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로 보내오는 선물을 받는 것이 슬프다. 던져 팽개쳐진 선물을 주워가는 것 같다. 물론 이건 나의 아주 개인적인 느낌일 뿐이다. 선물의 마음이 중요한 거 안다. 나는 그저 선물을 클릭해 쏘는 너와 너의 눈빛에 관심이 있다. 너를 보여달라.
'띠링' 톡이 울려 열어보니 추석맞이 복주머니에 돈과 덕담을 넣어 두었으니 받아가라 한다. 20년이 넘도록 일 년 두 번의 명절마다 인사와 선물을 보낸다. 나는 이제 디지털 선물은 받지 않기로 했다고 답신했다. 그리고 그 대신 너를 보여달라고도 덧붙였다. 마음만 받겠다, 해피추석. 이랬다. 역시 누나야. 답신도 쿨했다.
문득 그를 보고 싶다는 생각에, 저녁 8시 30분에 만날 장소만 날려, 보자 했다. 안 맞으면 그뿐. 이 가을 성사된 만남에 기분이 좋다. 저녁 먹을 거냐 해서 '노! 나는 탄산수, 뻬리에 레몬'이라고 톡 했다.
오랬더니 나보고 오란다. 자기는 뚜벅이니. 그래, 그를 만나러 간다. 조심스러운 밤 드라이빙이다.
내가 처음 공무원으로 G시의 시청에 발령받아 동기가 된 그는, 처음 본 날부터 낯선 경계가 가득한 나를 챙겨주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한결같다. 참 복도 많다. 뜬금없이 '누나'라고 불러서 당황했지만 그가 '누나'라고 부르면 웬지 보살핌을 받는 기분이 된다. 사실 '누나'가 챙겨줘야 하는데 반대다. '누나'는 내가 챙겨줄게 하는 보이지 않는 따뜻함이 언제나 좋다. 항상 내편 해주니 또 좋다.
술 마시자, 신났었던 시간들이 춤을 춘다. 오늘은 우울하니 그냥 옆에 앉아만 있어 줘. 한숨 푹푹 질질 짜며 블랙러시안 몇 잔을 들이부어 취해도 기사가 되어 귀가시켜주었던 기억, 스트레스로 난생처음 소주 두 병에 화장실에서 곤히 자던 나를 둘러업어다 남편에게 인계한 사건, 자기 애인 생겼다며 시시콜콜 진도 나간 얘기까지 다해주던 순간들, 모두 시간이 전해주는 그의 향기로 남았다.
공무원 3년, 난 두 번의 호흡곤란에 그만 두었다. 그럼에도 옆에서 현재형인 그는 좋은 사람이다.
뻬리에 레몬이 없다면서 눈이 마주쳤다. 아마도 슈퍼마켓을 여러 곳 다녔던 걸까. 스타벅스에 가면 돼. 나는 뻬리에 레몬이 아닌 라임을 마셨다. 밍숭밍숭. 나는 레몬크레이지다. 과일처럼 깎아먹는 레몬.
탄산수와 음료 한 병으로 공원에 앉았다. 밀폐된 곳에선 눈이 너무 괴롭다. 그도 사람 많은 곳은 싫다니 다행이다. 우린 글 쓰는 이야기, 가족 이야기, 지내는 이야기를 했다. 같이 앉아 눈 맞춰가며 웃음 맞춰가며 세상을 이야기하는 시간이 좋다. 우리가 이렇게 잘 살아가고 있구나. 고맙다.
네가 비리공무원이 되면 내가 가만두지 않을 테다. 매번 알았다 끄덕이는 순수함이 좋다. 고맙다.
한 시간쯤 만나 이야기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고속도로를 달리며 듣는 재즈가 충만한 가을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