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경
벗은 몸으로 드러누운 손님들은 말이 없이 서로 동등해진다. 나는 그들이 동작을 바꾸어야 할 때와 세신이 끝났을 때만 몸을 두드려 알린다. 여태껏 해본 일 중 가장 적성에 맞다고 생각하는 일이다. 고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나름의 재미와 보람을 느낀다. 안개가 가득한 잠무에서, 또 큰 창문 하나 없이 습기로 가득한 목욕탕을 직장으로 택한 건 철저히 숨겠다는 나의 의지였다. 작은 마을의 작은 목욕탕은 찾을래야 찾기 힘든 곳일 테니까. 엄마는 벗은 몸 보이는 걸 싫어해서 나를 데리고 대중목욕탕에 데려가준 일이 없었다. 잘 곳이 없어 혼자 몇 차례 찜질방에 오게 됐을 때 나는 내가 목욕탕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게 됐다. 깊지 않아 발이 닿는 뜨끈한 물 속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안전한 기분이 들었다. 목만 쏙 빼놓고 머릿속이 아득해질 때까지 나오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몸을 다루는 세신사들의 손길이 탄력적이고 무심해 보였고 경쾌한 소리가 듣기에 좋았다.
잠무에는 젊은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에 일자리 구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그만큼 손님 또한 적었고 급여도 서울보다 확실히 적었다. 게다가 나는 경력도 전무해 더 싸게 매겨졌다. 손님 수가 많지 않았으므로 차라리 휴양을 온 기분마저 들었다. 보통 새벽시간 때 아침잠 없는 5-60대 단골들이 몸을 맡기는데 오늘은 손님 하나가 전부여서 지루한 찰나였다. 텀이 길어지면 어쩌나 스트레칭을 늘어지게 하고 있을 때였다. 카운터 언니가 유리문을 밀고 전신 마사지 하나! 외치고 나갔다. 언니는 목소리가 다 갈라졌다. 전신 마사지에 필요한 장비를 세팅하는 사이 자박자박 물 밟는 소리를 내며 젊고 작은 여자 하나가 걸어 들어왔다. 배드 위치를 묻지도 않고 끝자리에 끙, 하고 올라가 누웠다. 천장을 바라보고 누웠다가 다시 얼굴을 바닥으로 향하고 엎드렸다. 파란 배드에 대조되어 여자의 피부가 더 희게 보였다. 잠무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잠무에서 잠무 사람이 아닌 사람을 보는 게 조금 멋쩍었다. 나도 잠무 사람이 아니면서 그랬다.
시작해도 괜찮으면 열쇠 주세요.
여자는 손을 뻗어 열쇠를 건넸다. 플라스틱 바구니에 여자의 열쇠를 넣어두었다. 나는 환부가 있는지 먼저 묻지 않는다. 손님의 반응에 따라서 환부를 알아채고 특별히 그쪽을 신경 써서 만져주는 편이다. 등부터 시작해 하체로 뻗어 나갔다가 다시 복부로 올라오는 순이다. 여자는 등도 곧았고 골반도 틀어진 데가 없었다. 잠무는 젊은 사람을 보기 힘든 곳이긴 하지만 보더라도 골반이 좋지 못한 경우가 많은데 여자는 건강한 축에 속했다. 매끄러운 오일을 발라 가슴을 마사지했다.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가슴이었다. 나는 여자의 어깨에서 손끝까지 점점 미끄러져 나갔다. 여자는 무방비 상태로 가만히 있는데 동시에 내 손아귀를 빠져나가려고 안간힘 쓰는 물고기였다. 나는 몹시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2]
별희
세신사는 같은 시기에 잠무에 내려온 다른 여자였다. 마사지가 끝나고 나는 벌거벗은 채로 배드 아래 주저앉았다. 온몸이 두들겨 맞은 듯 욱신거렸다. 차라리 속이 시원했다. 끝났다. 끝나버렸다. 은은 애초에 잠무에 오지 않았거나 일찍이 달아나버렸을 것이다. 연애란 그런 것이다. 머리카락과 살 비듬과 손톱 부스러기와 변기에 묻은 똥 부스러기 등, 별 미친 더러운 꼴을 다 섞으며 살아도 우리는 서로를 안 적이 없다. 우리의 드라마틱했고 절절했던 밤들은 아주 게으르고 천천히 열린 지옥문의 서막이었을 뿐이다. 너에겐 그랬을 것이다. 받아들일 수 없어 종국에는 한달음에 잠무까지 와버린 나도 가짜가 된다. 그 모든 건 지나갔고 지금 전신 마사지를 받아 욱신거리는 내 피부의 통증만이 진짜다. 폭소가 터져 나왔다.
괜찮으세요?
괜찮겠어요?
나는 웃음을 그치기가 어려웠고 자리에서 일어나기도 어려워서 결국 여자의 부축을 받아 탕에서 나와야 했다. 여자와 미에로화이바를 한 병씩 나누어 먹었다. 짧은 시간이었다. 그건 두 모금이면 끝나는 적은 양이니까. 여자는 더 이상 괜찮냐고 묻지 않았다. 내가 너무 날 선 대답을 한 것 같아 미안스러워졌다. 맨 발 끝을 바라보았다. 여자는 비키니를 나는 속옷만 입은 채였다. 무슨 설명을 덧붙이기도 뭐했다. 그래서 차라리 묻기로 했다.
여태껏 살아온 당신은 괜찮은지를.
[1] 김승옥, 『무진기행』, 1964 변형
[2] 김승옥, 『무진기행』, 1964 변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