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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호 Feb 03. 2022

내 인생의 커피들

커피에 대한 첫 기억 아마도 초등학교 어린 시절 잠결 무의식 중으로 돌아간다. 새벽일을 나가시는 엄마는 찬장에 고이 간직한 커피를 냉면기보다 작은 스뎅 국그룻에 타셔마셨다. 곤로에 올려놓은 주전자 물이 끓으면 커피 한 스푼을 넣고 뜨거운 주전자를 기울여 더 뜨거운 물을 따랐다. 정말로 뜨거운 커피여서 엄마는 호호 불며 차가운 부엌에서 홀로 커피를 마셨다. 겨울이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를 엄마는 참 맛있게 드셨다.


항상 잠결에 향긋한 커피내음이 코로 들어오면 이제 곧 일어나서 씻고 학교 가야 할 시간이라는 걸 눈 뜨지 않고도 알아챘다. 하지만 역시 나는 일어나지 않고 코로 커피 향만 들이켜던 시절이 있었다.


 성인이 되어서는 직장을 다니게 되면서 믹스커피의 맛 알게 되었다. 조그만 회사에서 일하던 시절 그야말로 신입인 나 최양이 직원들 입맛에 따라 커피를 타 주었다. 지금의 막내들에게 커피 타달라고 하면 노조에서 달려올테지만 그땐 그랬다. 2:2:2로 타는 맞춤형? 커피 한잔씩 돌리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진정한 믹스커피의 맛을 알게 된 것은 육아하던 시절이었다. 아이들과 전쟁 같은 하루를 보내면서 믹스커피는 땔레야 땔 수 없는 운명이었다. 우선 아이가 울기 시작하면 커피포트에 물을 끓인다. 그리고 믹스커피를 뜯어 머그잔에 쏟아 넣는다. 아이를 살살 달래서 아이가 울음을 그치면 아이에겐 요구르트를 건네고, 나는 머그잔을 들고 커피를 마셨다. 눈물 그렁그렁한 아이 눈망울에 웃음이 걸리면 나도 덩달아 웃으며 커피를 마셨다. 그렇게 전쟁과 사랑같던 육아는 이미 진즉에 끝났고 몇 년 전부터 건강하게 오래 살기 위해(?) 믹스커피를 일절 끊고 아메리카노만 마신다. 구시대를 사는 신시대 여성처럼^^


흔히들 말하는 인생 커피라고 느꼈던 커피는 바로 산 정상에서 마시는 커피다. 산행모임의 한 지인이 항상 새벽에 내려오는 드립 커피의 맛은 환상적이다. 사실 그 커피맛을 보려고 등산을 가는 거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산 정상에 올라 일상은 잊어버리고 위대한 대자연을 깨달으려 가는 산행이지만 간사한 인류의 기호품인 커피를 끊는다는 것은 쉽지 않다. 아니 끊을 생각은 없다. 좀 더 즐기고 싶은 마음이다.


내 핸드폰 어플에는 이디야도 있고 스타벅스도 있고 투썸도 있다. 그중 가장 많이 애용하는 것은 이디야이다. 집 근처 스타벅스가 있지만 내가 주로 이용하는 주말에는 드라이브 스루 차량이 3차선 도로를 다 점령해 버리는 것이 정말 장관이다. 요즘 같은 연휴에는 인산인해인 스벅에 간다는 것은 꿈에도 못 꾼다. 그래서 좀 더 걸어 이디야까지 걸어간다. 이디야에서 주로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가끔 아이들이 커피 쿠폰을 주면 카페라테를 마시기도 한다. 커피를 마시면서 주로 책을 읽는다. 서평을 마무리해야 하는 책이 있다면 좀채 진도가 나가지 않을 때는 커피숍을 찾아 자리를 잡고 책을 읽는다.


가끔 출장이 일찍 끝나거나 아이가 학원에서 늦게 오는 날은 더 멀리 투썸까지 차를 타고 가 라테를 마신다. 호수 근처 투썸이라 경치도 좋다. 또 혼자 오는 솔로족들도 있어 혼자 가도 맘이 편한 곳이다. 솔직이 동네 커피숍에 혼자 가기엔 좀 망설여진다. 내가 사는 곳은 조그만 동네라 괜히 카페에서 혼자 커피 마시고 있을 때 지인이라도 만나면 멋쩍기도 하다. 그런 적이 몇 번 있어서... 솔직히 나는 혼자 커피숍 가는 것이 좋다. 나만의 시간을 누릴 수 있는 곳이니까. 조용한 커피숍에서 혼자 책도 보고 글도 쓰고 음악도 듣는다.


인생을 살면서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중요하다. 정리하고 덜어내는 시간이 될 수도 있고 읽으면서 채워 넣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 그 시간 함께 하는 커피가 인생을 좀 더 여유 있게 한다. 게다가 프리쿠폰을 받은 날은 더욱더 인생은 살만하다 느낀다. 하지만 내 인생 오후 5시 이후엔 커피를 마실 수 없다. 왜? 카페인 과다 섭취로 밤새 잠을 못 자니까. 그래도 나는 커피와 함께하는 5시 이전의 삶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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