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녕워녕 May 04. 2021

자영업자 옆에 자영업자


  "장사는 사람이 할 짓이 못 되는 거 같아요. 이건 사람 사는 게 아니야. 월급이 쥐꼬리만 하더라도 직장생활을 해요..."


  카페 앞 떡집 사장님의 말씀이다. 새벽 3시에 출근, 저녁 7시에 마감하신다고 했다.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그나마 새벽 3시에 출근하는 거라고 하셨다. 그 전에는 새벽 1시에 출근하셨다고. 

  떼돈을 벌지도 못하지만, 만약 떼돈을 벌더라도 돈 쓸 시간이 없다고 하셨다. 한 달에 한두 번 마사지받으러 가는 게 전부라고. 그나마도 마음이 급해서 끝나자마자 얼른 가게로 돌아온다고 하셨다. 


  포장 용기값이 올랐단다. 돈가스집 사장님은 돈가스 가격을 올려야 하는지 고민이 많다. 올리긴 올려야 할 것 같은데 엄두가 안 난다고 했다. 돈가스 하나를 포장하는 데는 꽤 많은 포장용기가 필요하다. 돈가스 용기는 물론, 소스 용기, 샐러드 용기, 유산지, 비닐백, 쇼핑백도 있어야 한다. 코로나 때문에 홀 손님보다 포장 손님, 배달 손님이 훨씬 많은데, 그러면 그럴수록 포장 용기는 더 많이 필요하고 거기에 드는 비용은 점점 더 부담이 된다고 했다. 배달을 하면 배달 수수료도 어마어마한데,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다고 했다. 그렇게 '남지 않는 장사'를 하면 어떤 사람들은 리뷰 테러를 한다고 했다. 


  봄, 가을은 이사 시즌이다. 그러나 부동산에는 이사하려는 사람이 찾아오지 않는다고 했다. 겨울이 지나고 날이 풀리면 좀 나아질 줄 알았더니, 임대 계약이 끝난 사람도 없는지, 집을 보러 다니는 사람이 1도 없다고 했다. 새로운 실장도 데려다 놨었는데, 성과급이 안 나오니 한 달 만에 그만두고 다시 사장님 혼자 사무실을 지킨다고 했다. 부동산 사장님은 커피를 드실 때마다 한숨을 내쉰다. 


  카센터 사장님은 자동차 없는 카센터를 지키는 날이 많다고 했다. 사람들이 어디 다니질 않으니 차가 고장도 안 나고, 엔진오일 교환도 잘 안 한다고 했다. 렉카 사장님들도 그렇단다. 사람들이 술을 안 먹으니 사고가 안 나고, 자기들은 할 일이 없다고. (이건 좋은 것 같기도 하고.) 어쩌다 사고가 한 번 나면 세상 모든 렉카들이 그곳으로 모인다고 했다. 귀하디 귀한 사고 현장이라고 했다.


  옆집 미용실 사장님은 한동안 아침마다 우리 카페에서 라떼를 사 갔는데, 요즘 통 보이지 않아 무슨 일인가 했더니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해서요..."라는 한 마디 말로 길고 긴 이야기를 대신했다. 


  옆집 카페가 문을 닫았다. 한동안 인스타그램의 핫플레이스로 유명했었는데, 결국 권리금도 못 챙기고 원상복구하고 나갔다. 보증금에서 밀린 월세와 관리비를 깠다고 했다. 텅 빈 카페 유리창에 '임대문의'라고 비뚤게 붙여놓은 그 A4용지를 볼 때면 나는 속이 쓰리다. 그 카페의 인스타그램을 보고 멀리서 찾아온 손님들이 발길을 돌려 우리 카페에 들어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는 손님을 반기면서도 이상한 기분이 든다. 


  집 앞 분식집이 문을 닫았다. 야심 차게 인테리어하고 새로 시작한 지 6개월 만이다. 돈가스 김밥이랑 쫄면이 주력 메뉴였는데, '김밥 카페'라는 테마로 이것저것 참신한 메뉴들도 시도해보는 것 같았는데 시간은 사장님을 기다려주지 못했다. 배달어플을 이용해 배달도 시작했는데, 이것 역시 '남지 않는 장사'였다. 


  한 달 동안 재정비하고 돌아오겠다던 치킨집은 4달이 지나도록 아직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 3형제가 함께 의기투합해서 치킨을 튀기는 모습이 왠지 오순도순 좋아 보였었는데. 지난 겨울, 우리 카페에 앉아 원가 계산하고 수수료 계산하며 머리 아파했었는데. 재정비하고 돌아오면 꼭 그 집 치킨을 먹겠다며 쿠폰까지 미리 받아놨었는데, 나는 아직도 그 집 치킨을 먹지 못하고 있다. 돌아올 수 있을까.


