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녕워녕 Jun 03. 2021

오늘도 문을 열었구나

자리를 지킨다는 것


  엄청난 위로를 받은 적이 있다. 


  뉴욕에서 생활할 때였다. 매일 똑같은 일상이었다. 아침이면 출근했고 저녁이면 퇴근했다. 오늘은 어제 같았다. 내일도 오늘 같겠지 싶은 그런 날이 이어졌다. '직장을 다닌다는 건 이런 느낌이구나' 하고 날이면 날마다 실망했다. 직장 내 분위기가 수평적인 뉴욕에서도 이런데, 한국에서의 직장생활은 얼마나 더 지루할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기운차게 저벅저벅 걸어야 할 나의 아침 발걸음은, 그러나, 터덜터덜이었다. 나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 씻고 터덜터덜 출근했다. 


  출근길 버스정류장 근처에는 아주 작고 아주 오래된 베이글 가게가 있었다. 할머니 사장님은 아침에 몇 시부터 나와서 반죽을 하고 빵을 굽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버스정류장에 서 있으면 빵 냄새가 솔솔 났다. 어느 날부터 나는 매일 그곳에 들러 베이글을 샀다. 버스정류장에서 서서 맡던 그 냄새가 내 손에 들려지면 솔솔 내 몸뚱이를 타고 올라왔다.


  출근한 아침,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그 베이글을 먹었다. 단연코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할머니 사장님은 베이글을 구웠다. 나는 그 냄새가 좋았다. 베이글 하나를 사서 손에 들고 버스에 타면 그게 그렇게 좋았다. 사무실에 올라가 앉아 종이봉투를 열어 베이글을 꺼내 한 입 베어 물면 그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기록을 찾아보니, 그날들에 대한 나의 기록은 이렇다. 

 오늘도 베이글 가게는 문을 열었다. 할머니는 오늘도 베이글을 굽는다. 다음 주에도, 그다음 주에도 할머니는 베이글을 굽고 있을 것이다. 위로다. 그 어떤 힘내라는 말보다 힘이 된다. 

 오늘도 고맙습니다.




   매일(휴무일을 제외하고) 카페 문을 열었다. 가까스로 오픈 시간에 맞춰 문을 연적은 있어도, 단 한 번도 늦게 오픈하지 않았다. 


  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하는 직장인 손님들을 만난다. "7월이네요!"라고 내가 말하자 나의 첫 손님(참고 <내가 좋아하는 걸 좋아해 주시다니>)이 "네, 그렇네요. 올해가 벌써 7개월이나 되었지만 매일 똑같아요. 하루 중에 이 커피 한 잔 마실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오늘도 고맙습니다."라고 말해주셨다. 


  불현듯 뉴욕의 그 베이글 가게가 생각났다. 터덜터덜 집을 나서다가 베이글 하나를 손에 들고 출근하던 그 길, 가방을 놓고 자리에 앉아 컴퓨터 전원을 켜고 베이글을 한입 베어 물던 그 아침이 떠올랐다. 하루 중 가장 행복했던 그 시간. 고작 베이글 하나였지만, 나의 전부였던 그 베이글. 


  그 손님께 내 커피가 그랬나 보다. "매일 똑같아요"라는 말에서 나는 그분의 재미없는 직장생활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하루 중에 이 커피 한 잔 마실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라는 말에서 나는 베이글을 먹을 때의 내 모습이 생각났다. 그리고 "오늘도 고맙습니다."라는 말에서는 줄줄 울었다.




  생각해보면, 뉴욕에서의 그 베이글이 (물론 맛있긴 했지만) 사실 그렇게 소름 끼치게 맛있던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 베이글은 내 하루의 전부였다. 


  어떤 날은 허리가 아프고, 어떤 날은 무릎이 쑤시고, 어떤 날은 알 수 없는 개인적인 일로 슬픔에 사무치는 일도 있었겠지만, 그래도 할머니 사장님은 아침마다 베이글을 굽고 가게 문을 열었다. 내가 매일 아침 맡았던 베이글 냄새는, 그러니까, 할머니의 그 모든 시간과 스토리가 집약된 냄새였다. 매일 아침 같은 시간 베이글을 굽는 할머니 사장님 덕분에 나는 하루를 살았다. 


