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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엄 Jul 06. 2024

동생을 다시 불러내고 나서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동생과 예민한 언니 사이

 

(1).

 

나에게는 친동생과 사촌 동생 사이에 있는 동생이 있다. 어디 가서 우리 둘 사이를 설명하기 귀찮을 때면 자매로 소개하는 동생이기도 하다.

 

우리는 같은 어린이집에 이어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함께 졸업했고, 새해마다 일출 보겠답시고 야간 버스 맨 뒷자리에 타는 이십 대를 함께 보냈으며, 지금도 뭘 하든 같이 할 만한 건 꼭 같이 한다. 그런 우리는 하나부터 열까지 다르다. 자매라고 하면 다들 놀랄 만큼 안 닮았고, 170cm인 동생 옆에 서면 둘 중 누가 동생인지 모르겠다는 말도 자주 들었다. 나는 사람이 싫고, 동생은 사람이라면 사족을 못 쓴다. 나는 조용히 책 읽는 걸 좋아하지만, 동생은 사람들과 시끄럽게 떠들며 술 마실 때마다 행복해 죽을 것 같다고 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둘이서 평생을 주고받으며 내내 비슷한 시간대에 머물렀다.

 

그런데 오늘은 그런 동생이 유난히 귀찮은 나머지 옆에서 뭐라 말 걸든 대충 “응.”이라고만 대답하다가, 동생이 먼저 가 보겠다고 할 때도 “응”이라는 대답을 하고야 말았다. 그렇게 동생이 떠났다. 그제야 편하게 드러누웠는데, 드러눕자마자 동생 생각이 났다.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건만, “응”이라는 대답마다 후회가 발라져서 끝내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응.” 아까 나와 같은 대답이다. 그러나 이번엔 같은 대답이 나와선 안 될 말을 꺼내고 싶어졌다.

 

“다시 만날래?”

 

그런데 이번에도 동생은 똑같이 대답해 주고는 십 분 만에 내 앞에 쪼그려 앉았다. 왜 또 혼자 여기 있대? 이어지는 말은 동생과 닮았다. 하여간. 천성이 다정해서 늘 문제인 애다.

 





(2).

 

내 동생은 다정하다. 주변 모두에게 다정해서 나와 달리 주변에 사람이 끊이질 않는다. 한때 동생이 모두에게 다정히 구는 게 귀찮아졌다며, 가족 제외하곤 모두와 연락 끊고 지냈을 때. 다들 내게 연락해 올 만큼 동생 앞으로 쌓인 다정은 산더미였다. 얼마나 다정하냐면. 지나가듯 던진 한 마디도 기억해 두었다가, 언젠가는 그 말에 가장 어울리는 순간을 선물해 주는 애다.

 

나란히 누워 있을 때 일본에서 파는 푸딩을 먹어보고 싶다는 말을 꺼낸 적이 있는데, 몇 달쯤 지났을까. 일본 일정을 마치고 온 동생 손에는 온갖 빵집에서 만든 푸딩이 들려 있었다. 뭘 이렇게 사 왔느냐고 애써 잔소리하자, 친구가 맛있대서 사긴 했는데 자기는 단 걸 싫어하니까 언니 주는 거라고 툴툴댄 적도 있었다.

 

이렇듯 모두에게 다정한 동생은 나에게 조금 더 다정하다. 어렸을 때 엄마와 이모는 “우리 둘이 사라지면 너희 둘이 서로 엄마가 되어 줘야 해.”라는 말을 귀에 딱지 앉도록 해 줬었는데, 동생은 그 딱지를 떼어내지 않고 살았는지 언니인 나를 매번 살뜰히 챙기곤 한다. 그러느라 애인과 헤어진 적도 있었다. 언제였더라. 기억은 잘 안 나지만, 동생이 좋아하는 사람을 소개해 주었을 때였다. 내 눈에는 동생이 그 사람을 정말 많이 좋아하는 게 보였는데, 다음날 동생은 그 사람에게 차였다. 너는 나보다 사랑하는 게 너무 많다면서. 나는 나만 사랑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말도 들으면서.

 

나 때문에 차였어?

우리 둘은 가족인데, 가족을 질투하는 게 어디 있어.

걔 진짜 이상한 애다. 헤어지길 잘했어.

 

그런 말들로 동생을 위로했지만, 실은 우리 둘이 제일 이상한 사이인 걸 알고 있었다. 다른 집 친자매도 이 정도로 가깝게 지내진 않을 테다. 다정한 동생과 다정하지 않은 나는 한평생 다퉈 본 적도 없다. 내가 아무리 막무가내로 굴어도 동생은 늘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언니 너는 원래 이상하니까 괜찮아.”라고 말하면서 상황을 마무리 짓는다. 같이 자다가도 내가 물 마시고 싶다 하면 잠결에 물을 가져다준 다음 아침엔 기억나지 않는다며 대수롭지 않게 웃는다. 내가 혼자 대학 가기 싫다고 하니까 같이 그 대학교에 입학 원서를 제출해 주고는 대수롭지 않게 “동기니까 말 놓을게.” 이런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내가 누군가와 헤어지고 엉엉 울 때는 대수롭지 않게 나를 그만 울게 하는 방법들을 써먹는다. 그런데 정작 나는 우는 동생을 달래주지 못해서 그냥 옆에서 같이 운다. 그러면 동생은 또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위로가 됐어. 미안해하지 마.

