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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워녕 Apr 06. 2021

라떼는 왜 달달하지 않아서

사장의 영역


  카페에 오시는 어르신 손님들 중에는 카페 메뉴를 낯설어하는 분들이 계신다. 


  보통 '커피 뜨거운 거'를 달라고 할 때가 많다. "아메리카노 드릴까요?"라고 물어보면 맞다고, 그걸 달라고 하신다. 시커먼 커피를 잔에 담아 드리면 손님들은 (많은 경우) 설탕을 달라고 하신다. 

 

  어르신 손님들에게 커피는 '뜨거운 커피', '우유 넣은 커피', '달달한 커피'로 분류된다. 뜨거운 커피는 아메리카노고, 우유 넣은 커피는 라떼, 달달한 커피는 카라멜 마끼아또다. 한 번은 '달달한 커피'를 찾으시는 분께 '바닐라라떼'를 추천드렸더니 그분은 탁월한 선택이었다며, 그 이후로 바닐라라떼만 드신다. 다른 카페에 가서도 자신 있게 바닐라라떼를 주문한다고 자랑하셨다. 


  카페 메뉴가 조금 익숙하신 분들은 '라떼'를 달라고 하신다. '뜨거운 커피', '우유 넣은 커피', '달달한 커피' 말고, '라떼'. 그런 주문을 받으면 나는 마음을 살짝 내려놓는다. 아, 카페 메뉴에 익숙하신 분. 


  그런데 가끔 (가끔이라기에는 사실 꽤 종종) 당황스러운 상황이 펼쳐진다. "주문하신 라떼 나왔습니다~"하고 라떼를 드리면 한 모금 마신 후 아니, 자기는 라떼를 시켰다고 하시는 것이다. 내가 "네~ 라떼 맞습니다!"라고 하면, 왜 달지 않은지에 대해 물으신다. 나는 속으로 깊이 심호흡을 한 번 한 후 "달달하게 드시고 싶으신 거죠? 제가 시럽을 좀 넣어드릴게요!"라고 친절함을 영혼에서부터 끌어모아 말씀드린다. 


  아니, 대체 왜 라떼는 달달하지 않아서. 


  그런 분들이 생각보다 많아서 놀랐다. 주문을 하러 카운터 앞에 서서 "난 오늘 달달한 커피를 먹어야겠어. 뜨거운 라떼 주세요." 하는 식이다. 나는 당황스럽다. 이걸 어디부터 말씀드려야 하는지, 짧은 시간 동안 여러 문장을 머릿속으로 굴려본다. "저, 죄송한데, 라떼는 달달한 음료가 아니라서요..."라고 교육 아닌 교육을 해야 하는 건지, "달달한 거 드시고 싶으신 거면 연유라떼나 바닐라라떼는 어떠세요?"라고 더 비싼 음료를 권해야 하는 건지.


  결국 나는 이렇게 말한다. "뜨거운 라떼 드릴게요! 시럽 조금 넣어 드릴 테니까 드셔 보시고 더 달달하게 드시고 싶으시면 말씀하세요~ 더 넣어 드릴게요^^" 영끌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은 친절. (참고 <쌓는 시간, 쌓이는 시간>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알바생은 불안한 눈빛으로 나에게 묻는다. "시럽 추가 500원 받아야 되는 거 아니에요?" 나는 대답한다. "난 사장이잖아. 사장은 그러면 안돼. 근데 혹시 나 없을 때 너한테 손님이 그러면, 넌 칼같이 추가 요금 다 받아. 손님이 뭐라고 하면 '저는 직원이라서요..'라며 슬픈 톤으로 대답해드려."




  손님들 중에는 가끔 집에서 만들어온 쿠키나 혹은 다른 곳에서 사 온 빵을 여기서 커피와 함께 조금만 먹어도 되겠냐고 하는 분들이 계신다. 일단 그렇게 묻는다는 자체가 이미 그분들 나름대로 미안함을 품고 있다는 것임을 알기에, 나는 아주 유쾌하게 "네^^ 편하게 드세요^^"라며 방실방실 웃으며 대답해드린다. 


  그 모습을 보고 우리 알바생이 한숨을 푹 쉬며 물었다. 카페에 외부음식 반입 안되는거 아니냐고. 난 웃으며 대답했다. "난 사장이잖아. 사장은 너그러워야 돼. 근데 넌 그러면 안돼. 혹시라도 다른 손님들이 물어보면 안 된다고 해. 너그러운 척은 내가 다 할게." 