  할머니 사장님이 건네준 베이글 봉지를 손에 들고 가게 문을 나설 때면 나는 늘 항상 진심을 담아서 천천히 "Thank you!"라고 했다. 이 말을 할 때는 꼭 할머니의 눈을 보았다. 어떻게든 "제가 정말정말 진짜 진심으로 감사하답니다"하는 내 이 마음이 전해졌으면 했다. 


  매일 아침 커피를 사 가시는 나의 첫 손님은 내가 커피를 드리면 그 커피를 두 손으로 받아 들고 내 눈을 보며 또박또박 "감사합니다"라고 해주신다. 내 커피가 (물론 맛있긴 하지만) 그렇게 소름 끼치게 맛있어서 손님에게 행복을 주는 건 아닐 것이다. 나는 매번, 이 눈 마주침이 황송하다. 뉴욕의 베이글 집이 나에게 위로가 되었던 것처럼, 어쩌면, 나의 커피가 위로가 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여기에 있다. 여기에서 커피를 내리고 글을 쓴다.


  내 글을 읽는 분들은 실제의 나를 모르고, 실제로 나를 만나는 사람들은 내 글을 모른다. 부캐(또 다른 나)의 전성시대라는 요즘, '글 쓰는 나'는 나의 부캐인 셈이다. 나는 '여기 있는 사람'이고, 한편으론 '여기서 글 쓰는 사람'이다. 


  그런데, 나의 이 부캐가 원래의 '나'와 합쳐지는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대체 카페가 어디인가요?" "꼭 가보고 싶어요"라고 몇몇 분들이 연락을 주시더니, 정말 여기를 찾아오는 분들이 생긴 것이다. 


  그렇게 우리 카페에 발걸음을 하신 분들은 나를 보고 긴가민가 하신다. 아직은 나를 어리게 봐주셔서, 내가 알바생인지 사장님인지 모르겠나 보다. (아, 사실 이게, 영업하시는 분들이 가게에 오셔서 사장님을 찾을 때는 편리하기도 하다. 난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알바생인 척 하며 "사장님 잠깐 나가셨어요"라고 말하기도 하니까.) 계속 갸우뚱하며 아메리카노를 달라고 주문을 하시다가, "... 근데... 사장님... 이시죠?"라고 조심스럽게 물으시면 내 심장이 크게 쿵쿵거리기 시작한다. 아, 나를 알고 오신 분. 내가 몸을 배배 꼬며 "... 네...^^"라고 하면 "아, 작가님! 저 연락드렸던 사람이에요^^"하신다. 


  고등학교 때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 약속을 하지 않고 사람들을 만나다니. '여기 있는 사람'의 특혜다. 


  친구들도 그렇다. 이젠 내 스케줄을 묻지 않고 그냥 온다. 자기들 편한 시간에 그냥 온다. 약속을 하지 않아도 만난다. 아무튼 난 늘 여기 있기 때문이다. 난 '여기 있는 사람'이다.  




  알바생이 있으면 그냥 들어와서 주문만 하는 손님들이 나에게는 인사를 먼저 해주신다. "안녕하세요!" 내가 잠깐 나갔다 돌아오면 알바생에게 주문을 하던 손님이 나에게 꾸벅 인사를 하신다. "안녕하세요!" 나는 앞치마를 두르다 말고 "안녕하세요! 오셨어요!"하고 인사를 한다. 그러면 손님은 말한다. "어디 가셨나 했어요." 나는 어디 가면 안 되는 사람이 되었다. 


  가끔 가게 밖으로 나와 잠깐 동네를 한 바퀴 돌 때면 길에서 손님들을 마주친다. 내가 먼저 아는 척하기 전에 손님들이 "어디 가세요?"하고 묻는다. 심지어 처음 보는 분들도 날 보고 아는 척한다. "거기 그 카페 사장님이시네요! 어디 가세요?" 같은 자리에 있다 보니, 이 동네 사람들이 나를 알아본다. 나는 '거기 그 카페 사장님'이다. 




