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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워녕 Jul 01. 2021

QR체크인이 뭐라고

상냥함이란

 

  코로나는 여러모로 사람을 귀찮게 한다.

 

  커피 주문을 받는 데는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 방문자 기록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주문내역 확인하고 결제금액 확인하면 끝이어야 하는데, 몇 마디 말을 더 해야 한다. "QR체크인 부탁드릴게요!" "일행분 모두 각각 해주셔야 합니다!" "QR체크인 어려우시면 명부 작성 부탁드릴게요!" "아니, 거긴 이름 쓰지 마시고, 사시는 동네 써주시면 됩니다!" "네네, 거기 전화번호 적어주세요." "아니, 거기 '~외 1명' 쓰시면 안 되고 각각 써주셔야 합니다!"


  나도 난리지만 손님들도 난리다. "잠깐만요.. QR이 어디 있더라.." "아휴, 또 인증을 받으라네." "아니 이거 이렇게 흔드는데 왜 안 뜨지?" "카카오톡에서 하는 건가요? 네이버에서 하는 건가요?" "그냥 명부에 작성할게요" "여기엔 이렇게 쓰면 되나요?" "다 써야 되나요?" "부장님~ 오셔서 QR체크인하셔야 한답니다!" "거기 다들 그러고 있지 말고 와서 QR체크인하시랍니다!!"


  이 난리통에 들어온 다른 손님은 눈치를 보다가 뒤에서 조용히 핸드폰을 꺼내 QR체크를 준비한다. 그런데 앞 손님이 QR 체크인하는데 너무 오래 걸리면 15초밖에 안 되는 인증 시간이 금방 끝나버려 결국 진짜 QR체크를 해야 할 때는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기도 한다.


  아, 제발, 코로나가 빨리 끝났으면.


  손님들이 QR체크인을 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생각보다 꽤 많은 정보를 얻는다. 중년 이상의 손님들 중 QR체크인을 자연스럽게 하는 분은 50~60% 정도인 것 같다. 나머지 40%~50%의 손님은 QR체크인을 할 때 어색해하거나 뿌듯해하는 모습을 보인다. 어색한 모습은 이런 모바일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까닭이고, 뿌듯한 모습은 자기 자녀와의 친밀한 관계가 드러나는 순간인 까닭이다. QR체크인이 뭐라고. 모바일 문화 없이도 여태 잘 살아왔는데 겨우 이런 데서 소외되는 느낌을 받는 분이 있는가 하면, '내 자식이 이런 것도 해준다고. 해달라고 하면 얼마나 잘해주는지 몰라. 어떤 때는 내가 해달라고 하기도 전에 알아서 척척 해준다고!' 하는 말을 온몸으로 내뿜는 분이 있다. QR체크인이 뭐라고.


  QR체크인으로 드러나는 정보는 단순히 모바일 문화에 대한 친숙도가 아니다. 가족 관계, 가족 분위기, 더 나아가 자녀와의 관계다. 그래서 어르신들 사이에서는 알게 모르게 누군가는 기세 등등해지고 누군가는 주눅이 든다.    

  중고등학교 자녀를 둔 부모라면 자녀의 성적에 따라 은근한 서열이 만들어진다면, 다 큰 자녀를 둔 어르신들은 자녀와의 친밀한 정도에 따라 은근한 서열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남자 어르신 손님 두 분이 카페에 들어오셨다.


  오랜 친구로 보이는 두 분은 뜨거운 아메리카노 두 잔을 주문하셨다. 내가 "QR체크인 부탁드릴게요^^"라고 하자 한 분은 "네!" 하며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가볍게 두어 번 흔들더니 QR체크인을 하셨다. 그런데 옆에 있는 다른 분은 펜으로 작성하는 명부는 없는지 물어보셨다. 나는 "아! 네! 여기 있습니다! QR체크인이랑 명부 작성 둘 중에 편하신 걸로 하나 해주시면 됩니다^^"라고 말씀드렸다.


  펜을 잡고 명부에 기록을 하는 모습을 이미 QR체크인을 하신 분이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냥 간단하게 QR체크하면 되는걸 뭐 그렇게 복잡하게 쓰고 그래?" 그러자 펜을 들고 전화번호를 적던 분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난 이게 좋던데."


