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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워녕 Aug 20. 2021

사장님은 사장님


  오랜 시간 손님으로만 살아온 내가 카페의 사장님이 되어 앉아있다. 


  우리 카페에 처음 온 손님들이 나를 부르는 호칭은 다 제각각이다. "저기요!" "언니!" "아가씨!" "여기요!" 가끔 어린아이를 데리고 온 엄마들은 "카페 이모한테 인사해야지~"라고 하기도 한다. (이때 어린아이가 "언니, 안녕!"이라고 해줄 때가 있다. 그러면 나는 이상야릇한 기분 좋음에 입꼬리를 씰룩씰룩하는데, 이것은 마치 싸우기도 전에 이긴 것 같은 그런 기분이다.) 


  두세 번 온 손님들 중 가끔 "사장님이세요?"하고 물어오는 분들이 계신다. 나는 아주 쑥스러워하며 (아니라고 할 수는 없어서) "... 네^^"하고 대답하는데, 그러면 손님들은 "어쩐지!"라고 하시고는, 그 이후로 "사장님! 사장님!"하고 나를 부르신다. 


  자주 오는 손님들은 나에게 거침없이 '사장님'이라고 부른다. 가만 생각해보면, 내가 다른 카페에 가서 나 정도의 젊은 사장님에게 "사장님!" 하고 부르기는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우리 손님들은 나에게 "사장님!"이라고 잘도 불러주신다. 

  매일 아침 오시는 점잖은 직장인이신 '나의 첫 손님'(참고 <내가 좋아하는 걸 좋아해 주시다니>)은 "사장님! 오늘은 아메리카노 사이즈업으로 먹겠습니다!"하고 주문을 하시는데, 나는 한 번씩, 왠지 부끄럽고 쑥스럽다. 




  우리 카페에 놀러 온 한 친구가 나에게 "사장님은 사장님이네"라고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했더니 "손님과 그렇게 눈을 마주치는 사람은 사장님밖에 없어."라고 했다. 


  아하. 


  그러고 보니 다른 카페나 식당에 가서 눈으로 가게를 훑으며 사장님을 찾아볼 때, 어떤 분이 사장님인지를 알아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사장님'이란 명찰을 달고 있지는 않지만, 딱 봐도 사장님은 사장님이다. 손님과 눈을 마주치는 분. 


  사장님이 된 나는 다른 사장님의 일거수일투족에 무척이나 신경이 쓰인다. 어떤 말을 하시는지, 어떤 동선으로 어떻게 일하시는지. 내 눈은 다른 곳을 둘러보고 있지만 내 몸의 모든 촉은 사장님들을 향해 있다. 


  난 사장님들을 보며, 요즘, 종종, 꽤 요란하게 감정이입을 하고 있다. 





  아이스크림을 사러 배스킨라빈스에 갔다. 


  늘 알바생만 있던 곳인데, 웬일로 사장님 혼자 매장을 지키고 있었다. 누가 봐도 사장님인 사장님. 내 눈을 보고 인사하시는 분. 나는 늘 주문하던 대로 "쿼터 하나 포장해주세요~"라고 했고, 사장님은 결제 후 네 가지 아이스크림을 골라달라고 했다. 


  사장님이 내 아이스크림을 푸고 있는데, 문에서 '딸랑' 소리가 나며 손님들이 들어오셨다. 나는 이 '딸랑' 소리에 하마터면 "어서 오세요!" 하고 소리칠뻔했다. 내가 움찔하는 사이, 사장님은 아이스크림 통에 온 몸을 처박고 아이스크림을 푸면서 "어서 오세요!"하고 소리쳤다. 


  나는 이상한 울컥함을 느꼈다. 


  뒤이어 또 다른 손님이 또 들어오셨다. '딸랑'. 나는 또 움찔했다. 내 목구멍에 "어서 오세요!" 하는 목소리가 차올랐다. 나는 나의 목소리를 간신히 참아가며 조용히 서 있었고, 사장님은 계속 아이스크림 통에 온 몸을 처박은 채로 "어서 오세요!"하고 한번 더 소리쳤다. 