 

언젠가는 그런 동생이 강하고 다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괜히 검도 유단자가 아니라며 마음도 몸만큼 강하다며 추켜세운 적도 있었다. 그러나 둘이서 추모 공원에 다녀왔던 가을날부터 생각이 바뀌었다. 겉모습부터 속까지 무엇 하나 닮은 데 없는 우리지만, 우리는 단 한 가지를 닮았다. 엄마와 이모가 나란히 우리에게 준 것이다. 아플수록 꼭 끌어안고 사는 버릇. 나는 나를 끌어안고 살았다면, 동생은 몇 안 되는 가족을 꽉 안고 살았던 거다. 그러느라 본인은 제대로 못 안아 본 것 같았다. 그날 추모 공원에서 동생을 안아 주는 동안 동생 손이 오갈 데 없이 흔들렸었다. 그러다 나와 마주 안고 나서야 동생 손이 내 등을 토닥이는 데에 쓰였다.

 

내 동생은 그래서 다정하다.

나는 그래서 남에겐 다정하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 둘은 친자매처럼 진하고 진득한 자매로 평생을 지낼 수 있었던 거다. 우리에겐 ‘그래서’라는 시절과 공통점이 평생 존재해 왔으니까.

 

 




(3).

 

이제는 나도 다정해지고 싶다. 늘 먼저 보러 와서 다정히 들여다보는 동생을 문득 먼저 보고 싶어졌다. 동생을 다시 불러내자마자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느라 한참이나 동생 앞에서 우물쭈물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으며 옆에 붙어 걷던 동생과 눈이 마주쳤다. 그제야 넌지시 운을 띄웠다.

 

다음 주말에 바다를 보러 갈까, 하는데 혼자 가긴 싫어.

 

곧바로 동생이 씩 웃는다. 모두에게 다정한 동생의 캘린더는 이미 평일과 주말로 나눌 것 없이 꽉 차 있었지만, 동생은 그중 유일하게 빈 일요일을 단번에 찾아내,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같이 가 줄게. 대신 지켜 줘야 할 게 있어.”

“뭔데?”

“오늘처럼 옷 입지 마. 좀 갖춰 입고 와.”

 

부르면 부르는 대로 어디든 달려와 줬지만, 실은 오늘 내 옷이 싫고, 쪽팔렸나 보다. 내 눈에는 프랑스 영화 속 행인 같았던 옷이 동생 눈에는 잠옷 차림이나 다름없었다는 걸 같이 돌아다닌 지 다섯 시간 만에 알았다. 다섯 시간이나 티 한 번 내지 않고 옆에 있어 주는 마음이 좋으면서도 서운하면서도. 한참이나 왔다 갔다 한다.

 

그런 나를 알면서도 동생은 또 대수롭지 않게 다음 주말에 보러 갈 바다 얘기를 한다. 오랜만에 바다를 보러 간다면서. 바다 갈 때는 제발 둘 다 예쁜 옷 입자고. 자기는 제일 예쁘게 입고 올 거라면서. 그러고 보니까 이십 대에는 나란히 야간 버스에 몸 싣고, 정동진으로 가곤 했었는데. 언제 우리가 이렇게 다 자랐을까. 다 자라다 못해 더는 야간 버스에서 잠들지 못할 만큼 시린 무릎을 나누어 가지다니.

 

우리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까. 함께 보낼 시간에서 너는 얼마나 자라고 나는 또 얼마나 자랄까. 너는 동생이기도 하지만, 나라는 사람의 생애를 기록해 둔 페이지 같기도 하다. 그래서 네 키가 그렇게나 큰가. 나라는 사람이 세 살부터 삼십 대까지 어떻게 자랐는지 기록해 두느라 네 키가 우리 집안답지 않게 유독 큰 걸까.


그렇다면 나는 왜 이렇게 작지. 네가 아직 덜 자랐나. 다른 사람 눈에는 다 자란 너지만. 너무 일찍 철들어서 종종 이모를 울게 하는 너지만. 실은 너는 아직 덜 자란 걸지도 모른다. 아직 덜 자라서 세상 모든 사람에게 다정해지려 애쓰는 걸지도 모르겠다. 언젠가는 네 전 애인을 포함해서 네 주변 사람들이 알아챘으면 좋겠다. 너는 세상에 사랑하는 게 많은 사람일 수도 있겠지만, 네 다정의 출처는 사람들이 제발 다정하게 대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출발했다는 걸. 너는 아직 강한 어른이 아니라는 것도.

 





추신.


이럴 때면 내가 너보다는 언니가 맞나 싶기도 해.

 

이러면 넌 또 대수롭지 않게 웃으며 별소리를 다 한다고 하겠지만, 그런 네 대수롭지 않은 표정에서도 나는 이상하게 고독과 사랑을 한꺼번에 읽는단 말이지.

 

네가 대수롭지 않은 그 표정을 조금은 덜 지었으면 좋겠어. 실은 너는 세상 모든 걸 지나치게 신경 쓰고, 예민한 나와 자매인 사람답게 한껏 예민한 사람인 걸 아무나 다 알아채면 좋겠어. 자꾸 너를 너그럽고 편하게 봐서 아무렇게나 상처 주려 하는 사람들이 제발 좀 사라졌으면 좋겠어.


네가 안 외롭고 안 아팠으면 해.

 

널 아프게 한 사람들이 다 사라져 버린 순간 네가 만일 기쁘기는커녕 그저 외로워진다면. 걱정하지 마. 엄마랑 이모한테 귀에 딱지 앉도록 배운 게 있잖아. 비밀이었지만, 나도 아직 그 딱지를 달고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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