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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수공원 Jun 08. 2024

알코올 이불

끊임없이 움직이는 눈동자, REM 수면

꿈을 꿉니다. 눈동자가 불안을 견디지 못해 불규칙하게 떠돕니다. 무엇이 불안했는지 기억나지 않아도 꿈에서 만큼은 날개를 달고, 자는 듯 반쯤 깨어있는 몸뚱이를 비틉니다.


꼬인 하루를 소화하느라 알코올이라도 삼키는 날에는 램(lamb, 어린양)인 줄 알고 따라가 보지만 이내 램(Rem, Rapid Eye Movement, 빠른 안구 운동) 수면의 덫에 걸리고 맙니다. 자는 척하는 두뇌에게 깜빡 속으며 그간 억압되었던 분노가 빨강으로 떠오르고 하루동안 제대로 이루지 못한 욕망들이 살아 일어납니다.


논리와 이성에 지쳐 모든 감각을 팽개치고 멍하고 싶을 때, 그럴 때 멍할 수 있는 자유는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절대 각성 상태 같은 걸 겁니다. 그런 멍할 때 창의력이 꿈틀거리다가 솟구칠 수도 있겠지요. 멍함을 저주시하는 세상에 살면서 그를 위한 도피를 합니다. 주섬주섬 보따리를 싸 길을 나섭니다.


길 위에서 만나는 건 엄청난 변화나 혁신이 아닙니다. 제대로 주의를 기울이지 못해 방치했던 자신의 흩어진 조각들입니다. 지쳐 널브러져 있던 그들을 모아 차분히 퍼즐을 맞추는 시간을 갖습니다.


'내가 그렇게 슬펐었구나. 내가 그런 걸 갈망했구나. 외로웠구나. 사랑했구나. 살고 싶구나.'


1라운드 산사춘에 참치 캔 하나를 지나 2라운드 사케와 관자 구이에 매운 고춧가루를 찍습니다. 느려진 근육을 챙기며 해안을 걷다가 길가에 무심한 돌을 툭툭 차 봅니다. 신발 앞 코에 조준이 제대로 되는 돌을 보며 3라운드를 시도해도 되겠지만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갑자기 듭니다. 올리버 색스를 떠올립니다.  


나는 글을 쓸 때 때때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르는 생각들이 저절로 체계가 잡히고, 즉석에서 적절한 단어들로 자신을 포장하는 것을 느낀다. 나는 그럴 때마다 나의 성격과 신경증(neurosis)을 상당 부분 우회하거나 초월할 수 있다고 느낀다. 그 상태의 나는 내가 아닌(not me) 동시에 나의 가장 내밀한 부분(innermost part)이며, 최상의 부분(the best part) 임에 틀림없다.

- Oliver Sacks, 의식의 강(The River of Consciousness, 2018, 알마) p.161-62


취중 글쓰기를 하며 조쉬 그로반을 듣습니다. You're still you, 그를 사랑하는 건 당연한 수순입니다. 자신의 가장 내밀한 부분, 보이지 않았지만 가장 최상의 깊숙함에 손을 뻗습니다.


여전히 위태로운 경계를 들락거리는 시간을 살지만 진심으로 살기로 다짐합니다. 매번 다짐하지만 다르게 마음먹고 다르게 눈을 뜹니다. 알코올의 주저함을 내려놓고 델듯한 뜨거움을 가슴에 안습니다. 한 때 위태로웠던 저 자신을 극복했던 그 뜨거움을 기억합니다. 계속 사랑하기로 합니다.





알코올 이불을 덮고 깜빡 잠이 들어 총 천연색 꿈속을 헤매다 깬 새벽 4시, 멍하니 일어나 스마트 폰을 클릭합니다. 글이 없습니다!


밤 새 열어 둔 노트북, 날 것 그대로의 제 모습이 저장도 되지 않은 채 위태롭습니다. 그렇게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밤을 보낸 저의 가장 내밀한 모습을 꾸~욱 눌러 저장합니다.


오늘도 그렇게 저의 삶을 있는 힘껏 밀고 나갑니다. 그게 인생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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