  이렇게 내 뒤에 들어온 두 팀의 손님은 모두 60대 이상의 어르신들이었다. 먼저 들어온 팀은 키오스크 앞에서 "이거 뭘 어떻게 하는 거야?"하고 우왕좌왕하고 있었고, 뒤에 들어온 팀은 "여기 커피도 팔아요?", "앉아서 먹을 수 있어요?"하고 말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나는 자꾸만 움찔했다. "잠시만요! 금방 주문 도와드릴게요!"라고 말하고 싶어 죽을 것만 같았다. 나는 손님들의 뜨거움을 뒤통수로 느끼며 계속 움찔거렸다. 그러나 나는 이 혼돈과 카오스의 현장에서 우두커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여긴 내 가게가 아니므로. 


  다른 손님들에게 "잠시만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하고 소리치면서 힘겹게 아이스크림을 푸는 사장님을 보며 나는 또 한 번 이상한 울컥함을 느꼈다. 어떻게든 사장님을 돕고 싶은 마음이 굴뚝처럼 올라왔다. 그렇다고 내가 손님들을 상대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내가 아무리 오지랖쟁이여도 그건 안될 말이었다. 여긴 내 가게가 아니므로. 그래, 여긴 내 가게가 아니므로.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5초쯤 지난 것 같다. 50분 같은 5초. 아무래도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낑낑대며 아이스크림을 푸고 있는 사장님의 뒤통수에 대고 큰 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사장님~ 저 가는 데는 10분 정도 걸려요. 그러니까 드라이아이스는 사실 안 넣어도 되는데, 그래도 날이 너무 더우니까 한 덩이만 넣어주세요. 아무튼 제가 빨리 뛰어가서 얼른 냉장고에 집어넣을게요. 아 그리고, 스푼은 안 주셔도 돼요. 쇼핑백도 안 주셔도 돼요. 그냥 봉투에만 한번 싸주시면 제 가방에 넣을게요." 


  내 뒤에 시끌시끌하던 손님들이 조용해졌다. 누가 봐도 나는 제일 먼저 온 손님이었고, 사장님은 나와 대화해야 했다. 사장님은 아이스크림을 푸다 말고 나를 올려다보시며, 그렇게 내 눈을 바라보시며, "네! 알겠습니다!"하고 싱긋 웃어주셨다. 다 담긴 아이스크림을 건네주시면서 다시 한번 내 눈을 보며 "감사합니다! 맛있게 드세요!" 하는 사장님에게 나는 싱긋 웃으며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하고 눈을 마주치고 나왔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파리바게뜨에서는 팥빙수를 어떻게 파는지 궁금해져서 파리바게뜨에 갔다. 늘 가던 파리바게뜨였고, 참 친절한 사장님이 계신 곳이었다. 토요일 오전 11시. 


  가게에는 늘 보던 사장님과 못 보던 알바생 한 명이 있었다. 보아하니, 오늘 처음 출근한 알바생인 것 같았다. 나는 팥빙수를 포장해달라고 하고 이런저런 할인과 적립카드를 내밀고, 포인트로 결제를 했다. 처음엔 그냥 알바생에게 맡기려던 사장님은 앞으로 바짝 다가와 여러 바코드를 찍었고, 계산을 하면서 알바생에게 차근차근 설명까지 하셨다. "자, 봐, 이거 할인이랑 적립은 동시에 안돼. 손님들한테 친절하게 설명드려야 해." 


  스물두세 살 정도로 보이는 여자 알바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었다. 잠시 후 사장님은 "그럼 오늘은, 음, 일단 팥빙수는 내가 만들게. 다른 손님들 오면 네가 좀 봐줘~"하고 팥빙수를 만들러 안으로 들어가셨다. 나는 팥빙수를 기다리며 다른 빵 구경을 하고 있는데 빵 주변에는 나보다 먼저 온 손님이 이미 몇 바퀴를 돌며 빵을 고르고 있었다. 


