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나의 발리, 몸과 맘에 집중하는 시간
숙소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을 눈여겨 보고 있었다. 언제든 무엇이든 기회가 되면 참여해 보고 싶었다. 잠자리에 들며 ‘내일도 일찍 일어난다면, 수영장에서 하는 7시 요가 수업에 가볼까나’ 하며 잠을 청했다.
눈을 떠보니 캄캄한 새벽 다섯 시. 이참에 5시 30분 일출 스트레칭(Sunrise Stretching)에 참여하기로 했다. 따로 신청 방법이 안내되어 있지 않아 숙소에 물어보니 바닷가 야외 레스토랑 쪽으로 오면 된단다.
캄캄한 방에서 대충 씻고 옷을 갈아입은 뒤 문을 열고 나서니 이게 웬걸, 비가 내리고 있었다. 쨍한 햇살 아래 녹음을 뽐내던 정원을 우산 쓰고 혼자 걸어가려니 어딘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너무 어둡고 조용했다. 바닷가에 다다를 때까지 직원 한 명 외에는 사람 구경을 못했더니 조금 무섭기도 하고… 대체 몇 명이나 모일지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불 꺼진 레스토랑으로 들어서니 우비를 입은 직원들이 선베드를 닦고, 쿠션을 지붕 아래로 옮기는 등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스트레칭하러 온 듯한 사람은커녕 강사도 보이질 않았다. ‘역시 돌아가야 하나’ 하던 차에 한 직원이 다가와 안내를 해준다. 오크통 비슷한 것에 종이와 펜을 올려놓더니 명단을 작성하란다. 그러는 동안 그는 무지갯빛이 일렁이는 블루투스 스피커를 연결하고(“디리링”) 수업을 시작했다. 오직 나 한 사람만을 위한 수업을…
동작을 따라 하며 왼쪽을 보면 캄캄한 바다가, 오른쪽을 보면 어제 저녁을 먹었던 식당이 보였다. 홀로 어색하게 따라 하고 있는데, 다행히도 한 서양인 커플이 합류했다. 늦어서 미안하다는 인사와 함께 그들도 바로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아마도 이 선생님이 요가 수업도 진행하지 않을까, 하는 추론을 하게 될 정도로 간단한 동작보다는 요가와 비슷한 자세가 많았다. 새벽부터, 모래가 밟히는 땅 위에서, 샌들을 신고 전사자세 같은 동작을 따라 하려니 조금 힘들었다. 내 뒤에 선 커플은 아예 신발을 벗어 던진 지 오래. 땀이 송골송골 나기 시작하고, 주위는 조금씩 조금씩 밝아졌다. 왼쪽을 볼 때마다 점점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약 45분 간의 스트레칭을 개운하게 마치고, 일출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 우산을 쓰고 바닷가로 향했다.
천국이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은, 이 고요하고, 넓고, 잔잔하고, 아름다운 바다를 나 혼자만 봐야 한다니! 여행 3일 차에 고장 나버린 휴대폰 카메라가 원망스러운 순간이었다. 이 천상의 일출을 아이와 남편에게도 보여주고 싶은데. 시시각각 바뀌는 아름다운 색감을 혹시라도 담아볼 수 있을까 줌 인/아웃을 해가며 난리를 쳐보다가 결국 포기했다.
그렇게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바닷가를 좀 더 산책하기로 했다. 이미 많은 사람이 보슬보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조깅을, 산책을 하고 있었다. 현지인도 많을 테지만, 여행지에 운동화를 챙겨와 새벽부터 조깅하는 여행자들은 정말 멋진 것 같다. 혼자 혹은 둘이서 땀을 흘리며 건강하게 아침을 맞이하는 사람들을 보니, 나도 언젠가 낯선 곳에서 아침 조깅을 해보겠다는 로망이 하나 더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