  국밥집은 가게 특성상 점심때 손님이 몰려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를 쓰긴 써야 할 것 같은데 아르바이트비랑 주휴수당, 그 외 등등을 계산해보니 마음이 답답해졌다고 했다.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하는데 최저시급도 너무 높고, 주휴수당도 부담이 된다고 했다. 사람한테 쓰는 돈은 넉넉하게 하며 살고 싶은데, 이렇게 아까워서야 되겠냐고도 했다. 


  옆집 갈빗집 사장님은 하루 종일 고기 양념과 기름과의 전쟁이다. 집에 돌아가면 머리카락 사이사이에 고기 냄새가 배어있다고 했다. 냄새만 배면 다행이지, 온몸이 미끌미끌하다고 했다. 직원을 6~7명씩 썼었는데,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2명만 쓴다고 했다. 손님이 줄었다고 할 일이 줄어든 건 아니라고 했다. 할 일은 여전히 많다고 했다. 재료를 준비하는 일, 온 사방에 튄 기름이랑 불판 닦는 일, 쓰레기 처리는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고 했다. 다만 그때는 9~10명이 같이 하던 일을 지금은 4~5명이 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두배로 힘들다는 말이었다. 


  텅 빈 가게에 '임대 문의'라고 붙은 걸 보면 한숨이 나온다고 하자, 추어탕집 사장님은 다른 사장님들이 자기 이름으로 상가 계약했다는 소리를 들으면 한숨이 나온다고 했다. 물론 축하할 일이지만, 그렇게 하기까지 얼마나 고생했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고. 분명 밤낮없이 일했을 거라고. 쉬는 날도, 연휴도 없었을 거라고. 자기 몸 돌보지 못하고 일만 했을 거라고. 별별 손님들 다 만나면서 마음고생도 많이 했을 거라고. 


  그리고 다시 떡집 사장님의 말씀. 

  "일이란 게 말이죠, 시작이 있고 끝이 있어야 하는 건데 말이에요. 이건 그게 없어요. 장사라는 게 말이에요. 오늘 일이 끝나 집에 돌아가 맘 편히 쉴 수가 없어요. 끝난 게 아니거든요. 다음날 새로운 일이 시작되는 게 아니에요. 어제 못다 한 일, 미뤄둔 일을 이어하는 거지. 오늘이 어젠지 내일인지 모르겠어요. 쉬는 날 없이 일하면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몇 월인 지도 모르겠더라고. 그러니까, 어서 다른 일을 해요. 뭐라도 좋으니 장사 말고 다른 일."  





  카페에 있으면 심심한 날이 있다. 한참을 기다려도 손님이 오지 않는 날. 대체 오늘이 무슨 날이길래 싶은 그런 날. 많은 카페 사장님들은 카공족을 싫어한다고 하지만, 단 한 명의 카공족이라도 좀 있었으면 좋겠는 그런 날. 


  손님이 없다고 일이 없는 건 절대 아니다. 갈빗집 사장님 말씀대로, 할 일은 여전히 많다. 손님을 만나는 것만이 장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재료 준비와 뒷정리에는 생각보다 굉장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든다. 손님이 많으면 그만큼 직원을 쓸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모든 일은 온전히 사장님들의 몫이 된다. 


  많은 카페에서 1인 1메뉴를 강요하는 이유를 이번에 알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뭐 그런 걸 가지고 그렇게 빡빡하게 구나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커피값은 단순히 커피값이 아니기 때문이다. 매달 내는 월세와 전기세, 관리비, 인건비, 그리고 지금 이 환경을 유지하기 위한 유지비용, 초기 인테리어와 기기 비용 등이 모두 포함된 비용인 것이다. 그러니까, 커피값은 커피값이라기보다는 카페 이용료라고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렇다고 해도 물론 나는, 1인 1메뉴를 강요하지는 않는다. 그냥, 손님들이 알아서 1인 1메뉴 해주시면 감사할 뿐. 