  커피를 리필해달라는 분들이 간혹 계신다. 자주 보는 손님인 경우에, 나는 할인된 모닝커피 가격으로만 받고 커피를 한잔 더 드리는데(그나마도 가끔은 안 받기도 하고), 그걸 보고 알바생이 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는 빵 터져서 한참 웃다가 말했다. "알지? 넌 그러지 마ㅋㅋㅋ" 


  손님이 기분 좋게 받아들일 것 같은 느낌이 확 오면, 그러니까, 손님이 부담스러워하지 않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이 오면, 나는 주섬주섬 카운터 서랍에 손을 넣어 과자나 귤을 함께 건넨다. 쿠폰 도장을 괜히 한번 더 찍어주기도 하고. 난 너그러운 사장이니까. 





  우리 카페의 저녁을 맡고 있는 이 알바생은 참 알뜰하다. 1g의 원두도 허투루 쓰지 않는다. 물을 콸콸 틀어놓고 설거지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세제는 한 방울씩 쓴다. 밤에 마감할 때는 난방기를 다 끄고 전기불도 다 끄고 (필요한 불 한 두 개만 남겨놓고) 청소를 하고 마감을 한다. 종량제 쓰레기 봉지에는 쓰레기를 꽉꽉 눌러 담고 발로 짓밟아 몸무게를 실어 힘껏 한번 더 누른 후 "한 번 더 써도 되겠는데요?"라고 한다. 사장인 나보다 더 아끼는 알바생이다. 


  그런 알바생 옆에서 내가 단골손님들에게 이것저것 퍼주면 알바생은 한숨을 내쉰다. 한 번은 진지하게 물어본 적이 있다. 남는 게 있냐고. 나는 한참 웃다가 대답했다. "남는 게 없지. 그러니까 너는 매뉴얼대로 해. 딱딱 계산하고. 안 되는 건 안된다고 하고. 근데 사장은 그러면 안돼. 사장은 퍼주는 사장이어야 해. 지금 당장이야 남는 게 없지만, 분명 이게 더 이익이야. 온 사람들이 계속 오잖아. 이건 분명 큰 이익이야. 이것처럼 큰일이 없어."






  큰 결심하고 카페에 온 듯한 어르신 두 분이 '라떼'를 달라고 하셨다. 서로 계산을 하겠다고 옥신각신하시더니, 서로 아메리카노를 달라고 하시더니, 에잇 오늘은 비싼 거 먹자면서 500원이 더 비싼 '라떼'를 달라고 하신 것이다. 라떼 두 잔을 만들면서 혹시나 싶어 "라떼 달달하게 드시나요?"하고 여쭈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맞다고 하셨다. 나는 라떼잔에 시럽을 두 번 펌프질 했다. 


  이후 한참을 즐겁게 이야기하며 라떼를 드시던 두 분은 나가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무 맛있었다고. 다른 데서 먹은 라떼는 달지 않아서 별로였는데, 여기는 라떼가 아주 제대로였다고. 자기는 앞으로 여기 라떼만 먹을 거라고. 그리고 문을 열고 나가시면서 이렇게 또 말씀하셨다. 라떼가 말이야, 이렇게 좀 달달하고 그래야지 말이야. 


  알바생은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아예 '달달한 라떼'를 메뉴판에 따로 넣는 게 어떠냐는 것이었다. 오. 솔깃한 제안이었다. 그런데 한참을 생각하다가 "안 되겠다. 그러지 말자"라고 했다. '달달한 라떼'를 정식 메뉴로 하자니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많았다. 시럽을 추가해 정식 메뉴에 넣으면 가격을 올려 받아야 하는데, 이미 기존의 라떼를 고르는 어르신들은 큰 결심하고 비싼 돈 내고 먹는다고 생각하는 분들인데, 여기에서 더 비싼 값을 받으면 그분들에게는 부담이 될 것 같았다. 


  난 말했다. 

  우리 이건 그냥 사장의 영역으로 남겨두자. 이건 서비스야. 동네에서 이 정도 서비스 없이 장사하려고 하면 안 되는 거지. 난 달달한 라떼를 드리면서 아주 그냥 너그러운 사장이 되겠어. 생색만 조금씩 내지 뭐. 아 정말, 라떼는 왜 달달하지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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