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은 취하고 싫은 것은 버립니다.
개인의 취향
‘개취’라는 말이 한 때 유행했다. ‘개인의 취향’이라는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각색된 드라마도 있었다. 물론 아이러니하게도 개인이 그 개인은 아니었지만. 이 드라마를 보면 처음에 여자 주인공이 남자 주인공을 게이로 오해를 해서 각종 해프닝들이 일어나는데 그 각종 해프닝들이라고 하는 것들은 성 소수자들이 보면 충분히 분개할 수도 있는, 성 소수자들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아주 잠깐 체험 정도로 체류했던 캐나다에서의 생활이 아니었다면 나는 이 내용이 뭐가 문제라는 건지 절대 공감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우리나라는 개인의 취향(성적 취향을 포함해서)을 생각만큼 그리 존중하지 않는 국가 중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이성애자이고 남자가 좋다. 하지만 동시에 게이와 레즈비언인 친구들이 있다. 그들을 보고 토하고 싶다거나 더럽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신비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그들이 환자라고는 더더욱 생각지 않는다. 동성애자도 이성애자와 똑같이 결혼을 하고 이혼을 할 권리가 있다. 무엇보다 친구 중에 한 게이 커플은 어떤 이성애자 커플보다도 행복하게 서로를 아끼며 지낸다. 난 그들을 보면서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란 무엇일까? 세상이 정의해놓은 제도와 법이란 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고민하게 된다.
나의 '개취' 중 내 인생을 관통하는 아주 큰 취향 중 첫 번째는 바로 '이성애자'라는 것이고 그 두 번째가 '무신론자'라는 것이다. 나는 신이라는 존재 자체에 대해 아무런 생각도 느낌도 없다. 하느님, 예수님, 마리아 님, 부처님, 알라신의 말씀보다는(제가 아는 신이 이 다섯 분 일 뿐, 아무런 종교적 선입견이나 편견은 없습니다.) 차라리 유튜브를 켜서 유명한 목사님, 스님의 인생 이야기를 듣는 것을 더 좋아한다. 요즘엔 목사님이든 스님이든 종교와 무관하게 인생에 대해 상담을 해주는 '평범치 않은' 종교인들이 꽤 많은 것 같다. 상전벽해, 강산이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다.
이성애자와 무신론자가 나의 큰 줄기라면은 그 줄기를 살찌우는 나의 세 번째 '개취'는 바로 '혼자 산다는 것'이다. 요즘이야 혼자 사는 '1인 가구'가 셀 수 없이 많아서 딱히 내세울 만 취향은 아니지만, 내가 처음 혼삶을 시작한 10여 년 전에는 확실히 '혼자 산다'는 말보다 '자취'라는 말이 더 유행하긴 했었다. 자취나 혼삶이나 거기서 거기이긴 하지만. 어쨌든 이성애자와 무신론자 그리고 혼자 사는 이 세 가지의 개인적 취향은 생각보다 내 삶에 많은 영향을 끼쳤고 또 끼치고 있다. 아무리 좋아하는 동성 친구여도 친구 이상은 될 수 없었고(캐나다에서 생활했을 때 동성에게 몇 번 고백을 받은 적이 있다.), 영어 공부를 하러 다녔던 캐나다 토론토의 한인 교회에서는 ' 하얀 옷을 입고 물에 빠지는 사람 무리들'을 목격하고, 그것이 신성하기보다 살 떨리게 싫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으며, 고정 지출을 줄이고자 룸메이트 3명과 함께 생활했던 (그중 한 여자아이는 밤마다 남자 친구를 데리고 왔었다.) 영앤블루어 근처의 낡은 아파트에서의 경험은 나를 혼삶의 세계로 아주 빠르게 인도했다.
이렇게 삶은 계속해서 버리고 또 동시에 또 다른 것을 취하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기차놀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부터 나는 남과 비교하는 것을 비교적 빨리 포기하게 되었고, 그와 동시에 예스만 남발했던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서 벗어났으며, 확실한 취향이 있는 그렇지만 조금은 이상한 한국 여자로 자리 잡게 되었다. 지금도 회사에서는 나보다 다섯 살 어린 똑 부러진 타이완 출신의 사수가 매일같이 나를 이상한 여자 취급을 하고 있으며, 일본 치바 출신의 나와 동갑내기의 또 다른 동료 한 명은 '너는 분명히 이상한 한국 사람이긴 한데, 근데 또 한국 사람이 아닌 것 같아'라고 평가를 해주고 있다.
좋아하는 것을 더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과감히 버릴 수 있는 용기가 우리는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