  그런데 가끔 4분이 들어와서 2~3잔만 시키면 나는 긴장이 된다. 식사 후 곧바로 카페에 오셔서 배불러서 그럴 수 있다고 하지만, 그렇게 주문하는 분들 대부분이 컵 한두 개를 따로 더 달라고 하시기 때문이다. 나눠 먹겠다면서 따로 가져간 빈 컵에 음료를 따르다 보면 열이면 열, 테이블에 음료를 쏟는다. 바닥까지 음료가 쏟아지는 경우도 있다. 알바생은 한숨을 쉰다. 치우는 건 우리가 다 치워야 하니까. 물을 쏟은 게 아니라서 그냥 닦아서 될 일이 아니다. 끈적끈적한 음료들이면 여러 번 닦고 또 닦아야 한다. 이제 그분들은 뜨거운 물 한 컵을 더 달라고 하신다. 1인 1메뉴였으면 컵 4개 설거지로 끝날 뒷정리인데, 이건 컵 5~6개를 설거지하고도 테이블과 바닥을 한참 더 닦아야 한다. 그분들이 사용한 냅킨이랑 설탕 봉지, 약봉지 등등 쓰레기도 한가득이다.  


  이 와중에 세금. 물론 세금은 당연히 내야 하는 돈이지만, 부가세의 세계는 생각보다 아찔하다. 10%나 되는 부가세는 장사가 잘 되면 잘되는 대로, 안되면 안 되는 대로 부담이 되는 게 사실이다. 오죽하면 '폭탄'이라는 말까지 할까. 부가세만 있는 게 아니다. 세금은 참 종류도 많다. 

 

  요즘 같은 때는 버는 돈보다 나가는 돈이 더 많은 때라고 한다. 줄일 수 있는 지출은 아무리 줄여도 한계가 있다. 최대한 에어컨 안 틀고, 포장용기와 재료비를 아껴도 한계가 있는 것이다. 결국 줄일 수 있는 지출은 인건비라고 했다. 그래서 자꾸 사장님 혼자 있는 매장이 많아지는 거라고 했다. 사장님은 혼자 재료 준비도 하고 손님을 만나고 전화도 받고 포장도 하고 청소도 하고 쓰레기 정리도 한다. 인건비를 줄이면 고정 지출은 조금 줄일 수 있지만, 사장님의 체력도 줄어든다. 


  초보 사장인 나는 모든 상황이 다 처음이라, 그 전에는 대체 어떻게 가게들이 영업을 했는지 모르겠다. 줄 서서 먹었다는 갈빗집은 텅텅 비어있고, 만두집도 조용하다. 과일가게는 매일 재고 걱정이고, 새로 오픈한 파스타 가게는... 말잇못이다. 

  이게 다 코로나 때문이라고는 하는데, 코로나 이전에는 어떻게 장사를 하고 살았는지 모르는 나는 그냥 그러려니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동네에서 나 혼자 마음이 편하다. (아니, 편한건 아니다. 매출을 계산하고 지출 계산, 세금 계산을 하고 나면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건 사실이니까.) 






  오늘도 가게 문을 열었다. 이런저런 계산을 하느라 머릿속이 복잡하지만 그래도 문을 열고 손님을 만난다. 많은 손님이 오는 날도 있지만 매장이 텅텅 비는 날도 있다. 그래도 정말 감사하게도, 오는 손님이 계속 와주신다. 일주일에 5~6번 와주시는 그분들을 볼 때면 '그래, 열심히 한 번 해보자' 하는 다짐을 하게 된다. 


  우리 가게는 주 6일 영업하고, 일요일은 휴무의 시간을 갖는다. 매일 오시는 몇몇 손님들은 휴무의 시간을 아쉬워하면서도, 나에게 푹 쉬고 오라고 다정하게 말해주신다.

  토요일이 되면 손님들은 이렇게 말한다. "내일 못 봐서 아쉽네요." "내일 푹 쉬시고 월요일에 뵈어요. 월요일에 또 올게요." 월요일에 또 온 손님들은 이렇게 말한다. "주말 잘 보내셨나요?" "월요일을 기다렸어요. 얼마나 여기 오고 싶던지."


  최근 우리 카페에 다녀가신 한 손님이 리뷰를 달아주셨다. 온갖 좋은 말들은 다 써주셔서 너무나 감동이었는데, 그중에 '또 오고 싶은 카페'라는 부분에서 나는 가슴이 벅차 줄줄 울었다. 세상에, 또 오고 싶은 카페라니. 덕분에 목표가 생겼다. 손님들이 또 오고 싶어서 또 왔을 때, 내가 이곳을 지키고 있는 것. 그러려면, 오래오래 해야 한다. 떡집 사장님은 지금이라도 빨리 다른 일을 찾아보라고 했지만, 나는 여기서 어떻게든 잘 버텨내 오래오래 이곳에서 카페를 해야 한다. 우리 카페는 또 오고 싶은 카페이므로. 


 그래, 최선을 다해 오래오래 한 번 해보자. 

 그러니, 오늘도 힘 내보자. 








이전 17화 QR체크인이 뭐라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