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터러시 멘토 Oct 28. 2022

공감에서 추론까지 : 디지털 시대의 문해력

깊이 읽기의 힘_ 추리 소설에서 지식책으로

이번에는 스무고개 탐정이 마술사의 얼굴을 똑바로 보면서 말했다.

“역시, 넌 마술사로서는 재능이 있지만 탐정으로서는 영 엉망이구나. 전혀 핵심을 못 잡고 있어.”

마술사는 그런 말을 들어도 하나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마술사로서는 재능이 있다고? 하긴 그건 사실이잖아. 별것도 아닌 말인데 괜히 기분이 상쾌해지는걸.

그래서인지 마술사는 기분이 나빠 보이는 스무고개 탐정을 교실까지 친절하게 배웅할 마음이 들었다.

반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술사는 스무고개 탐정이 플라스틱 조각을 보고 나서 한 행동을 곱씹어 생각했다. 

고작 플라스틱 조각인데 뭘 그렇게 기분 나빠하는 걸까?

마술사도 스무고개 탐정이 처음 그 조각을 보고 놀란 이유가 단순히 문양이와 명규의 싸움 때문이 아니라는 것쯤은 이미 간파하고 있었다. 마술사가 추측하기에 분명 다른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스무고개 탐정의 말대로 마술사가 탐정에는 재능이 없는 탓인지 그 이유까지 알 수는 없었다.     


허교범, <스무고개 탐정 2 고양이 습격 사건>          



스무고개 탐정이 고개를 끄덕이고 이어서 설명했다.

“성진이와 민수 중에서 누가 정보를 흘렸는지 확인하기는 쉽지 않았어. 당연히 성진이가 더 의심스러웠지. 민수는 옛날부터 우리와 함께 하고 싶어서 안달인 녀석이었거든. 성진이는 갑자기 그 모임을 배신하려고 하는데 그 이유가 확실하지 않았어. 그래서 나랑 문양이는 처음부터 성진이를 완전히 믿지 않았지. 그러다가 병호가 너한테 지고 나서 민수는 병호의 동료 역할을 그만두었어. 너무 무섭고 겁이 난다면서.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나랑 대결이 시작되는데 이 중요한 순간에 민수가 빠졌다면 민수는 처음부터 네가 보낸 배신자가 아닌 확률이 더 높아지지.”     


허교범, <스무고개 탐정 12 독버섯과 박쥐>          



추리소설은 어른들에게도 그렇겠지만 아이들에겐 꽤나 인기 있는 장르입니다. 어린이 심사위원들이 뽑은 유명한 문학공모전에서 첫 번째 대상을 받은 <스무고개 탐정>은 어린이 독자들의 호응을 받아 7년에 걸쳐 12권까지 시리즈로 출판된 베스트셀러 추리소설입니다. 부모 세대들도 어린 시절 <셜록 홈즈>나 <괴도 루팡>을 읽으며 심장이 쫄깃해 본 기억이 있을 겁니다. 다른 소설들을 즐겨 읽지 않던 어른들도 어린 시절 한 번쯤 추리 소설에 빠져 본 경험이 있습니다. 추리 소설은 장르의 특성상 사건 전개가 가장 중요해서 호흡이 빠르고, 사건을 해결하기까지의 긴장감이 넘쳐 읽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또 집중하고 있던 사건이 스르르 해결되면서 카타르시스도 느낍니다. 그러니 좋은 추리 소설은 독서하는 즐거움도, 몰입의 체험도 안겨주는 셈입니다. 

     

'책 읽는 뇌'는 인류가 '후천적으로' 획득한 성취임을 변증한 <책 읽는 뇌>의 저자 메리언 울프 교수는 <다시, 책으로>를 통해 디지털 시대로 급변하는 현재, 책 읽는 뇌의 읽기 회로가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지를 탐색하고 있습니다. 그는 책에서 현재 위기에 처한 ‘깊이 읽기’가 우리 뇌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연구한 많은 신경과학자들, 팀들의 연구 결과를 제시합니다. ‘책 읽는 뇌’의 비밀을 알면 알수록 지금 우리에게, 아니 우리보다는 우리 다음세대에게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듭니다. 그 중심에 공감이 있습니다.    

