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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수공원 Nov 11. 2023

한라산 당일 쏠로 산행-5

백록담은 잘 있구나

3대가 덕을 쌓아야 본다는 백록담을 작년부터 꾸준히 보고 있다. 어느 3대인지는 모르겠으나 착하게 사신 나의 부모님이 그 중 한대일거라 추측한다




새벽 2시에 일어나 필사를 하고 주섬주섬 짐을 싸서 3시40분에 김포공항으로 운전대를 잡았다. 잠을 채 2시간도 못자서 걱정이 되면서도 새로운 모험 하나 더 하는거다 생각한다. 현무암 삐죽거리는 돌길을 걸으며 잘 수는 없으니 정신력 테스트다.

관음사 탐방로 입구에 8시경 도착해 직원의 신분증 확인 후 들어갔다. 바람 솔솔부니 양옆 조릿대가 흔들거리며 반긴다. 긴 나무계단를 쑥 내려갔다 올라오면 급경사 훈련 구간 마냥 숨이 끊어질듯 가쁘다.


오늘 걸 견디며 나 자신을 테스트하는 날이다.

삼각봉대피소에서 에 흠뻑 젖은 옷들을 갈아입고 상쾌하게 올라간다. 이 길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초록 초원과 병풍처럼 장엄하게 이어져있는 백록담으로 이어진 다른편 벽을 만난다. 가슴이 묵직해지며 없던 다짐도 새로 하게 한다. 내가 다시 왔어.

하늘과 나무와 구름이 참 뻤다. 빨강 열매 사이로 빛나는 하늘, 운해가 가득한 산 중턱 저편, 징글징글 이어지는 끝없는 계단에도 하늘과 나무만보면 기쁘다.

백록담이 있는 곳으로 다가갈수록 하늘이 열린다. 해가 빛나는 하늘에서 눈을 아래로 내리는 순간 정상석 주변에 모여 끓는 사람들에 깜짝 놀란다. 백록담이라 새겨진 돌을 안고 사진찍으려면 한 시간도 더 줄서서 기다려야 한단다. 난 사람이 바뀔 때 돌만 찍는다.


백록담은 사실 허전하게 생겼다. 물웅덩이도 찔끔 고인 눈물같다. 안쪽으로 금이 가서 물이 고이지 않는다고 들었던것 같다. 슬퍼해야 하는건지 자연의 섭리다 하고 지나쳐야 하는건지 잘 모르겠다.

한라산의 대표 나무였던 구상나무가 기후 변화로 하얗게 빛을 뿜으며 죽어가고 있다. 한라산은 구상나무의 무덤이 되어간다. 되돌릴 수 없다하니 슬프다. 내가 무얼 해야 세상이 나아질지 막막하다.

하산은 관음사 쪽의 반대인 성판악 탐방로로 내려왔다. 하산 초반 바위와 불규칙한 큰 돌길이 무릎을 나가라한다. 잠시 잠시 나갔다 온다. 정말 지루하고 긴 돌길 계단길이지만 경사가 많이 없어서 걷기에 충격이 많지 않다.


표지판이 2시간 남았다 하는데 한참 걸은 후  다시 나타난 표지판도 1시간 59분 남았다고  알려주는 방식이 약오르고 빡쳤다. 이걸 제안을 해, 말어. 내가 사는곳도 아니니 그냥 가기로 하자. 띠엄띠엄 30분 단위로 표지판을 세워줬으면 좋겠다.




다음 한라산 당일 쏠로-6은 12월이다. 그땐 눈이 펑펑 내린 영실 탐방로를 가고 싶다.


시간 남으면 책을 읽으려 한권 가져 왔지만 책을 펴자마자 눈이 감긴다. 그래서 오늘 한라산 당일 쏠로 여행기를 스마트폰 만으로 쓰는걸 도전해봤다.


글을 쓸 때 매번 노트북을 열고 경건한 자세로 썼었는데, 사람들 분주히 지나다니는 탑승구역 바닥에 철푸덕 앉아서도 쓸 수 있다니 나로써는 신기하고도 놀랄일이다. 사는게 새로움의 연속이다.


눈이 너무 아프고 피곤하고 감긴다. 비행기에 타면 바로 자야겠다. 굿나잇~♧




https://brunch.co.kr/@heesoo-park/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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