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 대하여
'나'에 대한 관심이 감수성 폭발하던 사춘기 때보다 많아지는 격동의 시기다.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 이런 철학적이고 다소 멀게 느껴지는 어려운 질문 말고,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가" - 이런 피부에 와닿는 가까운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나날들의 연속이다.
미루고 미루던 숙제가 기어코 해야만 하는 날에 도달한 것처럼 초조한 감정은 갑자기 찾아온다.
밥을 먹다가, 빨래를 개다가, 잠이 드려는 찰나에 깜빡이도 켜지 않고 훅 들어온다.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추구미'가 있을까?
사회적 체면이 있으니까 감추기도 하고 버티기도 하면서 반강제적으로 만들어진 밖에서의 모습은 적당한 허상이다. 적당한 책임감이나 배려, 모난 구석은 없는 튀지 않는 적당한 성격의 사람. 직업병이 만들어낸 의도적이지 않은 캐릭터인 셈이다. 나쁘지 않다. 이게 내가 원해서 그린 추구미였을까?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내가 얼마나 다 모른 척하고 무책임하고 튀고 싶었는지. 한쪽 구석에서 가만히 방관이나 하면서 구경하고 싶었는지. 실제로 몇 번을 모른 체했는지.
속마음이야 어떻든 타고나길 이렇게 타고난 걸로 정리하고 살면 편하다.
생각을 안 하면 편하다.
방 정리를 하다가 엄마가 13년 전 종로 공방 어디에선가 사주신 갈색 가죽 다이어리를 발견했다. 매일 들고 다니며 쓰지는 않아도 쓰고 싶은 욕구가 들 때는 가장 먼저 찾아 무엇인가를 적었던 다이어리다.
글을 쓰고 나서는 날짜를 꼭 기록했는데 일 년에 한 번만 쓴 적도 많아 손때를 타 한껏 에이징 된 겉면과 달리 속지는 새것처럼 아직 많이 남아있다. 다시 여기에 일기를 써볼까 생각하며 종이를 넘기다 2017년 20대 중반의 내가 쓴 글 하나를 발견했다.
한남동 대림 D뮤지엄에서 'YOUTH' 전을 보고 꽤나 감명 깊었는지 생각이 많았나 보다.
(2017.02.23)
청춘, 젊음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들뜨고 동경하게 되는 무언가가 있다. 나도 지금 한창 청춘인데 왜 작품을 보며 동경하게 되는지 모를 일이다.
작가와 작품이 내게 전하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사진에 담은 사람 본연의 순수함, 자유로움, 도전, 무모함... 어쩌면 시간이 흘러 산화되는 '청춘'이란 열병에 대한 일종의 기록이 아닐까? 영원하지 못해 슬픈 젊은 날의 초상처럼 자꾸만 이때를 보며 그때의 나를, 우리를 기억하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 같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청춘인가. 나는 내게 주어진 자유를, 젊음을 앓아누울 듯 잘 불태우고 있는가. 부끄러운 답만이 입 안에서만 머문다. 절대 입 밖으로 소리 내는 일은 없다.
그때의 나는 8년이 지나도 똑같은 질문을 내게 하고 있다.(소름)
지금의 내가 과거로 돌아간다면 '그렇게 진지할 필요 없어!' '다른 사람을 동경하지 말고, 그냥 머뭇거렸던 모든 것을 해버려! 너무 어리잖아 하고 싶은 걸 다 해!'라고 말해줄 것 같은데, 시간이 너무 지나서 무엇으로 머뭇거렸는지 왜 부끄러웠는지 도통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저 이 글을 남겼을 내가 나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 찼던 시간을 씩씩하게 잘 넘어왔길 바랄 뿐이다.
8년 전에도 그런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을 보면 나에 대한 고민은 죽을 때까지 계속되는구나 싶다.
그러니 지금 나에 대한 관찰과 고민을 피하면 안 되겠다. 생각을 안 해서 편한 것이 아니라 어차피 고민은 멈추지 않고 계속되니까 1 고민에 1 해답, 1 고민에 1 행동 이렇게 하나씩 지우며 살아야지.
그런 의미에서 유지하고 싶은 내 추구미 하나를 설정했다.
뭘 하나 먹어도 예쁘게 플레이팅 해서 세팅하는 그 시간부터 먹고 치우는 순간까지 좋은 기분을 즐기는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