래서 업무적으로 바쁠 땐 병원 다니는 것조차 일의 연장선으로 느껴지기 시작해 바쁜 달 진료는 건너뛰는 식으로 스스로 몸 컨디션을 조절했다.
병원을 다니던 시기엔 우리 부부 당사자 외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심지어 양가 부모님에게도.
엄마는 결혼 1~2년이 지나가자 "임신 준비는 하고 있는 거야? 나이 들어 아이 낳으면 너만 힘들다니깐"하며 내 속도 모르는 소리를 얼굴 볼 때마다 해댔지만 우리 부부가 함께 어려움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꼭 비밀로 하자는 말을 한 건 아니었지만 남들과 이야기할 때 임신에 대해선 말을 아끼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