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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 기록자 Jun 26. 2017

도서관에서 마주한 우연

그리고 편지

그 책을 빌리려던 건 아니었다. 공감과 호기심을 자아내는 제목에 끌려 펼쳐봤으나 확 끌리는 무언가가 없었다. 마지막 장에 끼워져 있는 그 카드를 보기 전까지는. 깨알 같은 글씨로 빼곡한 카드(를 가장한 편지)를 쓱 훑어보고는 누가 볼까 싶어 재빨리 책을 덮었다. 두근두근. 무슨 죄를 짓는 것도 아닌데. 결국 그 책을 빌렸다. 행여나 직원 손에서 카드가 떨어지진 않을까 조마조마하며.


집에 와서 다시 책을 열어본다. 두근두근. 누군가의 부주의(고의는 아니겠지?)로 내게 우연히 흘러든 정성을 몰래 살짝 들여다본다. 어떤 사연이 담겨있을까 궁금해하며.

직장을 그만두면서 상사에게 그간의 애로 사항과 그에 대한 투정, 저지른 실수들에 대해 사과를 표하는 내용이었다. 애교 섞인 문장에서 상사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이 전해진다. 읽어 내려가며 떠나는 이의 마음을 생각한다. 남는 이의 마음도 생각해본다. 내가 떠날 때, 떠나보낼 때의 마지막 모습은 어떠했는가를 떠올려 본다.

호기심을 충족한 뒤에는 난처함이 남는다. 직장과 직책이 명시돼 있어 그냥 내버리기엔 꺼림칙하다. 무엇보다 글쓴이가 알면 속상해할 것 같다. 주인에게 보내주면 어떨까? 카드를 잃어버린 사람의 입장을 생각한다. 잃어버린 걸까, 버린 걸까. 나라면 어떨지 생각해본다. 예뻐하던 후배가 아니(었)더라도 부러 시간을 내어 마음을 담아준 카드가 다시 돌아온다면 신기하고, 기쁠 것 같다. 하지만 그녀의 의지로 떠나보낸 카드라면, 그게 난데없이 다시 돌아온다면 조금 곤혹스럽지 않을까. 일단 반납일까지는 조금 더 맡아두기로 해본다.




빌릴 생각이 없었던 책은 생각보다 재미있었고, 다 읽은 책은 반납일이 다 되어 반납했다. 그 카드는 어쨌냐고? 무수한 가정과 상상과 고민 끝에 책과 함께 반납하기로 결정했다. 다음 대출자에게는 이 우연이 어떻게 작용할까? 그 카드를 가장한 편지는 어떻게 될까? 그렇다면 지금껏 내가 보낸 편지들은 다 어떻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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