  잠시 후 문에서 '딸랑' 소리가 나며 새로운 손님 두 분이 안으로 들어오셨다. 손님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 주세요! 아니다, 아이스 카페라떼 주세요! 응? 뜨거운 거 먹을 거라고? 아 그럼 뜨거운 카페라떼랑 차가운 카페라떼 한잔씩 주세요. 응? 그냥 아메리카노 먹는다고? 아 진짜. 아 그럼 그냥 뜨거운 아메리카노 두 잔, 아니 뭘 뜨거운 거야, 이 한여름에. 그냥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 주세요!"라고 정신없는 주문을 하셨는데, 알바생은 그 정신없는 주문 앞에 정신이 쏙 나가버린 듯 멍해져 굳어버렸다. 


  안에서 팥빙수를 만들던 사장님이 뛰어나오셨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 맞으시죠? 할인이나 적립카드 있으세요? 드시고 가시나요? 테이크 아웃하시나요? QR체크인 한 번 해주시고요~"라고 속사포처럼 (그러나 아주 친절하게) 말하시는 동안 알바생은 뒤에서 가만히 서 있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에 대한 결제를 끝낸 사장님은 다시 팥빙수를 만들러 들어가시고, 알바생은 카운터 앞에 계속 가만히 서 있었다. 카운터 옆 한 귀퉁이에는 미처 다 포장하지 못한 빵 봉지들이 한가득 쌓여 있었고, 나보다 먼저 빵을 고르고 있던 손님은 슬슬 빵을 다 골라가고 있었다. 빵 구경을 하며 기다리던 나는 속이 터질 것 같았다. 


  그런데 이 파리바게뜨의 사장님은 정말 착하고 친절한 분이셔서, 그 와중에, 그러니까 정신없이 팥빙수를 포장하는 와중에 나긋나긋하게 알바생에게 말을 하셨다. "자~ 거기 그러고 있지 말고 아메리카노 만들어야지? 배웠잖아. 할 줄 알지? 거기 그 버튼 누르고, 그렇지 그렇지! 컵 준비하고. 얼음은 거기 있는 거 알지? 그렇지 그렇지! 그래, 그렇게 하면 되는 거야~" 


  나는 다시 한번 이상한 울컥함을 느꼈다. 


  이때 또 '딸랑' 소리가 났다. 손님 두 분이 또 들어오셨다. 딱 봐도 단골 아우라를 폴폴 풍기며 들어온 손님들은 "사장님~~~"부터 하셨다. 사장님은 또 팥빙수를 만들다 말고 뛰어나오셨다. 아, 사장님... 아직 알바생은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을 만들지 못한 상태였고, 빵을 고르던 다른 손님은 쟁반에 한가득 빵을 들고 카운터 앞에 서 있었다. 

  새로 들어온 손님들은 (지금 몸이 열개라도 모자란) 사장님에게 말을 걸기 시작하셨다. "지난주에 자몽에이드를 먹었는데, 컵이 작아졌더라고요. 이번에 다 그렇게 작아진 거예요?" 사장님은 "아니에요, 그렇지 않을 텐데! 아마 우리 알바생이 헷갈렸나 봐요! 죄송해서 어쩌죠... 제가 단단히 교육시킬게요. 그래서 오늘 어떤 걸로 드시겠어요?"라고 말하며 손님을 응대했다. 그러는 동안 알바생은 다 만들어진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을 들고 사장님 뒤에 또 가만히 서 있었다. 나는 또 속이 터질 것만 같았다. 


  사장님은 자몽에이드 두 잔에 대한 계산을 (할인도 적립도) 또 하시고, 다시 팥빙수를 만들러 들어가셨다. 이쯤 되자, 나는 하필 이때 빙수를 포장하러 온 내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사장님에게 미안한 마음이 크게 들었다. 가만히 서 있던 알바생은 드디어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을 손님에게 드리고, 빵 쟁반에 대한 계산을 하기 시작했는데, 어떤 빵이 어떤 빵인지 아직 숙지가 덜 되었는지 계속 버벅댔다. 앞에서 손님이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또 '딸랑', 손님이 들어왔다. 사장님은 "어서 오세요!"를 외치며, 알바생에게 또 나긋나긋하게 말을 하셨다. "잘하고 있지? 그래, 그렇게 차근차근하면 되는 거야." 


