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받고 음료 만들어 손님에게 드리고 뒷정리를 하고 여유를 가지기까지는 보통 10분 정도 걸린다. 한 손님이 종류별로 10잔 이상의 음료를 한꺼번에 주문하지 않는 이상, 대부분의 주문에 필요한 시간은 약 10분이다. 즉, 손님이 10분마다 한 팀씩 들어온다면 나는 나대로 여유 있게 끊임없이 돈을 벌고, 손님은 손님대로 정성껏 만들어진 맛있는 음료를 빨리 받을 수 있는 이상적인 구조가 된다.
그런데 손님은 10분마다 오지 않는다.
10분 사이에 5팀이 들어오기도 한다. 주문을 하기 위해 줄을 서는 상황이 벌어진다. 그럴 때 들어오는 손님은 혼자 오는 손님이 아니다. 3명, 4명이 한 팀으로 들어온다. 커피 종류만 주문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꼭 그럴 때 손님은 온갖 것들을 주문한다. 스무디 같은.
주방에선 잠시 전쟁이 일어난다. 다 쓴 우유팩이 휙휙 던져지고 얼음 몇 덩이가 바닥에 구른다. 정신없이 음료를 만들고 있는데 손님은 화장실이 어디냐고 묻는다. 원래 계속 앉아있던 다른 손님은 빈 컵을 들고 카운터로 오며 작별인사를 한다. 그러는 사이 새로운 손님이 또 들어오고 또 주문을 받고...
드디어 모든 주문을 클리어(clear)하고 클리어(clear)된 주방을 보면서 한숨 돌리고 시계를 보면 20분이 지나있다. 기력이 다 빠져 하루를 끝내도 될 것 같은 기분인데, 고작 20분 지난 것이다. 영수증 기록에는, 나의 치열했던 10분이 드러난다. 49분, 50분, 53분, 55분, 58분...
세 시간 동안 손님이 안 오기도 한다. 기다리다 기다리다 지쳐 뭐라도 먹으려고 밥상을 차리면 손님이 몰려 들어온다. 세 시간 동안 안 온 손님은 꼭 그때 한꺼번에 들어와서 커피를 주문한다. 모든 상황을 클리어(clear)하고 다시 밥상 앞으로 오면 밥은 차게 식어있다.
다 식은 밥을 한 숟갈 입에 넣으면 또 그때 손님이 들어온다. 나는 입안에 넣었던 밥을 급히 휴지통에 퉤 뱉고 손님을 만난다. 내가 무슨 만찬을 먹는 것도 아니고, 주방에서 후루룩 먹는 밥이니 5분, 10분이면 먹는 밥인데도, 하필 꼭 그때 들어오는 손님들 덕분에 나는 30분이 넘도록 밥을 먹는다. 한 입 먹고 손님 받고, 한입 뱉고 손님 받고. 밥을 먹은 기분은 안 드는데 배고픈 건 사라졌으므로 뭘 먹긴 먹었나 보다 한다.
가게 안팎을 둘러보고 눈치를 보다가 '괜찮겠지' 싶은 생각에 양치질을 시작하면 역시나, 출입구에서 '딸랑' 소리가 난다. 손님이 들어온 것이다. 나는 입 안에 든 치약거품을 퉤 뱉고 급히 물을 한번 입에 머금었다 뱉어낸 후 달려 나와 "어서 오세요^^" 하고 인사를 한다. 카페 일을 하는 이 6개월 동안 마음 놓고 양치질을 한 적이 없다.
"손님이 가장 많은 시간이 언제예요?" 하고 물어오는 분들이 종종 있지만, 나는 뭐라 대답할 수가 없다. 기껏 생각해서 대답하는 건 "그때그때 달라요"다. "보통 어느 요일에 손님이 많아요?"라는 질문에도 뭐라 대답할 수가 없다. "글쎄요. 그때그때 달라서요."
