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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 HAN Sep 24. 2021

당신을 이해하는 일이란 늘 당신보다 늦고

백수린, 「폭설」,『여름의 빌라』, 문학동네, 2020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건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하게 되는 일이기도 하다. 이론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적으로 이해할 때 상대가 느끼는 복잡한 감정의 층위가 나에게 와닿게 되고, 그건 어떻게 보면 일방향적이 것이 아니라 경험적 공감‧감정적 접속이 나와 상대방 상호 간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해하는 행위를 통해서 오히려 나 자신이 이해받았다는 감각을 느낄 수 있고, 자각하지 못했던 부분에서 스스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해한다는 건 결국 사랑의 한 형태이지 않을까? 스스로를 이해한다는 건 나 자신을, 나의 삶을 조금은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과 같다.

 다시 꺼내본 백수린의 「폭설」이라는 단편은 '그녀'가 열 살 때 이혼하고 미국으로 간 엄마와, 어느덧 29살이 된 '그녀'가 오랜만에 재회해 로드 트립을 떠나는 이야기다. 그녀의 엄마는 이혼 가정이 드물었던 당시에 독특한 분위기를 지닌 사람이었고, 그런 엄마의 자유분방함과 주체성을 그녀도, 그녀의 아빠도 사랑했다. 하지만 행복한 어린시절은 엄마와 아빠의 이혼으로 끝나버리고 만다. 그녀의 엄마는 아빠와 같은 회사에서 3년 간 동료로 지냈던 케빈과 사랑에 빠지고 만 것이다. 미국으로 간 엄마는 그 멀고 낯선 땅에서 케빈과 재혼한다.


열두 살에 처음 미국을 방문한 이후 엄마는 한결같이 원한다면 언제든 함께 미국에서 살 수 있다고 그녀에게 말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삶을 선택하며 사는 거야." 그녀의 입에 묻은 크림을 닦아주거나, 어깨에 다정히 팔을 두르면서. (p.125)


 그녀는 여름방학 때마다 미국으로 가 엄마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시기, 사춘기를 거치면서 한국에서의 엄마의 빈자리를 더욱 크게 느낀다. 신체의 급격한 변화를 겪을 때도, 처음 생리를 시작했을 때도 그녀에게 필요한 건 '엄마'였기 때문이다. 결국 "세상의 모든 엄마들과 달리 엄마는 자식보다 자신을 더 사랑한다는 것이 그녀에게 명확"(p.125)한 것처럼 느껴진 이후로 그녀는 더 이상 미국에 가지 않게 되었다.

 이십 대가 된 이후 그녀는 계단 위에서 굴러떨어질 것 같은 두려움을 자주 느낄 정도로 불안한 시기를 보낸다. 스물아홉이 된 그녀는 연애에 실패하고, 여자라는 이유로 동기 중 유일하게 계약해지 통보를 받으면서 조금도 나아지지 않은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다소 충동적으로 엄마에게 여행을 제안했던 것이다.


그녀가 그런 제안을 한 것은 어쩌면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고 생각되는 자신의 삶을 조금이라도 고쳐보고 싶은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아니면, 엄마에게 위로가 받고 싶었거나. (p.127)


 미국의 넓은 땅을 달리면서 오랜 시간 차 안에서 단둘이 보내야 하는 시간에 대한 걱정 반 설렘 반으로 시작된 여행은 별탈 없이 흘러간다. 다만, 엄마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위로를 받고 싶었던 그녀의 욕구만이 충족되지 못한 채 속에서 팽창되고 있을 뿐이다. 중간에 갑작스러운 기후 변화로 폭설이 내리면서 차가 도로에 꼼짝없이 갇히게 되자, 무거운 공기를 풀어보려는 듯 엄마는 너는 왜 연애를 하지 않냐는 말을 장난스럽게 던지는데, 그 말이 그녀의 눌러왔던 설움과 화를 터뜨리는 기제가 된다. "그녀는 엄마에게 제대로 사랑을 받지도 못한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긴 했겠느냐고 말하기 시작했다.(p.135)" 그러나 그런 그녀의 울분을 받아내면서 그녀의 엄마는 어떤 변명도, 사과도 하지 않은 채 침묵을 유지한다.


만약 엄마가 화를 냈다면, 변명을 했다면, 평소에 늘 그러듯 엄마라고 해서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당당한 얼굴로 말했다면, … 그렇지만 그 순간 엄마는 그냥 앉아 있었다. 아랫입술을 문 채 유리 파편 같은 눈송이가 황량한 도로 위에서 소용돌이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눈을 깜빡이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p.136)


 그녀의 엄마는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선택한 것에 대한 후회도 할 수 없고, 그렇다고 그녀를 사랑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 그녀는 엄마에게 평생의 부채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사랑을 포기하고 한국에 남아 그녀의 아빠와 계속 살았더라면 엄마는 그녀와 그녀의 아빠를, 그리고 그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원망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어느 쪽에도 진심이 아닌 적이 없었을 테지만, 그것은 양자택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을 테지만, 엄마는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변명하지 않았다. 침묵은 엄마 스스로 자신이 선택한 삶의 무게를 알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녀는 가끔 생각했다. 그녀가 엿봤던, 그날 밤의 그녀보다 겨우 네댓 살 더 많았을 뿐이었던 엄마의 얼굴, 사랑에 빠져버린 그 여자의 얼굴이 실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에 대해서 말했더라면. 하지만 그 밤 그녀는 끝내 그런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p.137-8)


 엄마의 선택은 사춘기 소녀였던 그녀의 입장에서 볼 때 이기적인 선택이었겠지만, 엄마의 입장에서 그 선택은 역설적으로 자신이 사랑하는 이들을 지킬 수 있는 최선이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덧 당시 엄마의 나이와 비슷한 나이대가 된 그녀 역시 그런 엄마의 선택을 이해하고 있다. 어쩌면 스스로 인지한 것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이해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가 온전히 엄마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된 순간은, 폭설이 내리던 그날 밤으로부터 조금 더 시간이 흐른 뒤다. 오랜 진통 끝에 아이를 낳던 순간에, 그녀는 불현듯 자신의 상처와 불안을 감당할 수 없어서 차마 받아들이지 못했던 엄마의 가장 아름다웠던 모습을 인정하게 된다. 자신이 엄마가 된 이후에, 자신이 사랑해야 할 대상이 태어난 이후에야 그녀는 비로소 엄마를 온전히 이해하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사랑해야 할 것은 자기 자신의 인생이라는 것을, 그것이 사랑의 토대가 되어준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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