  QR체크인을 한 분이 옆구리를 툭툭 치며 말했다. "그게 아니고, 솔직히 말해봐. 어떻게 하는지 모르는 거지? 아들한테 좀 물어보지 그랬어. 이게 훨씬 편한데 말이야." 그러자 명부 작성을 하던 분이 조용히 말했다. "... 우리 아들 바빠..."


  듣다 못해 내가 나섰다. "괜찮으시다면 제가 핸드폰 한 번 봐드려도 될까요?" 명부 작성을 하던 분은 나에게 쭈뼛쭈뼛 핸드폰을 내미셨다. 나는 카카오톡을 실행하고 인증을 한번 받고 쉐이크기능을 설정한 후 핸드폰을 돌려드렸다. "이제 잘 될 거예요~ 카카오톡 한번 누르고 몇 번 흔드시면 됩니다^^"


  새롭게 QR체크인을 할 수 있게 된 손님은 자리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몇 번이고 핸드폰을 흔드셨다. 두 분이 도란도란 대화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어떻게 이렇게 되는 거지? 이게 어떤 원리로 이렇게 되는 거야? 자넨 이거 언제부터 했어? 나한테도 진작 말 좀 해주지. 거참, 신기하네. 아들이 해준 거야? 이야, 이거 아주 편하고 좋네. 아주 좋은 세상이구만."






  우리 고모는 일흔이 넘으셨고, 인터넷 쇼핑을 즐기신다. 쿠팡에서 뭘 그렇게 사는지, 집에 맨날 택배가 온다고 고모부는 날 볼 때마다 푸념을 한다. 고모는 마트에 직접 가지 않고 핸드폰으로 필요한 것들을 주문한다. 롯데마트와 이마트, 홈플러스를 모바일로 각각 가격비교까지 해가면서 장을 본다. 최근 어떤 상품이 핫딜 상품으로 떴다며 나에게 공유해주기도 하셨다. 어떤 때 보면 나보다 더 잘 아는 것 같다. 공동구매도하시고, 영양제 같은 건 주로 해외직구로 구매한다. "이게 아마존에서는 얼마더라고"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나는 잠시 현타가 온다.

 

  가끔 다른 친구분들을 만나면, 고모처럼 그렇게 인터넷 쇼핑을 하는 분들은 거의 없다고 한다. 어떤 물건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고모가 그냥 쉽게 "그거 쿠팡에서 사면 싼데"라고 말했더니 친구분이, 글쎄, 쿠팡이 뭐냐고 했단다. 고모는 그 자리에서 핸드폰을 꺼내 쿠팡에서 그분의 집 주소로 그 물건을 주문해주었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 친구분은 고맙다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그 집 아들은 참 상냥한가 봐."


  아닌데. 그 집 아들 상냥하지 않은 거 고모도 알고 고모부도 알고 나도 아는데. 쿠팡은 고모가 혼자 어떻게 어떻게 배워서 하는 건데. 우리 고모가 그냥 잘하는 건데.


  그 집 아들은, 그러니까 나의 사촌 오빠는 자기 부모님께 상냥하지 않다. 마흔이 넘었지만 아직도 철이 덜 들었다. 밥 먹으면서도 도대체가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눈치를 보던 고모가 "간이 맞는 것 같아?"라고 조심스레 물어보면 사촌오빠는 "응, 먹을만하네"라고 짧게 대답하고 그냥 조용히 밥만 먹는다. 심지어 항상 밥도 남긴다. "배가 부르네"하면서. 그걸 보고 있는 나는 속이 터지지만, 고모는 "그래, 배부른데 억지로 먹지 마."라며 밥그릇을 치운다.


  얼마 전 고모집의 TV가 바뀌었다. 난 눈치채지 못하고 그냥 소파에 드러누워 TV를 보고 있는데 고모부가 계속 내 앞을 왔다 갔다 하며 지나다니셨다. 앉았다가 일어났다가 방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와서 앉았다가 베란다 나갔다가 들어왔다가 앉았다가 다시 방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왔다가... 너무 정신이 사나워서 "뭐 찾으세요?" 하고 물어봤더니 고모부가, 그 무뚝뚝한 고모부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TV가 커졌지?" 나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 "아! 네! 그렇네요! TV가 커졌네요! 언제 바꾸셨어요? 이거 최신형 같은데! 깨끗하고 너무 좋네요!" 그러자 고모부가 고개를 돌리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 오빠가 사준 거야."    