 

인지신경과학 분야의 연구에 따르면 인지적, 사회적, 감정적 과정이 복합적으로 뒤섞이는 것, 즉 타인의 관점을 취하는 것은 읽기 회로에 '생각보다 더' 풍부한 흔적을 남깁니다. 가령 책을 읽을 때 주인공의 행위, ‘어디론가 몸을 날리고’, ‘계단을 뛰어 오르고’, ‘구덩이에 빠지고’ 하는 대목을 읽을 때 독자에게는 다리와 몸통을 움직일 때와 같은 뉴런이 활성화됩니다. 독자가 인물의 기쁨과 슬픔, 좌절감에 공감할 때에는 인물의 감정을 근육의 움직임으로 실연하는 과정에서 독자의 뇌도 아주 많은 부분이 활성화됩니다.      


한 편의 소설을 ‘집중해서’ 읽을 때 등장인물들의 느낌과 행동에 관련된 뇌 영역이 활성화되는 데, 이 때 재미로 읽느냐, 집중해서 읽느냐에 따라 독자들의 뇌가 활성화되는 영역이 달라집니다. 촉감에 관한 은유적인 표현을 읽을 때 촉각을 담당하는 영역의 신경망인 감각 피질이 활성화되고, 움직임에 관한 글을 읽을 때는 운동 뉴런이 활성화되는 식입니다. 이 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따라하리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했을 사람까지도 책 읽는 뇌는 적극적으로 다른 사람의 의식을 그대로 따라합니다. 이런 시뮬레이션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의 읽기 회로망은 정교해집니다.      


그러나 문학적 공감과 관련이 없어 보이는 깊이 읽기도 있습니다. 지식책들은 거울 뉴런을 활용한 공감이 아니라 유비적 사고와 추론적 사유가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선 자신이 이미 소유한 배경적 지식이 십분 활용됩니다. 갈수록 복잡한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알면 알수록 더 많은 유추를 할 수 있고, 그런 유추를 사용해서 추론, 연역, 분석하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좋은 추리 소설은 지식책처럼 이런 유비적 사고와 추론적 사유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그리고 더 좋은 추리 소설은 공감과 타인의 관점을 취하는 거울 뉴런과 유추와 추론의 혼성적인 방법을 다 활용하게 만듭니다.     


이처럼 '사고'의 과정과 '느낌'의 과정이 연결된다면 우리의 ‘책 읽는 뇌’는 가장 수준 높은 일을 해냅니다. 그리고 유추의 과정, 추론의 과정, 공감의 과정, 배경 지식의 처리 과정 사이의 연결을 꾸준히 강화하면, 읽기의 차원뿐만 아니라 읽기 외의 많은 다른 차원에서 유리해집니다. 삶 전반에 영향을 끼칩니다. 메리언 울프는 읽기를 통해 이런 과정들을 연결하는 법을 계속 배운다면 이는 삶에도 적용되어 자신의 동기와 의도를 확실히 구분할 줄 알게 되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느낌도 더욱 명민하고 지혜롭게 이해하게 됨으로, 공감은 연민도 강화시키지만 전략적 사고에도 엄청난 도움이 된다고 말합니다.  

  

다시 추리소설로 돌아가 봅시다. 좋은 추리소설을 깊이 읽는 것은 타인의 관점을 취하는 놀라운 일을 해낼 뿐 아니라, 배경 지식을 활용하는 유비적 사고, 추론적 사유도 훈련합니다. 공감에서 추론까지 뇌의 많은 부분을 넘나들며 문학에서 지식책으로, 지식책에서 문학으로 잇는 징검다리 역할을 합니다. 정교해진 책 읽는 뇌는 더 많은 지식에 열려 있게 되고, 자신과 타인의 '사고'와 '느낌'을 지혜롭게 이해하게 되면서 자신의 삶을 지혜롭게 가꾸어 나가게 됩니다. 이쯤 되면 깊이 읽을 수 있는 <셜록 홈즈>나 <괴도 루팡>을 다시 펼쳐 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또 아이들에게는 풍부한 추리 소설의 세계를 소개해야겠습니다.                                   

이전 14화 카타르시스 : ‘나’를 일구어가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