굵게 아우성치며 내리는 폭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바람이 들락날락하며 원하는 각도로 일어났다 누웠다 하는 비가 자유로워 보였다. 그래 그런 자유지. 누가 옆에 있어도 자유로울 자유.
매번 이렇게 비가 오는 여행은 아니었지만 이번에는 이 비마저 지수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조금은 삐뚤어져도 되지 않을까.
왜 그 비싼 방에 들어앉아서 바깥 외출이라고는 시선뿐인 그 따위 여행을 하냔 말이야.
너는 나랑 그렇게 오래 살았으면서도 나를 모르지. 너라는 방 보다 왜 나는 피곤한 열 시간쯤의 비행기 이코노미 좌석을 이겨내고 이 먼 곳 럭셔리 리조트 스위트룸에 혼자 앉아 있는지 알기나 하니?
톡은 멀리 떨어진 연인에게 호의적이 아니었지만 이런 거리가 얼마나 다행인 건지 지수는 알고 있었다.
죽지는 말고. 돌아와.
응
기나긴 동거는 갈수록 지수를 말려갔다. 언젠가는 삶이 벌컥 닫힐 거라는 건 기정사실인데 동현은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았다.
아무도 모르는 거야. 의사 말이라고 다 믿어야 해? 세상은 이상하고 신기한 일 천지거든.
어떤 신비한 일이 지수에게 오면 좋겠는지 동현은 한 번도 말한 적 없었다. 같이 느끼고 싶어. 같이 숨 쉬고 싶어. 동거의 시작은 그랬다.
이따금씩 혼자가 필요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휴양지를 선택해 티켓을 끊는다. 티켓을 끊으며 공포도 끊어야지 한다. 지수의 찌꺼기를 끊고 또 다른 지수로 태어나는 과정을 혼자 겪어내고 있었다.
이틀쯤 본능으로 마신 반 병의 물이 지수를 예민하게 했다. 가장 날카롭게 자신의 생명을 혼자서 느끼며 살려고 애타는 손을 잡는다. 일 년에 한두 번 생명의 외침을 듣는 그런 사치다.
Do not disturb.
방해하지 말라는 불을 켜두면 삼일째쯤부터 간간이 프런트에서 전화를 한다.
Hello, Ms. Cha, We have an exotic spa program and you'll get a compliment voucher.
스파 무료 이용권에 당첨이 되었으니 축하한다는 그런 류의 시작이 매일 한번 정도씩 프런트의 전화로 성가시다. 그들의 불안을 모르지는 않지만 구겨지는 자유로움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다.
I WON'T DIE!
OK, Ms. Thank you.
죽지 않을 거라고! 나의 단도직입적인 메시지에 감사하다고 대답하는 저 당황도 지수는 알고 있었다. 즉각 미안하다며 무료 스낵을 보내 주겠다고 할 땐 방안 꼴을 염탐하려는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한 번은 보여주는 게 나았다. 괜한 손님 하나 때문에 리조트 직원들의 전전긍긍에 책임지고 싶지 않았다.
스낵이라곤 감자칩 한 접시 들고 와서는 재빨리 방을 훑고는 안심한다는 듯 나가는 룸서비스 직원의 프론테스크 보고가 귀에 들리는 것 같았다.
She doesn't seem to kill herself.
자살할 거 같아 보이진 않아요. 그래 내가 왜 여기까지 와서 죽겠니.
혼자가 필요하다는 걸 이해하는 세상은 많지 않았다. 모든 바깥소리를 차단하고 시선만 커다란 창 밖 바람이 흐르는 나무 사이를, 구름이 기도하는 하늘 사이로 외출하는 이런 시간과 공간이 지수에게는 간절했다. 오롯이 혼자라는 걸 느끼며 생명을 키워가는 시간이었다.
굵은 비가 사선으로 들이치는 날이 좋아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삐딱하게 내리는 저 빗줄기를 닮아 오늘은 조금 삐딱해도 지수 자신을 관대하게 용서하며 살고 싶다고 한번 더 생각했다.
며칠간 빈 속에, 타는 듯 흐르는 켄타우로스가 그려진 익스트라 올드에 잠이 들었다.
잘 살 것이다. al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