어떤 날은 점심때 손님이 몰리고, 어떤 날은 저녁때 손님이 몰린다. 어떤 날은 오전에 하루에 필요한 매출이 다 나오기도 하고, 어떤 날은 마감시간이 다 되도록 하루 매출이 반밖에 안 나오기도 한다. 어떤 평일은 테이크아웃 손님만 있고, 어떤 평일은 매장 손님만 있다. 어떤 주말은 손님이 꽉꽉 들어차고, 어떤 주말은 하루 종일 매장이 휑하다.
그래서 알바생을 쓰는 시간을 정하는 것도 일종의 눈치싸움이다. 손님과의 눈치싸움.
주말에 자리를 못 찾아 그냥 나가는 손님이 있을 정도로 손님이 너무 많아 밀려드는 주문을 처리하느라 애먹었던 걸 기억하며 그다음 주말에 아침일찍부터 알바생을 불러 놓으면 하루 종일 손님이 없다. 1시간을 기다리면 아이스 아메리카노 테이크아웃 한잔 손님이 들어왔다 나갈 뿐.
그렇게 손님을 기다리다, 기껏 불러놓은 알바생과 수다만 떨어선 안 되겠다 싶어 "청소나 하자" 하고 유리창이라도 닦기 시작하면 그때 손님은 또 갑자기 몰려든다. 아, 정말, 이런 귀신같은 손님들. '나한테 왜 그러세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르지만, 그래도 웃으며 인사해야 한다. "어서 오세요^^"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다른 사장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난리도 아니었다. 알바생을 2시에 부르면 12시부터 바쁘고, 12시에 부르면 4시부터 바쁘고 12시부터 5시간 부르면 아예 손님이 없다는 생생한 증언까지...
날이면 날마다, 나는 알바생에게 묻는다. "오늘이 무슨 날이지?" 알바생은 대답한다. "그러게요."
대체 오늘이 무슨 날이길래.
대체 오늘이 무슨 날이길래 손님이 이렇게 몰리는 걸까. 대체 오늘은 또 무슨 날이길래 이렇게 손님이 하나도 없을까. 대체 오늘이 무슨 날이길래.
손님이 언제 들어올지도 알 수 없지만, 어떤 손님이 어떻게 와서 어떤 주문을 할지도 알 수 없다.
젊은 남자 손님 혼자 카페에 들어오면 대부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 주문하긴 하지만, 모든 젊은 남자 손님이 그런 건 아니다. '이분은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달라고 하시겠구나'하고 속으로 생각하고 마음 놓고 있다가 손님이 "아메리카노 8잔이랑요~"라고 입을 떼시면 나는 심장이 쿵 한다. 잠시 늘어져 있던 텐션을 급히 끌어올려야 하는 것이다. 얼음을 퍼올리고 에스프레소를 뽑고 컵 뚜껑을 닫아야 한다. 그것도 8번. 그런데 손님은 아직 주문이 끝나지 않았다. "바닐라라떼 뜨거운 거 2잔이랑 딸기 스무디 2개도 같이 주세요." 나는 주문을 받으며 텐션을 한 번 더 끌어올린다. 우유 스티밍 할 준비와 블렌더 돌릴 준비도 동시에 해야 한다.
어르신 손님들은 대부분 따뜻한 커피를 드시지만, 모든 어르신 손님이 그런 건 또 아니다. 당연히 뜨거운 아메리카노겠거니 하고 마음 놓고 있다가 "아인슈페너 4개 주세요"라는 주문을 받으면 또 급히 텐션을 끌어올려야 한다. 오늘은 무슨 날일까. 이때, 절대 당황해선 안된다. 당연히 그분들이 아인슈페너 4개를 시킬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주문을 받아내야 한다.
