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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기한 Aug 01. 2023

결혼 4년 차 아이가 없을 때 주위 반응

4. 83세 할머니의 진심 어린 말

흔히 신혼기간이라고 생각하는 결혼 1~2년 차에는 주변 사람도 편하게 물어본다.

"아이 계획은 어떻게 돼?"

당장 생각이 없다고 하면 반응도 다들 비슷하다.

"그래, 초반에는 단 둘이 신혼생활 즐기는 것도 괜찮지."


시간이 흘러 결혼 4년 차, 이제는 아이 계획에 대해 물어보는 걸 조심스러워한다.

"혹시... 아이 계획 있어?"

이전에는 아이 계획에 대해 보다 부담 없이 물어봤다면 이제는 아이에 대한 생각부터 묻는다.  

그나마 내가 가장 직접적으로 들었던 질문은 "둘은 아이 생각이 없는 거야?"란 질문이었다.


결혼하면 아이 낳는 걸 당연시 여겼던 우리 부모님 세대와 다르게 요즘은 딩크부터 난임부부, 입양까지 가족구성원에 대한 생각이 다양하고, 각 집마다 환경도 다르기 때문에 접근 자체가 달라졌다. 우리를 둘러싼 양가 가족 반응도 극과 극이었다.



양가의 반응 1. 시댁

인간생애주기 정석 루트 밭, 남편 친가


시댁에서 남편은 장남이다. 시댁에서 특히 친가 쪽, 남편이 속한 3세대는 요즘 시대에서 보기 드문 부모님 세대에 통용됐던 인간생애주기 정석 루트를 밟아왔다. 다들 적당한 때에 시집장가를 가고, 적당히 신혼 생활을 즐긴 후 각 집마다 아이를 최소 1명~최대 2명을 낳았으며, 30대에 자가를 마련해 3~4인 가족이 아늑하게 살고 있는 말 그대로 안정적인 삶들을 살고 있다.


이러한 인간생애주기 정석 루트 코스 속, 유일하게 우리 남편만 모범생 같지만 고분고분하지 않은 '나'라는 변수를 만나 고생 중이다. 우리 둘이 연애는 제법 오래 했는데 30대 중반 가까워지도록 결혼을 안 하자 어르신들이 걱정을 많이 하셨다고 한다. 친가 또래 중에 제일 늦게 결혼을 했지만, 유일하게 우리만 아이가 없다. 큰 조카가 9살, 막내 조카도 (여긴 둘째) 3살이니 친가 어른이 모이면 우리 걱정을 그렇게 하신다.


친척 중에 40살 넘게 결혼 안 한 사람이 최소 한 명은 있기 마련인데... 남편 쪽은 이런 사람이 없다. 어쩜 이렇게 다들 정석 테크를 탔는지 남편 집에 비하면 우리 집은 엉망진창으로 보일 지경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명절 때나 제사 때 친가 어르신이 모두 모이면 꼭 우리 얘기를 꺼내는 분이 계신다.


"OO네도 빨리 아기가 생겨야 하는데"


악의 없이 걱정에서 해주시는 말씀이신 걸 알고 있지만 이럴 때마다 나는 그 누구보다 우리 아이를 기다리고 계실 시부모님이 신경 쓰였다. 가족 모임 때마다 지금 한창 예쁠 나이인 2~5살 아기들이 와서 까르륵하고 재롱을 피우는 모습을 사랑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는 시부모님께 나도 모르게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양가의 반응 1. 시댁

묵묵히 기다려주시는 시부모님


결혼하고 2년이 지나자, 어머니가 한 번씩 임신에 대한 이야기를 넌지시 물어보곤 하셨다.

아예 아이 생각이 없던 건 아니기에 그때마다 남편은 "아이 생각 있어요. 이제 차근차근 준비하려고요"라고 답했다. 아이를 준비한다는 우리말에 2022년 초 시댁에서는 어머니가 다니는 한의원에 데려가 진맥도 받고, 약까지 지어주셨다. 감사한 마음으로 한약도 챙겨 먹었지만 우리의 마음과 다르게 또 1년이 흘러가 버렸다.


어머니는 결혼 초부터 서울로 직장 생활하는 내 입장을 배려해 말씀하시곤 하셨다.

"아이 낳으면 내가 봐줄 테니깐 계속 일하고 싶으면 해. 엄마가 봐줄게"

우리 엄마는 임신을 종용하면서도 아이는 봐줄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는데 정작 시어머니가 먼저 봐주신다고 말씀해 주셔서 (그때 가서 상황을 봐야 하지만) 마음 한편으로 참 든든했다.  


초반에는 시댁에서도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꺼내셨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 그 누구도 말을 꺼내지 않게 되었다. 시댁에서도 많은 게 궁금하실 텐데 아무 말도 없는 게 신경 쓰여 한 번은 남편한테 물어본 적이 있다.


"어머니가 우리 임신 언제 하냐고 궁금해하지 않으셔? 혹시 무슨 말씀드렸어?"

"내가 병원 다니면서 준비 중인데 잘 안 된다고 말씀드렸어. 우리 부모님은 너무 신경 쓰지 마"


나도 모르는 새 남편과 어머니 사이에 오간 말이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내 앞에서 전혀 티 내지 않으셨고 시댁 식구 모두 마찬가지 었다. 그렇지 않아도 늘 점잖고 배려 많으신 부모님인데 말없는 배려가 감사하여 마음속으로 눈물지었다. 지금도 시부모님은 묵묵히 기다려주고 계신다.



