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조약돌 셋 24화

우리는 자동차와 함께 대지를 달린다

목 木

by 하이디 준

아이는 자동차를 수집한다.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는 아쉽게도 기록이 없다. 아직 작은 곰처럼 꿍얼거리던 시절에 어떤 장난감을 선호하기 시작했는지는 한 번 정리했던 적이 있지만, 그건 아이가 한 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을 수밖에 없어서 가능했던 일이고, 지금처럼 공룡의 위엄으로 다람쥐의 속도를 주파하는 시기엔 내 손에 들린 기록매체 같은 건 눈 깜짝할 사이에 빼앗길 또다른 장난감일 뿐이다. 그래도 대강 아이의 첫 차들이 어떤 거였는지는 기억한다. 왜냐면 그건 나와 남편의 장식장에 버젓이 주차되어 있던 미니카들이었으니까.


어른이들, 혹은 오타쿠와 키덜트들답게, 우리는 신혼 때 놀이공원에 놀러가길 즐겼고, 무엇보다 남편은 어린 시절에 즐기지 못했던 기념품 수집에 열을 올렸다. 이미 다 해봤던 나는 정작 내 물건을 고를 땐 가장 까다롭고 엄격하게 굴면서, 남편이 뭔가 손에 들고 저울질하기 시작하면 옆에서 “둘 다 사버려”라는 악마의 속삭임을 귀에 흘려넣기 바빴다. 그리고 남편이 한 다스쯤 계산대에 올려놓으면 나는 내가 고른 한두 개를 슬쩍 밀어넣으며 나의 소박함을 자화자찬했다. 다섯 대의 미니카들은 그 때의 전리품이었고, 남편은 아빠곰이 될 것을 예감하지 못한 채 자기 동굴에 다른 갖가지 보물들과 함께 신전처럼 모셔놓고 가끔 들여다보며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세월은 흐르고, 수집 자금 마련을 위해 남편이 일에 치이는 동안, 동굴 속 신전에는 뿌연 먼지가 앉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 남편의 잊혀진 유적을 새로 발굴하기로 결심한 자가 등장했다. 새 장난감을 사주느니 집에 넘치는 것부터 쥐여줘보자는 교묘한 엄마의 인도 아래, 아이는 턱받이를 휘날리며 동굴 탐사에 나섰고, 신세계를 만났다. 그 많은 보물들 중에서도 아이를 매료시킨 건 결국 미니카들이었다. 앙증맞은 생김새, 그러나 풍부한 디테일, 더불어 네 개의 바퀴로 선사하는 생동감까지. 현대의 공룡들이라 비견될만한 신비하고 거대하고 번쩍이는 생물체들의 축소판. 강렬한 울음소리, 어마무시한 속도, 발광하는 눈. 어쩌면 강철 몸 속에 흐르는 피조차 저 먼 고대의 조상에게서 흘러나와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외출을 시작하고부터 자동차를 영접할 때마다 감격과 환희의 외마디를 질러댔던 아이에게 그 선택은 당연한 귀결이었는지도. 그리고 아이의 손을 이끌었던 엄마는 운명의 여신처럼 만족스럽고 의뭉스런 미소로 모든 걸 지켜본다.


그도 그럴게, 내 친정에는 아직도 한 다스 정도가 아니라 8인용 밥솥 하나를 가득 채울 양의 미니카들이 보관되어있기 때문이다. 비록 동생에게 물려준 뒤로 애정은 식었고, 동생 역시 무엇이든 잘 버리지 못하는 가풍에 절여져 집 한 구석에 고이 모셔두었을 뿐이지만, 그 미니카들 또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유물들 중 하나다. 저마다의 독특한 취향을 보유한 나의 네 명의 이모들 중에서, 유독 지금의 나나 남편처럼 장난감을 사랑했던 이모가 어린 나에게 끊임없이 진상했던 뇌물의 흔적이었다. 사실 생각하면 어린 시절의 나는 그렇게까지 미니카를 좋아한 건 아니었다. 물론 잔뜩 생기니 그 중에서도 문이 열리거나 오픈카인 경우 손톱만한 인형들을 태울 수 있는 것들을 아끼게 되긴 했지만. 결국 나는 이모의 취미를 물려받은 셈이었고, 이모는 나를 통해 구매의 대리만족을 이룬 셈이었다. 나는 내 아이의 손을 잡고 마트에 갈 때면 매번 이모의 마음이 내 가슴 속에서도 두근거리는 걸 느낀다.


오히려 이제 남편이 “자동차는 그만 사도 되지 않을까”라며 간혹 스스로도 지키지 못할 제동을 걸지언정, 나와 아이는 언제나 새로이 손에 쥐게 될 그 특별한 하나를 찾아 줄줄이 늘어선 매대 사이를 헤맨다. 뱃속에서 꼬물거리던 게 엊그제인 녀석이 내 옆에 쪼그리고 앉아 내가 고른 것과 제가 고른 것을 비교하는 모습을 보자면 그저 속이 간질거리게 웃음보가 차서 견디기 힘들다. 그 와중에도 유난히 빨간 차에 꽂히는 습성을 보며 대체 남자들과 빨간 차는 어떤 신성한 관계로 맺어진 것일까 골똘히 자문해보기도 하고. 이제 제법 다른 이들의 선호까지 고려하게 된 아이의 “엄마 아빤 어떤 차가 좋아?”로 시작된 가족의 대화는 지프차 외길 인생인 엄마의 판촉과 람보르기니부터 픽업 트럭까지 소화하는 아빠의 강의로 점철된다. 실제 자동차 판매장을 지나며 “엄마, 우리 저기 가볼까?”라며 눈을 빛내는 아이에게 “아직 백 년은 이르다”고 대꾸해주지만, 한편으론 기대가 된다. 아이가 어떤 차를 운전하며 늙은 부모에게 추억 여행이라도 시켜줄지. 그저 미래의 아이의 세상에선 아이가 차를 운전하기보단 실제로 차와 대화하고 있을 것 같아서 그 또한 어른이들의 꿈의 실현이려나 살짝 설레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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