손님이 뭘 원할지는 알 수 없다. 뜨거운 아메리카노에 얼음 두어 개 넣어달라고 하는 건 귀여운 쪽에 속한다. 헤이즐넛라떼에 시럽을 빼 달라고 하는 손님이 있는가 하면, 카페모카에 초콜릿을 빼 달라고 하는 손님도 있다. 연유라떼에 들어가는 연유를 따로 달라는 손님도 있고, 아이스티에 얼음은 빼 달라고 하는 손님도 있다. 앉아서 조각 케익을 드시다가 한 입 남은 조각 케익을 포장해달라고 하는 손님도 있고, 조각 케익 8개를 한꺼번에 포장해가는 손님도 있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절대 당황해선 안된다.
뭔가가 부족할 때, 손님들은 꼭 그걸 찾는다. 귀신같이 그걸 찾는다. 딸기가 떨어지면 딸기 음료를 찾고, 망고가 떨어지면 망고음료를 찾는다. 대체 어떻게 알고 다들 그러시는지 모르겠다.
그저께 주문한 카스테라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데, 이른 아침부터 손님들은 하필 카스테라를 찾았다. 한두 명이 아니다. 아니, 오늘은 무슨 날이길래. 죄송하다고 죄송하다고 하고 한참이 지나자 주문한 카스테라가 도착했다. 한가득 들어와 이제 실컷 카스테라를 팔아도 되는데, 아까 그렇게 카스테라를 찾던 손님들은 다 어디 갔는지, 밤이 늦도록 카스테라는 팔리지 않고 그대로 있다.
500원짜리 동전이 1개밖에 남지 않았을 때였다. 대부분의 손님들이 카드로 계산하니까 '괜찮겠지'했는데 그때 들어온 3팀의 손님이 연달아 전부 현금으로 계산을 하셨다. 첫 번째 손님에게는 500원짜리 동전을 거스름돈으로 드렸지만, 두 번째와 세 번째 손님에게는 거스름돈을 드릴 수가 없었다. 죄송하다고 죄송하다고, 혹시 동전이 있으신지 묻고, 없으시면 또 정말 죄송하고 죄송하지만 카드로 계산해드리겠다고 땀을 뻘뻘 흘리며 양해를 구했다. 아니, 하루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현금 손님은 왜 하필 꼭 그럴 때 줄줄이 들어오는 걸까. 오늘은 또 무슨 날이길래.
이런 귀신같은 손님들 덕분에 반성의 시간을 종종 가져야 했다. 준비되지 않은 나에 대한 반성이다. '괜찮겠지'는 괜찮은 게 아니었다. 단 한 번도 그냥 넘어간 적이 없다. 뭔가가 떨어진 그날, 손님들은 귀신같이 그걸 달라고 했다. 대체할 수 있는 다른 건 없었다. "현지에서 물량 공급이 안돼서요", "택배 파업 때문에 배송이 지연되어서요"라고 말할 수 없었다. 죄송하다고 죄송하다고 하는 것 외에는 다른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준비되지 않았으므로.
그러니 늘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괜찮겠지'는 자영업의 세계에서 허용되지 않았다. 모든 준비를 완벽히 해놓고 손님이 안 오는 건 괜찮아도,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손님을 만나는 건 괜찮지 않았다.
이 대단한 일을 세상의 수많은 사장님들이 하고 계신다. 언제 어떻게 들이닥칠지 모르는 귀신같은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하느라 다들 하루 종일 긴장하며 준비하고 계신다. 어느 한 구석에 서서 대충 허겁지겁 식사를 하고 계실 것이다. 일정한 식사시간도 아니다. 오늘은 3시쯤, 내일은 5시쯤. 점심인지 저녁인지 모를(어쩌면 아침일 수도 있는) 그런 식사.
아침에 출근해서 냉장고를 보니 우유가 5팩 남아있었다. 라떼에 우유가 200ml 들어간다고 대략적으로 계산하면, 한 팩으로 5잔의 라떼를 만들 수 있다. 5팩이면 25잔의 라떼를 만들 수 있으니 (그리고 보통 80~90%의 손님은 아메리카노를 드시니까) 아직은 여유가 있는 셈이었다.