양가의 반응 2. 본가

이해와 스트레스 사이 어딘가에 엄마


조용한 시댁과 다르게 정작 우리 엄마는 얼굴 볼 때마다, 기회가 될 때마다 임신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임신 준비는 하고 있는 거야? 네 나이가 이제 적지 않은데 걱정돼서 그래. 나이 더 들어서 임신하면 너만 힘들어"


엄마는 손자손녀를 원하기보다는 나이 들어 아이를 낳고 키울 내 몸 상태와 걱정에 기인한 것이었다. (우리 엄마는 아이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근데 어떻게 셋이나 낳고 키웠는지 의문이다.)

처음엔 자식을 걱정하는 엄마의 마음으로 이해했으나 얼굴 볼 때마다 대화의 끝은 임신 얘기가 되자 나도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엄마, 내가 임신하고 애 봐달라고 하면 봐줄 거야? 엄마가 봐주지도 않을 거잖아. 결국 키워야 하는 건 우리인데 왜 이렇게 임신임신 그래?"  


결혼에 대해선 별 말 없더니 유독 임신은 왜 이렇게 관심이 많은 건지.. 하다 하다 우리 부부관계까지 직접적으로 묻기 시작했다.


"설마 너희 피임하는 거 아니지?"

"그만 좀 해. 우리도 알아서 다 하고 있어"


엄마가 이럴 때마다 속으로 '우리도 병원 다니고 있다고!' 하는 말이 차올랐지만 알고 나면 더 신경 쓸 것 같아 솟구쳐 오르는 말을 꾹꾹 눌러 담았다. 엄마는 이런 내 배려를 알아야 하는데... 한참 병원을 다닐 때는 비밀로 하다가 올해 병원을 쉬고 있을 때 결국 말을 꺼냈다.  

내가 말을 했다는 건 올해에도 변함없이 계속 줄기차게 임신을 말하는 엄마를 참기에 한계가 왔다는 뜻이었다. 우리 엄마는 그렇게 유별나거나, 요란스러운 스타일이 아닌데 점잖은 엄마가 왜 유독 우리 임신에 대해선 수선을 떠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우리한테 할 말이 임신 밖에 없나?' 싶기도 했다.

우리 둘이 임신 생각이 없는 것처럼 계속 재촉하니깐 이 정도면 말을 하자 싶었다.  


"진짜 언제 낳으려고 그래?"

"엄마, 우리 병원 다니고 있어. 인공 수정도 몇 번했고 이제 시험관을 할지 말지 고민하고 있어.

우리도 알아서 하고 있으니깐 제발 그만해"


역시나 이 말을 하자 엄마는 전과 다르게 임신에 대해 말하는 횟수가 줄었다. 그리곤 종종 한 번씩 조심스럽게 병원은 어딜 다니는지, 몸은 어떤지 묻곤 했다. (이렇게 바뀔지 알았으면 진작 말을 할걸 싶었다.)



양가의 반응 3. 할머니

83세 할머니가 뚝 던진 위로


남편에게는 신세대 할머니가 계신다. 남편이 "우리 할머니 마인드 진짜 젊어"라고 할 때 잘 다가오지 않았는데 카톡 하는 할머니이시다. 여든이 넘으셨지만 손자손녀와 카톡도 하시고, 마인드도 쿨하시고, 그 나이처럼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정정하시고, 내가 직접 만나뵙고 첫눈에 반했을 정도다.


명절 당일 아침마다 제사 및 식사를 위해 할머니를 모시러 가는데 집에 오는 한 15분 남짓한 시간 동안 많은 이야기를 한다. 할머니는 항상 손자손녀에게 말씀하신다. "하나만 낳아서 키워라"

"요즘 시대에 둘이나 낳을 필요가 있어? 애 한 명 키우기도 힘든데 둘 말고 한 명만 낳아."

보통 할머니는 많이 나으면 나을수록 좋다고 생각하는데 우리 할머니는 둘째도 극구반대였다.


평소처럼 대화를 하다가 은근슬쩍 내 마음을 비친 적이 있다.

"할머니, 한 명은 낳았으면 좋겠는데 마음처럼 안되네요."

"아이 없어도 되지. 나는 아이 없이 둘이 오순도순 사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

어떻게 보면 별말이 아닌데 이런 말을 할머니에게 들을 줄 생각도 못했기에 마음적으로 작은 위로가 됐다.   

그 시대 당연히 아이를 낳는 줄 알고 사셨을 분이 아이 없는 삶도 괜찮다며 말해주는 게 우리의 상황을 알고 계신가 싶기도 하고, 설사 마지막까지 아이가 생기지 않더라도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느낌이었다.  


아이가 쉽사리 생기지 않는 우리 부부 상황에 대해 시댁은 젠틀했고, 우리 집은 솔직했다.

내 맘을 모르는 엄마의 솔직한 질문이 때로는 스트레스였고 간섭처럼 느껴졌는데 만약 시댁이 이랬으면 솔직히 심리적으로 많이 힘들었을 것 같아 항상 감사한 맘이다.


우리는 우리 상황 그대로 "준비 중이에요"라고 말했지만 준비 중인 상태도 장기화가 되자 꽤나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았다. "근데 마음처럼 잘 안되네요"라고 덧붙이곤 했는데 아이에 대한 질문이 우리를 힘들게 만들지는 않았다. 그 시간을 우리 부부가 할 수 있는 걸 하면서 보냈기 때문인지 희망도 아니고, 그렇다고 비관도 아니었지만 담담하게 그 시간을 잘 지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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