  나는 이 미친 이상한 울컥함에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사장님이 드디어 팥빙수를 들고 나오셨다. "숟가락 몇 개 필요하실까요?"하고 내 눈을 보며 묻는 사장님에게 나는 "안 주셔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하고 빨리 나오려는데, 사장님은 다시 한번 나와 눈을 마주치시면서 "날이 너무 덥죠! 이런 날 팥빙수는 탁월한 선택인 것 같아요. 맛있게 드세요!"하고 그 정신없는 와중에 나에게 이 어마어마한 친절의 말을 해주셨다. 나는 활짝 웃으며 "네 맞아요^^ 맛있게 잘 먹겠습니다^^"하고 말하면서 사장님의 눈을 보며 꾸벅 인사를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다음 주, 식빵을 사러 그 파리바게뜨에 다시 갔다. 알바생 없이 사장님 혼자 앉아계셨다. 한 주 동안 많은 일이 있으셨겠구나 싶었다. 사장님은 조금 지친 얼굴이었는데, 그래도 '매우 친절함'을 장착한 채 내 눈을 보며 나를 맞이해주셨다. "어서 오세요!" 나는 또 이상한 울컥함을 느꼈다. 

  계산한 식빵을 가방에 넣으면서 "저번에 팥빙수 맛있게 잘 먹었어요^^ 오늘 식빵도 잘 먹을게요^^ 안녕히 계세요!"하고 또 한 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하자, 사장님은 그렁그렁한 눈으로 내 눈을 빤히 바라보시면서 "감사합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라고 인사해주셨다. 나는 쏟아질 것 같은 눈물을 간신히 참으며 밖으로 나왔다. 






  사장님은 사장님이라서 온갖 것들을 다 짊어져야 한다. 사장님은 사장님이라서 그 모든 상황들을 헤쳐나가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불평할 수도 없고 포기할 수도 없다. 사장님은 사장님이라서 다른 사람들에게 '제가 이렇게나 힘들답니다. 좀 이해해주세요'라고 말할 수 없다. 짜증 낼 수도 투정 부릴 수도 없다. 사장님은 사장님이라서 그냥 온전히 그 모든 것들을 다 끌어안아야 한다. 끌어안을 만큼 품이 넉넉하지 못해도, 끌어안을 기운이 없어도, 그래도 끌어안아야 한다. 사장님은 사장님이라서. 


  그러니 사장님의 이 어마어마한 친절함들 속에는 사장님의 지독한 외로움이 들어있는 것이다. (참고 <'사장님'이라는 외로움>) 사장님이 손님과 눈을 마주치며 나긋나긋하게 말씀해주시는 그 시간은 사장님의 넓은 품과 단단한 기운이 집약된 시간이다. 


  내가 느낀 그 이상한 울컥함은 그런 맥락이었다. 사장님과 눈을 맞추고 그분들의 친절함을 마주할 때마다 내가 이상한 울컥함을 느끼며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참았던 건. 





  어제는 한 손님이 커피를 드시다 말고 나에게 총총총 걸어오셨다. 


  내가 손님의 눈을 바라보기 전에 그 손님은 내 눈을 먼저 바라보며 "이거 드세요!"라고 하시며 마카롱을 내미셨다. 당황해서 "네?"라고 하는 내게 그 손님은 다시 한번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이거 드리고 싶어서요!"라고 해주셨다. "감사합니다"하고 간신히 말하는 나를 뒤로한 채 다시 총총총 걸어서 자리에 앉으신 손님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무너져 내렸다. 다리에 힘이 풀리고 척추가 꿀렁꿀렁해졌다. 온몸에 피가 도는 건지 쏠리는 건지 모르겠는 그 이상함을 느끼고, 나는 커피머신 뒤에 숨어 엉엉 울었다. 


  나는 손님이 조금만 부드러운 말투로 말해주시기만 해도, 그리고 살짝 웃어주시기만 해도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수 있을 것 같은 카페 사장인데,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에게 다가와주시면 무너져 내릴 수밖에. 


  이 무너져 내림을 알기에, 나는 다른 사장님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해드린다. 조금이라도 덜 힘드실까 싶어서. 잠깐이라도 덜 외로우실까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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