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안아주는 법
아이는 천천히 걷고 있었다.
어딘가로 가는 것도,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도 아닌,
그저 걷는 것만으로 충분한 날이었다.
바람은 아직 이른 봄의 선을 완전히 넘지 못한 채
살짝 차가웠고,
그 차가움 위로 햇살이 천천히 내려앉아
몸보다는 마음을 먼저 덥혀주고 있었다.
정자를 지나친 후, 아이는
가방 끈을 살짝 쥔 채 고개를 숙였다.
빵을 나누어 먹던 그 아이는 더 이상 거기 없었지만
그날, 나란히 앉았던 감각은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었다.
그건 너무 부드러워서,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오래가는 감정이었다.
마치 입속에서 천천히 녹는 사탕처럼.
아이는 잠시 멈춰 섰다.
주변의 소음을 가만히 듣고 있었고,
그중에서 가장 작고 조용한 소리는,
자기 가슴 안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괜찮아.’
누군가에게서 들은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건네는 말도 아니었다.
그건 그냥, 자기 안에서 스스로 말해준 첫 번째 위로였다.
예전에는 이런 생각조차 사치 같았었다.
슬픔을 느끼는 건 당연했고,
두려움은 늘 이불처럼 자신을 덮고 있었고,
그 속에서 위로라는 건
어디선가 누군가가 특별히 선물해주어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마음 깊은 곳이, 아주 살짝,
아무도 모르게 말랑해지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오래 묶여 있던 신발끈을
조금 느슨하게 풀어낸 기분이었다.
딱 맞던 것이 아니라
이제야 숨이 트이는 편안함.
아이는 근처의 오래된 벤치에 가만히 앉아
가방에서 수첩을 꺼냈다.
한참 동안 아무 글자도 쓰지 못하고
펜촉만 종이 위에 머물게 했다.
그리고 천천히,
이렇게 적었다.
> “내 마음에 부드러운 틈이 생겼다.
그 틈은 외롭지 않았다.
오히려 누군가 들어올 수 있는 여백이었다.”
수첩을 덮으며 아이는 알 수 있었다.
무언가가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크고 눈부신 변화는 아니지만
조용하고 묵묵하게,
자신 안에서부터 피어나는 감정의 씨앗 같은 것.
그것은 자신을 용서하고,
자신을 보듬고,
자신을 인정하는 데서 오는 부드러움이었다.
그날 오후, 동네 골목에 있는 작은 문구점에 들렀다.
문구점 아주머니는 아이를 처음 보는 눈치였지만
익숙한 듯 다정하게 인사했다.
“어서 와. 필요한 거 있니?”
아이의 시선은 스스로도 모르게
카운터 옆 작은 선반 위, 말랑한 젤리 곰 인형을 향했다.
노란색과 분홍색, 초록색이 섞인 작은 인형 하나가
기대하듯 바라보고 있었다.
“저거… 만져봐도 돼요?”
“물론이지. 말랑말랑해서 인기 좋아.”
아이는 조심스럽게 곰 인형을 손에 쥐었다.
정말 부드러웠다.
꼭 쥐면, 안쪽까지 손가락이 닿는 것 같고
풀어지면 천천히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마치… 자신의 마음 같았다.
부서지지 않지만 단단하지도 않고,
형태는 유지하면서도 부드럽게 흔들릴 수 있는 감정.
그게 바로 지금의 자기였다.
“이거, 살래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이는
종이봉투에 든 곰 인형을 품에 꼭 안고 있었다.
무게도 없고, 부피도 작았지만
그 안에 담긴 것은 단순한 인형이 아니었다.
그건 스스로에게 주는 첫 번째 선물,
‘말랑해진 내 마음을 다정하게 감싸주는 존재’였다.
밤이 되었다.
불을 끄고 이불을 덮은 아이는
인형을 꼭 끌어안은 채 눈을 감았다.
예전 같으면, 눈을 감는 일이 두려웠을 것이다.
어떤 기억이 떠오를지 몰라
잠드는 게 불안하기도 했고,
꿈속에서조차 울음을 터뜨릴까 봐 겁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 밤은 조금 달랐다.
이불 안은 따뜻했고,
곰 인형은 조용히 숨 쉬듯 부드러웠으며,
마음속 깊은 곳에는
낮에 썼던 그 문장이 잔잔히 반복되고 있었다.
> “내 마음에 부드러운 틈이 생겼다.”
그리고 그 틈으로
누군가가 들어오지 않아도,
혹은 아무도 오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의 온기로
스스로를 감싸 안을 수 있는 힘.
그 힘이 생겨나고 있다는 사실이
아이를 오늘도 살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