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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수공원 Dec 29. 2023

삐딱한 폭우

[엽편소설]

굵게 아우성치며 내리는 폭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바람이 들락날락하며 원하는 각도로 일어났다 누웠다 하는 비가 자유로워 보였다. 그래 그런 자유지. 누가 옆에 있어도 자유로울 자유.


매번 이렇게 비가 오는 여행은 아니었지만 이번에는 이 비마저 지수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조금은 삐뚤어져도 되지 않을까.


왜 그 비싼 방에 들어앉아서 바깥 외출이라고는 시선뿐인 그 따위 여행을 하냔 말이야.


너는 나랑 그렇게 오래 살았으면서도 나를 모르지. 너라는 방 보다 왜 나는 피곤한 열 시간쯤의 비행기 이코노미 좌석을 이겨내고 이 먼 곳 럭셔리 리조트 스위트룸에 혼자 앉아 있는지 알기나 하니?


톡은 멀리 떨어진 연인에게 호의적이 아니었지만 이런 거리가 얼마나 다행인 건지 지수는 알고 있었다.


죽지는 말고. 돌아와.



기나긴 동거는 갈수록 지수를 말려갔다. 언젠가는 삶이 벌컥 닫힐 거라는 건 기정사실인데 동현은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았다.


아무도 모르는 거야. 의사 말이라고 다 믿어야 해? 세상은 이상하고 신기한 일 천지거든.


어떤 신비한 일이 지수에게 오면 좋겠는지 동현은 한 번도 말한 적 없었다. 같이 느끼고 싶어. 같이 숨 쉬고 싶어. 동거의 시작은 그랬다.


이따금씩 혼자가 필요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휴양지를 선택해 티켓을 끊는다. 티켓을 끊으며 공포도 끊어야지 한다. 지수의 찌꺼기를 끊고 또 다른 지수로 태어나는 과정을 혼자 겪어내고 있었다.


이틀쯤 본능으로 마신 반 병의 물이 지수를 예민하게 했다. 가장 날카롭게 자신의 생명을 혼자서 느끼며 살려고 애타는 손을 잡는다. 일 년에 한두 번 생명의 외침을 듣는 그런 사치다.


Do not disturb.


방해하지 말라는 불을 켜두면 삼일째쯤부터 간간이 프런트에서 전화를 한다.


Hello, Ms. Cha, We have an exotic spa program and you'll get a compliment voucher.


스파 무료 이용권에 당첨이 되었으니 축하한다는 그런 류의 시작이 매일 한번 정도씩 프런트의 전화로 성가시다. 그들의 불안을 모르지는 않지만 구겨지는 자유로움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다.


I WON'T DIE!


OK, Ms. Thank you.


죽지 않을 거라고! 나의 단도직입적인 메시지에 감사하다고 대답하는 저 당황도 지수는 알고 있었다. 즉각 미안하다며 무료 스낵을 보내 주겠다고 할 땐 방안 꼴을 염탐하려는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한 번은 보여주는 게 나았다. 괜한 손님 하나 때문에 리조트 직원들의 전전긍긍에 책임지고 싶지 않았다.


스낵이라곤 감자칩 한 접시 들고 와서는 재빨리 방을 훑고는 안심한다는 듯 나가는 룸서비스 직원의 프론테스크 보고가 귀에 들리는 것 같았다.


She doesn't seem to kill herself.


자살할  같아 보이진 않아요. 그래 내가 왜 여기까지 와서 죽겠니.


혼자가 필요하다는 걸 이해하는 세상은 많지 않았다. 모든 바깥소리를 차단하고 시선만 커다란 창 밖 바람이 흐르는 나무 사이를, 구름이 기도하는 하늘 사이로 외출하는 이런 시간과 공간이 지수에게는 간절했다. 오롯이 혼자라는 걸 느끼며 생명을 키워가는 시간이었다.


굵은 비 사선으로 들이치는  좋아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게 내리는 저 빗줄기를 닮아 오늘은 조금 삐딱해도 지수 자신을 관대하게 용서하며 살고 싶다고 한번 더 생각했다.


며칠간 빈 속에, 타는 듯 흐르는 켄타우로스가 그려진 익스트라 올드에 잠이 들었다.


잘 살 것이다. a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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