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水
덥다. 몸 속이 잡다한 것들로 그득해 후덥지근하고 무겁다. 봄과 가을은, 좋은 날들은 왜 이리 짧은 걸까. 제멋대로인 춤을 추듯 몸을 아무렇게나 내팽개치며 시간도 집도 잊은 채 돌아다니고 싶다.
왜 난 여전히 공부, 시험, 과제를 생각하고 있어야 하지.
이 나이쯤 되면 거울 속 내 모습이 좋아질 줄 알았지. 꼭 그런 건 아니야.
그냥 점점 스치듯 보려 애쓰는 것 같기도.
어떨 땐 이 몸이 더없이 좋다. 비교적 하얗고 몹시 가늘고 부드럽고 말랑하고 따뜻한 구석도 있지. 멀리서 보면 전체적인 선도 괜찮다고 생각해.
하지만 종종 이 살덩이가… 한없이 무겁고 더럽고 귀찮게 느껴진다. 끊임없이 씻고 바르고 먹여주고 입히고 하지 않으면, 금세 지저분해지고 냄새나고 병들어버리는 나약해빠진 몸뚱아리가 버겁다.
부탁이건데 죽고나면 진짜로, 진심으로, 이런 매일 같은 관리는 필요로 하지 않는, 단단하고 맑고 반투명한 영혼의 형상이면 좋겠다. 지금 같은 인간의 형체를 유지할 수 없다면 좀 아쉬울 지 모르지만, 뭐 어떤가. 어찌됐건 썩지 않을 만큼 강한 것이면 된다.
간혹 벌레들이 내 몸을 파고들어가는 악몽을 꿀 때면 끔찍해서 견딜 수가 없다. 내가 그토록 허물어지기 쉬운 재질로 되어 있다는 사실이 겁나는 걸까? 그럴 때면 꼭 다짐하곤 한다. 확실히 죽은 다음엔, 내 육신은 아주 빨리, 아주 뜨거운 불에 활활 태워버리라고 해야지. 좀 이상해? 불은 되고 벌레는 안 돼서? 뭐라 한들 상관없다. 내 남은 육신은 불에게만 허락해야지. 다른 녀석이 먹어치우는 건 내가 이미 죽었더라도 치 떨리게 싫다.
그런데, 죽은 후에도 육신은 내 것일까?
어찌됐던 그 때까진, 여전히 매일 같이 거울을 보며, 어떻게든 이 살과 뼈의 조합을 (물이랑 피랑 털도 있고 여러 가지지만. 그게 골치다.) 유지하려 애써야 하는 거다.
재미있고 이상한 사실은, 나의 삶에 내 몸을 나 자신보다 사랑해주는 이가 존재한다는 것.
살덩이의 일부지만, 그것들을 좋아하며, 예쁘다고, 이건 좋은 거라고 말해줄 수 있는 이도 세상에 간혹 존재하나보다.
그런 말들에 나도 현혹되어, 거울이 좀 더 보기 편해질 때도 있다.
매일 같이 닦고 쓸면서도, 아, 이게 가치 있는 일일수도 있겠구나 싶다.
지금은 정기적으로 그 말들을 듣지 못해서, 약발이 많이 떨어졌나 보다.
싫다. 이렇게 기운 빠지면 금세 늙어버릴지도.
나 스스로라도 말해줘야 하나.
예쁘구나. 아름답구나. 귀엽구나. 착하구나. 멋지구나. 현명하구나.
아, 토할 것 같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