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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 HAN Aug 09. 2021

삶은 언제나 슬픔일 수도 있지만,

김금희,「마지막 이기성」,『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창비, 2021

그(깃짱), 가네다 유키코(유실), 도쿄, 재일한국인, 유학생, 가스토(가스등), 배추밭


 예전에 마틴 게이퍼드가 쓴 『데이비드 호크니와의 대화 - 다시, 그림이다』라는 책을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호크니의 생애와 예술관에 대한 인터뷰를 엮은 책인데,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사진과 회화(drawing)에 대한 호크니의 생각이었다. 그가 말하는 사진과 회화의 결정적인 차이는 '층(layer)'이다. 화가가 물감이나 재료를 덧칠하는 행위는 단순히 물리적인 층을 쌓는 것이 아니라 대상에 대한 복합적인 관점과 감정을 쌓는 행위라는 것이다. 그런 행위를 통해 회화는 어느 순간 일말의 진실을 드러내는데, 이는 어떤 사건의 진실이라던가 회화만이 포착할 수 있는 세계의 진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는 하나의 관점으로는 결코 파악할 수 없는 복합적인 덩어리라는 점을 회화가 보여준다는 의미에서의 '일말의 진실'이다. 한 사람의 내면에도 수십가지 시선이 존재하는데 하물며 세계에는 수만가지의 시선과 경험이 존재할 것이 아닌가. 그럼에도 사람들은 세계를 파악할 수 있다고 언제나 굳게 믿고 있으며, 사진이 그러한 믿음을 지탱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 호크니의 생각이다.


"화가는 단순히 캔버스나 종이에 점점 더 많은 물감을 덧칠하는 것이 아니다. 참신한 생각과 관찰을 계속하면서 각각의 생각과 관찰을 통해 이전의 것들을 조정해나가는 것이다. … 생각해보면 인간의 많은 경험은 층 쌓기이다. 층 위에 또 하나의 층을 쌓는 것처럼 우리는 과거와 비교하면서 현재를 이해하고 그 이후로 더 많은 층을 더해가며 현재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그에 따라서 우리의 관점은 변해간다." (마틴 게이퍼드, 『다시 그림이다 - 데이비드 호크니와의 대화』, 주은정 역, 디자인하우스, 2012, p.115)


 김금희의 단편 「마지막 이기성」을 읽고 왜 사진과 회화의 차이에 대한 이 이야기가 떠올랐을까. 소설 속 인물인 유키코가 미학도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아마 소설에서 다루는 '투쟁과 예술'의 대비가 '사진과 회화'의 대비와 유사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유키코가 깃짱이라고 부르는 '그'는 초청 장학생으로 도쿄에서 유학생활을 한 적이 있고, 현재는 모 기업에서 운영하는 문화재단에 다니고 있다. 그가 갑자기 출장 일정을 만들어 도쿄로 가게 된 것은 유키코로부터 '배추밭'이 곧 없어진다는 메시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유키코는 재일한국인이며, '유실'이라는 한국 이름을 가지고 있다.) 그가 다녔던 대학 인문동 앞 공터에 유키코가 일궜던 배추밭은 차별에 대한 투쟁의 상징적 공간으로 인식되어왔다.

 사건의 발단은 다음과 같다. 수업 답사를 마치고 오사카에서 돌아오던 날, 기차가 출발하기 직전에 플랫폼에 도착한 그는 조교로부터 5번 칸을 타면 된다는 말을 듣고 기차에 올랐다. 그런데 5번 칸은 도쿄가 아닌 전혀 생뚱맞은 도시로 향하는 칸이었던 것이다. 낯선 지역에서 고생한 그는 수치심과 분노를 느끼며 해당 수업의 교수와 대학 측에 항의했으나, 오히려 한국 유학생이 조교를 모함한다는 누명을 뒤집어쓰고 만다. 그는 '한마음'이라는 한국 유학생 친목 동아리 회원들과 함께 인종차별에 대한 항의 시위를 하기로 결심한다. 시위가 격렬해지면서 점차 학교 내 커뮤니티와 언론의 관심도 끌게 되었다. 그러나 처음에 시위에 함께 참여했던 유키코는 이런 식의 방식에 반대하며 더는 시위에 나오지 않았다.


"지금 네가 이렇게 문제를 키우는 건 우리를 위험으로 모는 거야. 너는 유학생활이 끝나면 한국으로 돌아가겠지만 우리는 아니야. 우리는 여기서 살아야 해." (「마지막 이기성」, p.116)


 유키코가 돌연 삽과 배추모종을 들고 나타난 건, 새학기가 시작되고 시위에 대한 관심과 열의가 식었을 무렵, 그 혼자 외로이 피켓을 들고 버티고 있을 때였다. 유키코는 인문대 앞 공터에 쪼그려 앉아 곡괭이로 땅을 갈기 시작했다. 황당함을 느낀 그가 뭐 하는 거냐고 묻자, 유키코는 대답한다. "문제를 해결 중이야."(p.118)

 그렇게 빈 공터에 쪼그려 앉아 땅을 일구고 그곳에 배추 모종을 심는 행위는 뜻밖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데, 아무런 투쟁의 구호나 외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건 명백히 투쟁의 현장으로 비춰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관심없던 사람들의 마음에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현장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곳을 망치는 행위는 사람들에게 무자비한 행위로 인식되었고, 배추밭은 곧 투쟁과 평화라는 모순되는 가치가 뒤섞인 장소가 되었다.

 유키코가 배추밭을 일구면서 사람들의 마음에 심은 건 무엇일까? 배추밭을 일구는 행위는 그들의 투쟁이 파괴가 아닌 생성을 지향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일뿐만 아니라 누구나 인식하고 있는 생명에 대한 가치를 환기시키는 행위이기도 하다. 결국 배추밭은 삶의 터전, 배추는 그 터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은유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유키코의 배추밭은 예술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예술은 언제나 마지막에 가서는 그럼에도 포기될 수 없는 것에 대해 말하곤 하니까 말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접근 방식이 있다. 때로는 도덕적인 해결 방법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그다지 유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만큼 이해관계는 다양하고, 세상은 복잡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양한 관점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해답은 가까운 데 있을 수 있다. 물론 모든 사실과 부당함과 인과관계 속에 자리잡고 있는 애매하고 형태가 불분명한 그런 것이긴 하지만. 생각보다 멀리 돌아가야 하는 길일 수도 있고, 세대가 변해도 여전히 모호한 안개 같은 것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보다 더 부정하기 어려운 문제제기가 있을 수 있을까.


"아니, 미적으로 문제가 있습니다."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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