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水
어릴 땐 집이 자주 정전되곤 했다. 집에는 늘 여러 개의 큼지막한 초들이 준비되어 있다가, 어느 순간 티잉, 똑!하고 모든 전자기기들과 전등이 기절해버리면 구급대원마냥 불을 밝히고 나타났다. 어둠 속에 갑자기 집이 낯선 곳이 되어버리면, 내가 안전할 수 있는 경계는 촛불빛이 닿는 곳까지만이었다.
나는 그 낯선 어둠이 주는 두근거림과, 둥그스름한 촛불빛이 주는 아늑함이 동시에 좋았다. 전기가 끊어졌을 때의 불편함 같은 건, 훨씬 나이가 들어서야 깨달을 일이었다. 문득 심심해지면, 저녁이 다가올수록 정전이 되면 좋겠다, 고 중얼거리는 횟수도 늘어났다.
초를 생각하면 자연스레 육각일지 팔각일지 하여튼 커다란 성냥곽이 떠오른다. 축하할 일은 아니었겠지만 어쨌든 초와 성냥이 나오는 날은 특별한 날이었다. 여전히 생일엔 불을 붙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같은 맥락일지도. 성냥을 켜는 건 어른의 일, 숙련된 기술이 필요한 일, 불을 다루는 위험한 일이라고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성냥을 긋는 건 언제봐도 조금은 엄숙하고, 조금은 신기하고, 조금은 떨리는 일이다.
전깃불과 달리 촛불은 어둠과 대등해질 수 있게 한다. 전깃불은 밤을 대낮같이 밝혀버리는 치사한 구석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둠에게 조금의 틈도 내어주지 않는다. 서서히 물러날 시간도 주지 않는다. 스위치가 딸각, 하면 힘껏 어둠의 엉덩이를 걷어차버린다. 불만스레 창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는 어둠의 얼굴빛은 살짝 안쓰러울 정도.
그에 반하면 촛불의 어둠을 사르륵 부드럽게 밀어내는 몸짓, 간간이 가냘프게 떨리는 몸짓은 친절하고 상냥하다 못해 어둠을 유혹하는 듯이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어둠에 스러지지도 않으면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서로의 자리를 지키면서, 그렇게 나름의 예의를 갖춘다. 어둠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볼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촛불은 달빛과도 닮아있는 게 아닐까.
이제는 정전이 될 일도 없고, 촛불을 켤 만한 일도 그다지 없다. 오히려 초의 개수를 줄이기에 급급하다. 다 부노라면 숨이 차다며. 내 손으로 불을 붙이는 일도 심드렁해졌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성냥이 차악 스치는 소리, 화륵 불이 붙는 작디 작은 환호는 내 안의 아이가 눈 뜨게 한다. 가장 부드러운 눈길로, 저를 감싸고 있는 내 안의 어둠을 무서워하지도, 밀어내지도 않으면서 그저 그렇게 따뜻한 한 점으로 남아있다.
그런 달과 촛불 같은 아이가, 언제나 나를 지켜봐주어서, 내 안은 오늘도 그리 깜깜하지만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