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을 통과한 문장
나는 밝은 글을 믿지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환하게 밝혀진 문장은 읽는 순간은 편할지 몰라도, 눈을 돌리면 금세 사라진다. 빛만으로 이루어진 글은 그림자를 허락하지 않고, 그림자가 없는 문장은 머물 자리를 만들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어둠이 남아 있는 글을 붙잡는다. 이해되지 않는 구석이 있고, 설명되지 않은 여백이 있으며, 한 번에 읽히지 않는 문장들. 그런 글만이 시간을 건너 다시 나를 불러낸다.
어둠은 흔히 결핍으로 오해된다. 말하지 못한 것, 드러나지 않은 것, 미완의 상태. 그러나 글에서의 어둠은 비워진 자리가 아니라 남겨둔 숨이다. 모든 것을 밝혀버리지 않겠다는 선택, 독자의 눈이 스스로 적응하길 기다리는 태도다. 방에 불을 켜는 대신 커튼을 조금 걷는 일처럼, 어둠은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그 느린 드러남 속에서 문장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경험이 된다.
밝음은 도착이 아니라 통과의 결과여야 한다. 아무런 저항 없이 주어진 빛은 감탄을 부르지만, 기억을 남기지는 않는다. 반면 오래 헤맨 끝에 만난 밝음은 작아도 단단하다. 그것은 희망이라는 단어보다 정확하고, 위로라는 말보다 오래간다. 글 속의 밝음도 마찬가지다. 어둠을 지나오지 않은 문장은 빛을 흉내 낼뿐, 스스로 빛나지 못한다.
난해하다는 말은 종종 글을 밀어내는 방패처럼 쓰인다. 이해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감정을 건너뛰었다는 이유로. 하지만 난해함은 복잡함이 아니라 솔직함에서 비롯된다. 쉽게 말할 수 없는 것을 쉽게 말하지 않겠다는 고집, 설명으로 감정을 단순화하지 않겠다는 결심. 그런 문장은 자연스럽게 비틀리고 생략된다. 그 생략은 독자를 배제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각자의 경험이 들어올 자리를 남겨두기 위한 배려다.
나는 늘 이해받는 문장보다 오해받는 문장을 더 오래 붙잡고 살아왔다. 명확하게 말했는데도 통하지 않는 순간들, 설명을 덧붙일수록 더 멀어지는 감정들. 그때마다 나는 알게 됐다. 말이 부족한 게 아니라, 감정이 깊은 거라는 걸. 깊은 감정은 얕은 언어로 옮겨지지 않는다. 그래서 글은 때로 어두워지고, 시처럼 흐릿해진다. 그 흐릿함 속에서만 살아남는 진실이 있다.
에세이가 시에 가까워질수록 나는 일부러 말을 덜 한다. 이유를 삭제하고, 결론을 늦추고, 정답을 남기지 않는다. 그 대신 감정이 지나간 흔적만 놓아둔다. 눌린 자국, 식지 않은 온기, 아직 마르지 않은 그림자. 독자는 그 흔적을 따라 자신의 시간을 겹쳐본다. 그 순간 글은 더 이상 나만의 것이 아니라, 각자의 것이 된다.
밝은 문장은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이미 답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두운 문장은 질문을 남긴다. 왜 이 말은 여기서 멈췄을까, 왜 이 감정은 끝까지 설명되지 않았을까. 그 질문이 독자를 다시 글로 데려온다. 밤에 불을 끄고 누웠을 때, 너무 밝은 낮에 문득 그림자를 찾게 될 때. 글은 그렇게 뒤늦게 작동한다.
삶 역시 명확하지 않아서 견딜 수 있다. 모든 날이 설명 가능하다면 우리는 하루를 버텨낼 이유를 잃는다. 이해되지 않는 감정, 이유 없는 침묵, 목적 없는 기다림. 그런 시간들이 쌓여 인생의 밀도를 만든다. 글은 그 밀도를 닮아야 한다. 한 번에 읽히지 않아도 괜찮은 문장, 시간이 지나서야 제 빛을 찾는 글. 그것이 내가 믿는 글의 형태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쓸 때 끝까지 불을 켜지 않는다. 한쪽은 늘 어둡게 남겨둔다. 읽는 사람이 자신의 어둠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그 위에 각자의 빛을 얹을 수 있도록. 같은 문장이 서로 다른 얼굴을 갖게 되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난해함은 그 다양성을 허락하는 가장 정직한 방식이다.
어두운 글은 친절하지 않다. 대신 오래간다. 밝은 글은 다정하지만 쉽게 잊힌다. 나는 잊히지 않는 쪽을 택한다. 설명되지 않아도 남는 말, 이해되지 않아도 마음에 걸리는 문장. 어둠을 통과해 도착한 밝음만이 진짜 빛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쓰고 싶은 것은 정답이 아니라 잔상이다. 눈을 감아도 남아 있는 형상, 시간이 지나도 흐려지지 않는 느낌. 어둠 속에서 태어나, 밝음 속에서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것. 나는 그런 글을 믿는다. 그리고 그런 글만이 끝내 사람을 다시 불러낸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