  TV가 커진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아들이 사줘서 좋은 거였다. 최신형의 가장 좋은 TV라서 좋은 게 아니라, 아들이 세심하게 하나하나 따져가며 사준 게 좋은 거였다. 무뚝뚝함의 끝판왕인 고모부는 하나도 상냥하지 않은 그 집 아들의 상냥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세상에.




  부모님을 호강시켜주는 다 큰 자녀들이 있다. 해외여행도 보내드리고 명품백도 사드리면서 '효도'한다. 그렇게 명품백 들고 해외여행 다녀온 부모님들은 친구분들에게 자랑을 한다.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자랑'의 포인트다.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단순히 명품백 들고 해외여행 다녀온 게 자랑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다. "우리 아들이 다 알아서 예약해놔서 얼마나 편하게 돌아다녔는지 몰라." "차에서 내리면 다음 가이드가 착착 대기하고 있더라고. 우리 딸이 그렇게 치밀해, 글쎄." "이 가방은 우리 애가 사준 거야. 여행 가서 주눅 들지 말라고." "스위스에서 우리 아이랑 영상통화를 했는데 애가 그러더라고. 아무 걱정 말고 즐겁게 있다가 오라고."  


  자녀의 꼼꼼함과 세심함, 그리고 부모님을 생각하는 마음에 대한 자랑이었다. 요약하면 "우리 애가 이렇게나 상냥하다니까!"인 것이다.   


  자녀들이 얼마나 좋은 대학에 들어갔는지, 얼마나 훌륭한 직장에 들어갔는지를 자랑하던 부모님들은 이제 자녀들의 상냥함을 자랑한다. 자녀가 상냥하면 상냥할수록 부모님들의 어깨가 펴진다.

  공부를 잘 못한 자녀들을 둔 덕분에 이렇다 할 자랑을 해본 적 없던 부모님들은, 이제, 자기 자녀들을 맘껏 자랑한다. "글쎄, 우리 애가 이렇게 상냥하다니까!" 자기 자녀가 그렇게 공부를 잘한다며 그동안 계속 자랑하던 부모님들은, 이제, 상냥한 남의 자녀를 부러워한다. "그 집 아들은 참 상냥한가 보네."


  그러니까, 부모님 기 살려주는 건 결국 상냥한 자녀들이다. 

  상냥함이란 부모님이 QR 어떻게 하는 거냐고 물어봤을 때 알려드리는 것이다. 하나도 안 상냥하게 알려주더라도, 부모님은 그걸 상냥함으로 받아들이신다. 겨우 손톱만큼의 상냥함을 한껏 포장하고 자랑하신다. 별거 아니다. 겨우 QR체크인이다. QR체크인이 뭐라고.







  결국은 상냥함이 최고라는 생각을 하는 요즘이다. 남는 건 상냥함이다. 남자든 여자든, 나이 든 사람이든 젊은 사람이든, 직장인이든 학생이든, 사장이든 손님이든, 아무튼 상냥해야 한다. 상냥한 사람이 마음에 남는다.


  가끔, 유난히 상냥한 손님이 있다. 그런 분을 만나면 정말 기분이 좋다. 나는 손님이 살짝만 웃어주셔도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수 있을 것 같은 카페 사장인데, 심지어 상냥하게 말해주시면, 그냥 그 자리에서 녹아내린다. 한 번에 몇만 원씩 쓰고 가는 손님도 좋지만,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시더라도 상냥하게 말해주는 손님이 더 좋다. 그런 손님을 만날 때마다 나는 다시 한번 생각을 굳힌다. 역시 상냥한 게 최고야.

 

  나의 상냥함도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남을까.


  남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어르신들의 핸드폰을 조심스럽게 받아 들고 QR체크인을 설정해드린다. 먼 훗날 내가 지금의 이 카페를 떠나고 난 후, 아니 어쩌면, 내가 먼저 이 세상을 떠나고 난 후, 그 후로도 한참의 시간이 흘러 내 얼굴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을 그때, '예전에 참 상냥했던 사람이 있었지. 우리 동네 카페 사장이었어.'라고 한번 떠올려주면, 나의 이 카페사장놀이는 성공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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