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는 사람들
두 사람이 앞으로 의열단과 흑우회가 어떤 식으로 협조 체제를 구축할 것인가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는 사이 누군가 밖에서 급하게 문을 두드렸다. 놀란 김석중 선생이 손을 들어 말을 중단시켰다.
아이자와 교수가 문을 향해 누구냐고 묻자 낮은 목소리로 '선생님 접니다'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김석중 선생이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오게라고 하자 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매화실 문을 열고 들어온 남자는 들어온 것이 아니라 안개처럼 스며드는 것만 같았다. 그토록 조심스러운 남자는 본 적이 없었다. 아이자와 교수는 순간 그가 진짜 살수라는 느낌을 받았다. 군복을 고쳐 입은 복색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표정의 남자는 나이조차 구분되지 않았다.
이십 대부터 오십 대까지 상황에 따라 보는 사람의 기분에 따라 달라 보일만 한 얼굴이었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두 사람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김석중 선생에게 다가가 손으로 귀를 가리고 무언가에 대해 보고를 했다.
놀란 표정의 김석중 선생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남자를 자리에 앉도록 했다.
“큰일 났습니다. 유 군이 경찰에 체포되었다고 합니다. 누군가 유 군이 있는 곳을 고발한 모양입니다. 알고 있는 사람은 저와 이 친구밖에 없었는데 거참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아이자와 교수는 주먹으로 탁자를 치더니 김석중 선생을 향해 쏘아붙였다.
“도대체 의열단에서는 유 군을 보호하려는 의지가 있기는 있는 것이었습니까? 신문만 읽어봐도 답이 나옵니다. 혼마치 살해 당시 의열단은 유 군의 총격을 계기로 무기고 탈취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지 그들의 막후를 도와줄 의지는 전혀 없어 보였습니다. 지금도 유 군이 어디 있는지 알고 사람을 붙여놨었다고 하면서 결국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한 거 아닙니까?”
김석중 선생은 흥분한 아이자와 교수의 이야기를 듣더니 빙그레 웃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유 군을 함부로 다루지는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사이토와 혼마치의 저격에만 목표를 두지 않았단 것처럼 그들도 유성준 체포에만 목표를 두지 않습니다. 그들의 진짜 목표는 제가 될 것입니다. 그들은 유 군을 살려서 저를 치려 할 테니 시간을 벌기에는 충분한 여유가 있습니다. 이번에는 우리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흑우회 내에서도 이제 신분이 노출될 대로 노출된 유성준에 대해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자와 교수는 그가 아나키스트로서 얼마나 출중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가에 대해 강력하게 호소했다.
자신도 지나치게 유성준을 싸고도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아무리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이념가라도 누군가에게 마음이 더 가는 것은 막을 길이 없었다.
유성준은 그에게 아들 같은 존재였다. 처음 흑우회에서 그의 모습을 보았을 때 열정 넘치게 에스페란토 어를 공부하는 모습 하나만으로도 눈이 부신 청년이었다. 반짝이는 눈으로 모두가 동등한 입장에서 연대하는 세상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하는 모습은 아이자와 자신의 젊은 시절에 대한 향수를 불러오기도 했다.
“저는 학회가 끝나도 유 군이 만주로 떠나는 것을 보고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실 필요는 없을 텐데요. 저희한테 맡겨두시는 것이 유 군의 안전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일을 이 지경을 만들어 놓으셨나요?”
“어허, 말씀이 과하십니다.”
김석중 선생은 떳떳하지 못한 구석이 있어서 큰소리를 치지 못했다. 애초에 조선철도호텔에서 유성준을 도피시킨 것도 의열단이 아니라 이본느였다는 것을 알기에 아이자와 교수에게 우리만 믿으라고 큰소리를 치지 못하는 것이다.
남자가 시계를 보더니 바닥을 열어젖혔다. 김석중 선생이 일어서면서 아이자와 교수에게 고개를 숙인다.
“이번에는 저희도 생각이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지난번에 탈취한 무기가 충분하니 제법 큰 사건을 하나 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 건강히 돌아가십시오.”
김석중 선생이 바닥으로 사라지고 난 뒤 아이자와는 주머니를 뒤적였다. 아직 계피 과자가 남아 있었다. 계피 과자를 입에 문 그는 자신이 어떤 결정을 내리는 것이 유 군과 흑우회 조직을 위해 옳은 판단인지 생각하기 위해 잠시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