그런데 그날 아침, 모든 손님이 라떼를 주문했다. 따뜻한 라떼, 차가운 라떼, 바닐라라떼, 연유라떼, 헤이즐넛라떼, 고구마라떼, 초코라떼, 딸기라떼... 온갖 라떼가 나갔다. 아니, 오늘은 또 무슨 날이길래. 2시간도 안되어 냉장고의 우유팩은 5개에서 4개로, 3개, 2개로 줄어들더니 1개만 남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남은 1팩도 언제 다 쓸지 알 수 없었다. 아직 오지 않은 우유 아저씨는 빨리 온다고는 하는데 그 사이에 또 라떼 주문이 들어올 것만 같았다. '괜찮겠지'하고 있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나는 마트에 달려갔다. 숨을 헉헉거리며 도착한 마트는 내부 수리 중이라며 문을 닫은 상태였다. 아아, 정말이지 오늘은 대체 무슨 날일까. 다시 달려야 했다. 그보다 더 멀리 있는 마트에 도착했는데 2.3리터짜리 우유가 1+1 행사 중이었다. 유통기한이 임박한 우유였다. 어차피 오늘 다 쓸 테니 고민할 게 없었다. 나는 2.3리터짜리 우유 두 개를 양 옆구리에 끼고 다시 달리기를 시작했다. 우유는 생각보다 무거웠고, 가게로 돌아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었다.
내가 마트에 간 사이, 마지막 남았던 우유팩의 반이 라떼로 만들어져 나갔다. 내가 가져온 큼직한 우유 두 개를 본 우리 알바생은 내 팔에서 우유부터 챙겨 냉장고에 넣었다. 왜 이렇게 오래 걸리셨냐면서, 우유가 다 떨어질까 봐 조마조마했다고 했다. 나는 대답할 기력이 없었다. 곧이어 우유 아저씨가 도착했다. 주저앉아있는 나를 보고 "무슨 일 있으셨어요?"라고 했다. 이제 냉장고에는 우유가 가득 찼다. 내가 사 온 2.3리터짜리 우유 2개도 함께.
이 난리가 난 이후, 들어온 손님은 이제 다 아메리카노를 먹겠다고 하셨다. 아, 정말이지, 이 날은 무슨 날이었을까. 다른 과일음료를 주문한 손님은 있어도 라떼를 주문한 손님은 더 이상 없었다. 내가 그토록 힘들게 사온 2.3리터짜리 우유 2개는 뜯지 못한 상태로 냉장고 안에 자리했다. 그렇게 주말이 지났고, 난 유통기한이 지난 그 큰 우유를 두 개나 그냥 버렸다.
이 전쟁 같았던 우유의 날을 다시 복기해보면, 그래도 아무튼 내가 마트로 달려가 우유를 사온 건 잘한 일이었다. 아마 내가 '괜찮겠지'하고 그냥 있었으면 귀신같은 손님들은 우리 냉장고의 우유가 다 떨어지도록 라떼만 주문했을 것이다. 마지막 남은 우유를 탈탈 털어 라떼를 만들고, 그다음 라떼를 만들지 못해 "죄송하지만, 지금 우유가 다 떨어져서요"라며 다른 걸 먹으라고 권유하는 나의 모습은... 최악이었을 것이다.
결국 우유를 4.6리터나 그냥 버렸지만 그날의 결정은 잘한 결정이었고, 그날의 고생은 가치 있는 고생이었다.
냉장고에 가득 들어찬 우유를 보며 나는 배실배실 웃었다. "어떤 주문이든 받아드릴게요. 얼마든지 라떼 만들어드릴게요. 저희 우유 많습니다."하고 온 세상에 소리치고 싶었다. 자신감이었다.
오늘도 손님을 만난다. 어떤 손님이 언제 어떻게 들어와서 어떤 주문을 할지 알 수 없다. 그저 나는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럼에도 늘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난다. 별일 없기 위해 준비를 하지만, 별일 없이 지나가는 날은 거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