  농부들은 5월을 '깐깐오월'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일 많은 5월이라서 그렇단다. 봄이 무르익어 한 해 농사를 준비하려면 이것저것 챙기고 준비할 게 많다. 그런데다 하루 해가 길어져 더 깐깐하고 지루하다고, 이런 의미에서 깐깐오월이라고 한다.


  농부는 아니지만, 나에게도 5월은 깐깐했다. 아니, 따지고 보면 지난 1, 2, 3, 4, 5월이 깐깐했다. 아니, 나에게만 그런 것도 아닐 것이다. 아마 많은 사장님들에게 지난 몇 달은 꽤 깐깐하지 않았을까. 할 일이 많아서 지치는데, 조금 하다 끝낼 수도 없게 하루가 끝나지도 않는 것이다. 대단한 수입은커녕, 월세, 관리비만 밀리지 않아도 다행이다. "언제까지 이렇게 버텨야 하는 걸까요"라는 말을 많이 듣는 요즘이다. 


  나는 이제 겨우 몇 달 동안 이 일을 하고 있지만, 몇 년, 아니 몇십 년 동안 일하고 계시는 다른 사장님들은 어떻게 지금을 버티고 계시는지 모르겠다.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나는 5명 이상의 단체손님을 받아본 적도 없는데, 10명, 20명 이상의 단체손님을 이미 숱하게 받아보셨던 다른 연륜 있는 사장님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한 번씩 옆 가게에 가서 사장님들을 만난다. "안녕하셨어요! 오랜만에 뵙죠!! 제가 좀 더 자주 놀러 와야 하는데요."라고 하면 사장님들은 하나같이 누가 시키기라도 한 것처럼 똑같이 말씀하신다. "거기 있는 거 다 아는데요 뭐. 장사 잘하고 있으면 됐지." 


  사장님들은 이미 알고 계셨다. 거기 잘 있으면 되는 거라는 걸. 서로 얼굴 보고 끌어안고 격하게 반가워하지 않아도 그냥 그 자리에서 장사 잘하고 있으면 되는 거라는 걸. 그 자체로 인사가 되고, 위로가 되고, 힘이 된다는 걸. 


  우리 동네는 오늘도 모든 가게가 문을 열고 영업 중이다. 바로 옆 추어탕 집도, 그 옆에 김밥집도, 모퉁이 미용실도, 건너편 갈빗집도, 갈빗집 옆 만두집과 중국집도, 그 옆에 떡집도 모두 문을 열고 손님을 만나고 있다. 각 사장님들은 서로의 가게에 굳이 들어가 인사를 하며 담소를 나누진 않지만, 옆 가게의 불이 켜지고 문이 열린 걸 본다. 장사를 하고 있구나. 오늘도 문을 열었구나. 

  언제 어느 때에 옆 가게를 기웃기웃 해도 그곳에는 늘 그곳의 사장님이 계신다. 들어가서 인사를 하지도 않고, 따로 눈빛을 교환하지도 않는다. 나는 다만 창문 넘어 안에 있는 사장님이 일하는 모습을 본다. 오늘도 일을 하시는구나. 열심이시구나. 


  모두가 그 자리에서, 거기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위로다. 그 어떤 힘내라는 말보다 힘이 된다. 


  우리 카페도 그렇게 은연중에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있었다. 나는 그저 아침에 나와 가게 문을 열고 커피를 내릴 뿐이었는데, 그게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고 있었다. 오늘도 문을 열었구나. 심지어 나의 커피를 마실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손님이 계시니, 나는 또 열심히 장사를 한다. 어디 가지도 않고 여기에서 커피를 내리며 커피 냄새를 풍긴다. 


  오늘도 카페 문을 열었다. 



  +) 

  뉴욕의 그 베이글 가게 이름이 뭐였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기억해내려고 해 봐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에게 그 베이글 가게는 그냥 '그 베이글 집'이다. '할머니가 아침마다 베이글 굽는 베이글 집'. 

  우리 카페도 그랬으면 좋겠다. 우리 카페의 이름이 브랜드화되는 것도 좋지만, 그냥 '처음 봐서는 알바생인지 사장인지 모를 웬 젊은 사람이 커피를 볶기도 하고 내리기도 하는, 거기 그 카페' 정도로 기억되는 것도 좋겠다


  그거 좋네. '거기 그 카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